~28-1.jpg

75세의 오순이 할머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소위 팔자 좋은 노인이었다. 부모복, 남편복에다가 자식복을 골고루 갖추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딸을 셋이나 낳은 후에 본 아들 둘은 할머니 삶의 전부였다.

딸들에게도 물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딸들은 출가외인이라고 생각했고, 일생 딸들에게 신세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는 재산도 일찌감치 아들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다행히 아들들은 효자였다.

하지만 오순이 할머니는 최근에 일생일대의 위기와 혼란에 빠졌다. 같이 살던 큰 아들네가 아이들 교육을 이유로 외국에 나가 살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싹싹한 둘째 아들, 며느리 역시 외국에서 살고 있다. 첫째와 둘째 아들 모두 오순이 할머니에게 외국에서 같이 살자고 하지만 할머니는 이 나이에 고국을 떠나 살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딸들하고 사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딸들 또한 재산 한 푼 나눠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인사말로라도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순이 할머니는 비로소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자식들의 부양을 받기는 힘들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 건강한 편이니, 생각 같아서는 이제라도 자식들 보란 듯이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럴 용기는 없다. 평생 살면서 혼자 사는 생활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유료 양로원에 들어가서 사는 것. 할머니는 건강한 노인들이 모여 사는, 그리 비싸지 않은 유료 양로원을 몇 군데 가본 후에 한 곳을 선택하였다.

오순이 할머니의 연령은 75세. 사람들은 75세의 노인이 혼자 사는 것이 여러 면에서 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도 선뜻 모시려고 하지 않는 자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오순이 할머니는 일생 동안 혼자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채 살아왔고, 실제로 큰 아들이 외국에 가서 살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큰 아들네와 같이 잘 살아왔다. 그러니 75세나 되어 새삼스럽게 혼자 사는 것을 고려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결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혼자 사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었던 세대는 오순이 할머니의 또래가 마지막일 것이다. 세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자식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혹은 외국으로 거주지를 끝없이 바꾸고 있다. 설사 가까운 데 산다고 하여도 부모를 모시는 것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대단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노인들도 홀로 서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더욱이 오순이 할머니가 들어간 양로원은 건강한 노인들을 보호하는 복지시설로서, 선진국에서는 건강한 노인이 양로원에 들어가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양로원은 더 움직여야 할 노인들에게 의존심을 길러주기 십상이기 때문에 심지어 ‘시설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까.

따라서 나는, 아직 건강하다면 양로원에 들어가서 편안히 사는 삶을 택하기보다는 이제라도 '홀로 서기'를 통해 독립적인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싶다. 발달심리학자들이 그리도 높이 평가하는 '자기 찾기'와 독립심이 노년이라고 해당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이 들어서도 항상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그동안 배우자나 자식에게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물론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통을 치른 후에 얻어지는 자유와 자족의 기쁨을 무엇과 바꾸랴.

아름다워라/홀로 선 자/이 세상 어떤 기쁨도/고요히/스스로 홀로 있는/기쁨만 못하리/허허댄(虛虛堂), 무심(無心) 중에서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