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정치’ 없애려면 여성비례대표 늘여야
‘돈 정치’ 없애려면 여성비례대표 늘여야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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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남성정치인 개인활동비·행사비 지출 많아

여성정치인 비용 줄이려 ‘발품팔기’ 선택

여야 3당 대표들이 지난 5월 강남의 초호화 룸살롱에서 마신 술값은 700만원이었다. 웬만한 월급쟁이 석 달치 월급이 넘는 돈이다. 통 크게 한 번 ‘쏜’ 것이겠지만, 세금 내는 국민 쪽에서 보면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의원들도 룸살롱을 갈까. 현역 여성의원 15명 가운데 위 남자들처럼 ‘낭만’을 빗대 룸살롱을 찾을 주당도 없거니와,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탓에 그럴 일이 없다는 게 여성의원들의 반응이다. 사실 돈도 별로 없다.

정치개혁이 국가적 화두가 된 지금, 돈 쓰지 않는 ‘여성정치’가 새 정치의 전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이 의회를 장악하면 적어도 세금을 술값으로 탕진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국회의원, 얼마 벌어 얼마 쓰나

법률에 따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기본수당 330만2830원에 입법활동비 180만원을 합친 510여만원이 기본 세비다. 여기에 특별활동비와 상여금, 여비, 차량유지비 등 잡다한 돈까지 따지면 국회의원이 한 달에 받는 돈은 900만원을 넘는다. 세금에서 받는 돈만 그렇다. <상자기사 참조>

여기에 합법적인 정치자금이 붙는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 한 사람이 1년에 3억원까지 모을 수 있게 명시했다. 선거가 있는 해는 6억원까지 허용된다. ‘능력있는’ 의원은 개인적인 후원라인을 통해 이 정도 돈을 따로 챙긴다는 게 정치권의 속설이다.

중앙당에서 내려오는 지원금도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올초부터 소속 의원들에게 정책활동비 명목으로 다달이 200만원씩 주고 있다. 명절 때는 웃돈 100만원을 얹어 준다. 또 지구당 활동비로 250만∼300만원씩 준다. 자기 주머니 돈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니 논외다.

이만큼 벌어 얼마를 쓸까. 국회의원의 지출내역은 지구당 운영비, 지역구 활동비, 개인활동비, 선거자금 등으로 나뉘는 게 일반적이다. 가장 큰 덩어리인 지구당 운영비는 지역조직책 관리비, 사무실 운영비, 행사비 등으로 나가는데 한 달에 보통 2000만원 정도로 정가에 알려져 있다. 지역구·개인 활동비나 선거자금 같은 건 의원의 ‘능력’에 따라 하늘과 땅을 오간다.

여기까지만 치면 국회의원의 한 달 ‘고정수입’은 많아야 1500만원이다. 지출은 지역구 의원의 경우 고정비용만 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 정치의 ‘원죄’가 시작되는 대목이다.

남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여당의 한 초선 남성의원은 한 달 지출이 ‘알려진 것만’ 1억원을 넘는다. 지구당 운영에 3000여만원이 들고 5000만∼6000만원 정도를 지역구의 각종 행사 지원, 회식 등에 쓴다. 회계에 잡히는 액수만 그렇다. 서울에서 각종 정책간담회나 행사, 면담, 기타 유권자 관리같은 ‘정치활동’에 들어가는 돈은 정말 ‘며느리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 그 ‘씀씀이’의 차이

운동권 출신이어서 ‘짜기로’ 이름난 경기도 출신 야당의 한 남성의원도 한 달에 4000만원 가까이 쓴다. 지구당 운영비가 1500만원 정도고, 나머진 ‘불가항력’인 지역구 활동비로 나간다. 아파트단지 윷놀이대회, 방위협의회 방문 등 지역구 내 행사지원비가 거의 80%를 차지한다.

‘돈이 없어 골치’라는 한 정당의 여성 원외 지구당위원장은 한 달 고정비용만 2000만원이다. 지구당사무실 임대료, 상근직원 급여로 1500만원이 나간다. 부고나 개업식처럼 수시로 쏟아지는 경조사와 당원 행사지원, 지역구 내 각종 복지행사 등에 찬조금을 내면 2000만원이 꽉 찬다. 세비로 이 모든 것을 충당할 수 없어 남편의 쌈짓돈이 절대적이다.

