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아무튼 ‘정치공작’이다?
[기자의 눈] 아무튼 ‘정치공작’이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4.07 19:32
  • 수정 2020-04-07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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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형 기자
지난 3월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유포 단체채팅방을 운영한 '박사' 조주빈이 잡히고 실상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은 N번방 방지3법을 발표하고 긴급토론회까지 열어 각계 전문가의 반응을 살폈다. ⓒ홍수형 기자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다보면 피해 생존자들의 마음이 걱정돼 기사에 달린 댓글을 자연스럽게 살피게 된다. 매번 성폭력 가해자를 비판하고 법의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는 댓글만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 탄핵하라”는 난데없는 댓글이나 “아줌마 기자는 집에서 밥이나 해라” 같이 기자를 욕하는 댓글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속이 상할 때는 피해자와 사건을 두고서 “이러저러한 의도로 그런 거 아니야?”라며 소위 ‘합리적 의심’을 할 때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가 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미래통합당에서 우리 당에 N번방 연루자가 있다면 정계에서 완전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거 매우 이상한 메시지”라며 “이 분야만 오랜 세월 파온 저로서는 이것은 정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N번방 연루자가 나올 테니 정계에서 완전 퇴출시키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른바 ‘정치공작’의 음모가 느껴진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읽힌다.

김어준씨는 과거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난 2018년 2월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과 같이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범죄 뉴스가 많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섹스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이고, 진보적인 가치가 있다”며 “그러면 (어떤 세력들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공교롭게도 김어준씨가 이러한 말을 하고서 열흘 후,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 정봉주씨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미투(MeToo)가 터졌다. 김어준씨는 정봉주 전 의원이 의혹을 받자 자신이 진행하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사건 당일 정봉주 전 의원의 행적이 담긴 사진 780장을 사진을 분석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또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이 폭로된 후에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4회에서 “안희정에 이어 봉도사(정봉주 전 의원)까지…이명박 각하가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젠더 이슈는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여기에 공작하는 애들이 끼면 본질이 사라지고 공작만 남는다. (중략) 왜 한쪽 진영만 나오나”라고 말했다.

김어준씨는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 사건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있다고 믿는 듯 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음모를 꾸민 누군가의 하수인이라는 ‘진실’ 말이다. 그러나 안희정 전 지사 때도 정봉주 전 의원 때도 피해를 말한 사람들은 모두 열렬한 지지자였다.

정청래 전 국회의원이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김어준을 위한 변명’이다. 그는 글에서 “김어준이 없었으면 어쩔?”이라고 썼다. 기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마도 성폭력 범죄에 ‘정치공작’ 운운하는 사람이 한 명 줄지 않을까. 정 전 의원은 또 이렇게 썼다. “따뜻하면 유능하지를 말던가, 유능하면 따뜻하지를 말던가.” 역시 기자의 의견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는 게 어떨까. 김어준씨는 특별히 ‘내 남자’에게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남성 권력들이 착취하고 쓰러뜨린 여성들에게는 따뜻한 적이 많지 않았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설령 그 여자가 한때 자신의 가장 친한 동지 중 하나였다고 해도 말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난 3월 20일 경찰은 텔레그램 성착취방 ‘박사방’에서 확인된 가장 참여자 수가 많은 채팅방 인원이 1만 명대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1만 명의 남성들은 누구의 음모에 낚인 걸까? 물어보고 싶다. 김어준씨가 지키고 싶은 것은 투명하고 깨끗한 대한민국의 미래일까? 혹시 언제까지고 여성을 성착취하고 거래 가능한 물건으로 매매하고 싶은 남성권력인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의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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