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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들은 서로 의지해 아이를 맡기기도 한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옆집 아이들과 함께 문화공연을 즐긴다.<사진·민원기 기자>

한국 중산층 미국 육아문화 닮을까 우려

아이들끼리 놀이 방과 후 보육보다 낫다

이번에 미국 메릴랜드 대학이 주최하는 ‘여성학 교육의 미래를 준비하는 학술회의(Educating the Future)’에 다녀왔다. 회의는 5일이었고 나머지 5일 동안은 관광을 하면서 그 사회를 관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나라의 50배는 되는 넓은 땅덩어리의 나라를 10일 동안, 그것도 볼티모어와 샌프란시스코 두 곳만을 들여다만 본 체험으로 한미 두 곳의 차이를 말한다는 것이 섣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가지 차이는 보는 순간부터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는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분별이지 않을까 싶어, 아직은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는 그 따끈한 깊은 인상을 식기 전에 이번 호와 다음 호에 풀어내고자 한다.

인상깊었던 차이는 육아문화의 차이였는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모 댁에서 묶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나이로 네 살인 5촌 조카(이모는 딸과 사위, 손주와 함께 살고 계시다)가 있는데 종일 집에서 이모와 말하고 그림책보고 게임하며 논다. 그리고 밖에 나가는 것은 이모와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내년에 유치원에 보낼 거라고 했는데, 그때까지는 이렇게 또래 없는 시간을 보내야하는 것이다.

아이가 다른 집에 놀러가려면 부모들끼리 전화 통화해서 상호 합의를 하고서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애들끼리 ‘놀러갈게’하고 쉽게 놀러 가는 일이 없다는 거다. 한 번 가서 좀 개구지게 놀아 집안을 어지럽혀 놓거나 번잡스러운 애라는 인상을 남기면, 다시 초대받기 힘들다고 한다. 또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이 유아·초등학령의 아이들을 혼자 두면 처벌을 받게 돼 있다.

함께 노는 아이 혼자 노는 아이

한국에서도 맞벌이 부부나 중산층 이상의 육아 문화는 미국의 이런 육아 문화와 조금씩 닮은꼴이 돼가고 있지 않나 싶다. 후배가 “언니 도대체 요즘 엄마들 알 수가 없어, 애가 놀러 가면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와버려. 그냥 우리 집만 아지트가 된다니까”하는 푸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푸념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주민의 일원으로 그 덕도 보고 관찰해온 중간층에서 중하층 전업주부들의 육아방식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아이를 집안에서 기르지 않고 골목에서 또는 아파트 앞 벤치나 정자 주변에서 함께 기른다. 첫 아이를 길렀던 13~15평형 아파트촌의 문화가 그랬고 지금 살고 있는 빌라와 주택이 섞여 있는 동네 문화 또한 그렇다. 날이 따뜻해지는 3월 초만 되면, 9시쯤 출근할 때면 이미 아장아장 걷거나 유모차에 태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골목 안 엄마들과 마주한다.

또 7시쯤 퇴근할 때, 주말에 장에 갈 때 늘 엄마들과 아이들을 접하게 된다. 나같이 매일 출근하는 여자도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되고 내 아이가 작아 못 입게 된 옷도 건네주면서 이웃이 된다.

첫 애를 기른 아파트 동네에서 나는 이 엄마들의 덕을 톡톡히 보며 첫 애를 길렀다. 같이 생협 물건을 받는 반(班)을 구성해 더 친할 수 있었다. 여기서 쌓은 친분관계는 5시 반이나 6시면 어린이집이나 피아노 학원에서 오는 딸이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 집 저 집 친구들 집에서 놀면서 보낼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이 됐다.

입덧이 심해 밥을 못할 때, 우리 애는 다른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대신 주말이면 나는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오게 해서 놀게 했다.

아이들이 놀면 난장판이 되는 건 당연하다. 정리할 수 있는 만큼 정리하게 했지만, 난장판이 된 거에 대해 하나도 불평하지는 않았다. 이건 내 아이도 다른 집에 가서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겠지만, 어느 엄마도 이를 불평하고 내 아이를 다시 못 오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일이 엄마들하고 ‘애 보낸다, 괜찮냐?’ 이런 전화를 한 적은 없다.

지금 3학년이 된 둘째 아이는 작년까지는 첫 아이와 달리 어른이 집에 없는 상황을 어려워해 아이가 학교에서 올 시간에 맞춰 아이와 대화 상대가 잘 돼 주는 가사 도우미 아줌마를 주 2회 오시게 했고 할머니가 수시로 들렀고 마침 상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남편도 애를 위해 주 2회 정도는 집에 있어 줬다. 이 고비를 넘긴 둘째 아이는 이제는 보살피는 어른이 없는 시간을 어려워하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서로 의존하며 지낸다. 이 친구 부모들 역시 다 맞벌이인데, 우리들 사이에는 아이들 스스로가 웬만한 방과후보육보다 낫다는 신뢰와 안심이 공유되고 있다.

미국 법으로는 벌써 쇠고랑을 찼을 부모들이다. 아들은 밖에서도 내게 필요하면 착신 통화제를 이용해 돈이 없어도 전화를 할 줄 안다. 우리 부부와 큰 애가 모두 늦는 날이면 아들은 편하게 가서 저녁 먹을 집이 대 여섯 집은 된다. 큰 애 방은 길가 쪽인데 방학에는 조잘대는 골목 안 소음(?)에 신경질을 낼 때가 있다. 나는 ‘너도 그렇게 컸는데’ 하며 응수를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두 아이를 기른 나는 동네 엄마들, 그리고 공동체적 동네 환경이 없었다면 계속 일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나는 자연스럽게 “애들은 함께 놀면서 크는 거다”라는 공식을 갖고 있는데, 이런 내게 유년 시절의 ‘오로지 가족’인 미국의 육아 환경은 봐줄 만한 차이라기보다는 우려스런 차이로 다가왔다.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그러므로 계약만이 공정한 관계를 유지해줄 수 있게 한다는 세계관은 이런 육아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구나 싶다. 쌍수를 들고 미국 교육의 민주성, 아동 존중을 찬양하는 이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이들이 월남전, 이라크전은 지지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던 내게 이번 관찰은 ‘유년 시절에 심어지는 원자론적, 개인주의’라는 내 나름의 답을 갖게 했다.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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