이 위원장은 “의원시절 동료 남성의원들의 지출을 어깨너머로 보니 적어도 1억원이 넘더라”며 “여성의원은 특별히 관리해야 할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필요한 지출을 삼가기 때문에 지출은 이보다 훨씬 적다”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은 재정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발’을 택했다. 아무리 작은 행사라도 돈을 내는 대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얼굴을 보이고, 입담으로 ‘때우는’ 것. 경비를 아끼기 위해 되도록 승용차도 안 타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야당의 한 여성의원은 “남성의원의 한 달 지출을 가늠하는 건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여성의원은 대략 남성의 30∼40%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나는 비례대표여서 지구당이나 지역구에 드는 돈이 없기 때문에 지출은 훨씬 적다”며 “의정활동에 필요한 정책연구비 같은 걸 포함해도 한 달 1000만원 이상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성의원 평균 1000만원선

최근 여당의 지역구를 맡은 한 여성 위원장은 한 달 고정비용이 1000만원이다. 지구당 임대료와 상근직원 2명한테 거의 전부 나간다. 이밖엔 웬만해서 지출을 하지 않는다. 이 위원장은 “광역의원 시절엔 작정을 하고 돈을 쓴 적도 있었는데, 의원이나 유권자 모두 상처받는 짓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며 “앞으로 돈으로 관리하는 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고백했다.

정치인의 지출내역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여성의원의 한 달 지출은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돈의 천국, 각종 선거 2000년 4.13총선이 끝난 뒤 정가엔 ‘50당 30낙’이란 소문이 돌았다. 50억원 쓰면 당선하고, 30억원 쓰면 떨어진다는 말이다. 당시 야당으로 출마했다 떨어진 어느 후보는 자신이 총선에서 17억원을 썼다고 폭로,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김근태 민주당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 때 불법경선자금으로 썼다고 ‘양심선언’한 액수는 2억4000만원이었다.

지난달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각 후보진영은 상대방이 불법 선거자금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고 서로를 공격했다. 한 후보는 경선예산으로 200억원을 책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어느 후보는 경선 한 달전에 이미 10억원을 썼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당시 당내 선관위원이었던 김문수 의원은 ‘지구당 관계자를 만날 때 돈을 안쓰면 미친 놈 소리를 듣기 때문에 돈을 쓰게 돼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여성의원 수 50%면 세비 25% 줄어

선거판에선 여성들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과거 당내 경선에 나선 적이 있는 한 중진 여성의원은 “대의원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돈을 쓰지 않을 수 없어 나도 2억원 정도를 썼다”며 “다른 남성 후보들은 보통 10억원 가까이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선거든 당내 경선이든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제재조치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국회 사무처는 의원과 보좌진 등 1800여명에게 한 달 평균 70억원에 육박하는 세비를 준다. 1년이면 여성부 예산의 두 배 가까운 700억원 규모다. 국회의원만 쳐도 세금에서 나가는 한 달 세비는 24억원, 1년 250억여원이다.

국회의원들의 한 달 지출액은 가늠할 수가 없다. 다만, 남성의원 한 사람의 고정지출을 최소 3500만원으로 잡으면, 256명이 한 달에 89억여원 쓰는 셈이다. 전체 의원 세비의 세배가 넘는다.

여성의원의 경우 고정지출을 최소 1500만원으로 치면, 15명이 한 달에 2억2000여만원 쓴다.

남녀의 고정지출 비율을 35대 15로 잡고, 남녀 의원이 반반(각 135명)이 된다고 가정하면 지출액은 47억원 대 20억원으로 합하면 67억원이다. 지금 남성의원들이 한 달에 지출하는 돈 89억원의 75% 수준이다.

여성의원이 늘면 산술적인 계산으로도 20억원 넘는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지출이 적은 여성의원이 많아져야 필요없는 정치자금이 사라진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돈 쓰는 불량후보 도태돼야

여성들이 증원을 요구하는 비례대표 의석수도 같은 맥락에서 세비가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지역구 의원이 어쩔 수 없이 쓰는 지구당 운영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 225명이 운영비로 한 달 2000만원을 쓴다면 총액은 45억원. 비례대표가 100명으로 늘고 지역구 의원이 200명으로 줄면 5억원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때만 되면 나오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뿌리 뽑으려면 차라리 정치자금 관련제도를 고쳐 후원금 모금액을 현실화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1년에 모을 수 있는 후원금(3억원, 한 달 2500만원) 규모를 올리자는 것.

일각에선 반드시 여성할당제를 지켜 여성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돈정치를 없애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돈으로 관리해야 할 조직이 없고, 또 그럴 돈도 없는 여성들이 자꾸 나서야 돈으로 표를 사고 파는 정치풍토나 유권자들의 의식을 한꺼번에 고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연구위원은 “정치도 일반 시장처럼 유권자들이 후보의 상품가치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불량 후보들이 자연 도태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돈 덜 쓰는 여성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영환·동김성혜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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