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잡는 色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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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시스템 가전 전략마케팅 디자인 그룹의 컬러리스트 이혜미 과장. <사진·민원기 기자>

“컬러리스트는 화가가 아닙니다. 제품에 컬러를 입히려면 감성과 공학 둘 다 요구되죠. 도료를 배합하는 과정에서는 물리적 공식이 필요하고, 색깔이 바뀌는 문제에 대응하려면 화학적 반응에 대해서도 알아야죠.”

삼성전자 시스템 가전 전략마케팅팀 디자인 그룹의 컬러리스트 이혜미(32) 과장. 색채 하나로 기업이나 상품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컬러리스트는 고고하게 사무실에 앉아 구매자에 맞는 컬러만 선택하지 않는다. 제품에다 원하는 컬러를 입혀 출시하기 위해 실제 도료 공장을 찾아가 업체 직원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미학, 심리학은 기본 물리학, 화학까지 알아야 한다. 또한 공장에서 직접 색상을 체크하기 위해서는 우아한 스타일만 고집할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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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 화장품 제품 마케팅팀 컬러리스트 김보라 대리. <사진·민원기 기자>

이혜미 과장은 지펠의 이미지에 맞게 다양한 컬러를 개발해 적용시켜 온 일등공신. 서울여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6년간 홈인테리어, 가구 디자인 쪽에서 경력을 쌓다 3년 전 삼성전자에 들어와 지금은 지펠에 옷을 입히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색채 관련 지식과 정보를 수집해 상품 기획에서부터 소비자 조사, 색채 생산과 적용, 디자인 등 모든 색채 관련 업무다.

색깔 알면 사람 알 수 있다

“처음엔 제가 만들어낸 ‘드림 브라운’이라는 컬러를 사람들이 특징 없고 밋밋하다고 반대했어요. 하지만 그 색이 3년째 롱런이잖아요. 색 하나가 ‘인테리어 지펠’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거죠.” 화려하고 강렬한 비비드 컬러에서 벗어나 ‘내럴리즘’과 ‘미니멀리즘’으로 향하는 세계 트렌드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구매자들의 입맛에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요즘은 인테리어 전자제품도 패밀리 룩입니다. 하나의 컬러 컨셉트에 따라 주방가구를 맞추는 거죠. 인테리어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실버컬러가 가장 무난해요.” 지금은 냉장고 한 대가 집 안의 인테리어까지 좌우하는 시대. ‘자연주의’를 지향하던 서구 유럽의 스타일이 ‘하이테크’로 바뀌면서 고급스런 이미지를 내기 위해 탄생된 실버 컬러는 어떤 색과도 무난하게 매치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색깔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실버에도 수 십 개의 이름이 붙는다. 유리나 알루미늄(소재)을 썼느냐, 다른 색(휴 hue)을 어느 정도 섞었느냐, 얼마만큼의 밝기(톤 tone)를 조절하냐에 따라 컬러는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 소재와 휴, 톤을 결정하는 것도 컬러리스트의 몫.

색깔을 알면 사람도 알 수 있다. 이 과장은 틈이 날 때면 삼성전자 색채연구소를 통해 냉장고, TV, 휴대폰 등 각각의 재질에 맞는 가전제품에 적용될 수만가지의 색깔을 연구하고 트렌드와 매출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이 과장에 따르면 구매자의 나이와 소득, 주거형태에 따라 원하는 제품의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신혼은 깨끗한 화이트나 산뜻한 실버, 핑크류를 선호하고 중년에 가까워질수록 안정감 있는 브라운과, 고급스런 체리 무늬목, 자연목을 선호한다는 것. 또한 통상적으로 이미지를 어필하는 컬러가 들어갔을 때와 컬러가 없을 때 제품 판매량에는 1.5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여자나이 스물 다섯만 넘기면 경험한 모든 것들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대요.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까지도 연출할 줄 알면 더 없이 멋진 컬러리스트가 되겠죠?”

여성들의 유행컬러가 곧 매출로 이어지는 또 다른 곳. LG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 제품 마케팅팀에서 색조컬러 개발업무를 맡고 있는 김보라(30) 대리를 만났다. ‘오휘’ ‘이자녹스’ ‘라끄베르’ 등 LG의 이름으로 출시되는 화장품의 컬러는 모두 그의 손길을 거친 것.

컬러가 경쟁력

유행을 예측해 계절 테마를 결정한 뒤 거기에 맞는 신규 컬러를 개발, 상품을 출시하고 CF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테마를 풀어주고 화장법을 알려주는 것까지가 그의 몫이다.

“컬러리스트라고 꼭 미술을 전공할 필요는 없어요. 컬러는 무한합니다. 단지 그 컬러가 어떻게 쓰일 때 어떤 느낌이 나는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한 거죠.” 김 대리는 중앙대 일문과를 졸업하고 다른 업종에서 근무하다 3년 전 이곳에 와 10번의 시즌을 거쳤다.

김 대리의 책상은 본사, 타사 할 것 없이 아이섀도, 립스틱, 볼터치 등 색조 메이컵과 패션잡지, 유행 분석 책들로 어지럽혀져 있다. 거울을 보면서 색감이 어떻게 묻어나고 연출되는지 체크하는 것도 그에게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 지금은 더운 여름이지만 최근에 김 대리는 올 가을, 겨울에 유행할 컬러 신상품 개발을 끝내고 내년 봄 시즌 개발에 들어간 상태다. 이자녹스 모델 엠마와 함께 섹시, 여성스러움, 발랄, 우아라는 컨셉트로 새 광고까지 찍었다고.

“4개월 가량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살아야 되요. 트렌드를 읽는 게 가장 중요한데 다가올 유행을 예측하려면 수십개의 국내외 정보사나 패션쇼를 통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됩니다. 패션리더들에게 어필하는 트렌드 컬러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대중들에게는 차별화되면서 무난한 컬러를 만들어야 해요. 적절한 믹스가 관건이죠.”

올 가을, 겨울에도 블루가 강세일 거라고 예측하는 김 대리. 하지만 매출과 직결된 베이지, 누드 핑크 계열의 립 컬러와 베이지 브라운의 아이섀도 컬러처럼 베이직 컬러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컬러리스트는 바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가장 잘 극복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잘 팔리는 색깔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도 능력.

화장품 사업에서 컬러는 경쟁력이다. 때문에 컬러가 한번 출시될 때마다 브랜드 매니저나 컬러를 생산하는 연구소 직원들과의 마찰은 늘 있는 일이다.

“피부에 바르는 색(내색)과 실제 보이는 색(외색)은 달라요. 또한 파우더냐 크림이냐에 따라 표현되는 질감도 다르구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컬러를 요구하면 연구원들이 ‘우리는 조색사가 아니다’라고 반응하죠.” 작년 가을 패턴으로 퍼플과 골드가 주요색이 되는 ‘미스티 골드’라는 색상을 출시해 히트를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외제와 비슷한 컬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발동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컬러산업이 제자리를 잡고 소비자들로부터 외제와 동등하게 인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또한 세련되고 창의적인 컬러를 창조하는 컬러리스트 또한 할 일이 많다.

LG생활건강 마케팅팀의 인원은 대략 50명. 이 중 대부분이 여자다. “딱딱하고 공식에 얽매인 마케팅의 시대는 끝났죠. 여성의 심리를 자극하는 감성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때니까요.” 김 대리는 컬러리스트야말로 여성의 감성 마케팅이 충분히 빛을 발하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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