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은 고양이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젠틀맨을 집에 들였다. 그는 지금 낯선 집에서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젠틀맨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또 들개 이야기를 해야한다. 마치 임꺽정이 활동하던 시대의 산적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녀석은 유기된 뒤 몰려다니는 들개 떼에게 뒤로 공격당해 꼬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내가 밥을 주기 전까지 이곳의 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져 먹으며 살았다. 내가 살던 한옥지붕 위에서 힘들게 살고 있던 고양이 일가족 때문에 얼떨결에 급식을 시작한 것이, 어느덧 캣맘이 되고 말았다. 이 근처에서 잠깐씩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 사람이 없지는 않았으나 불규칙적이었을 뿐 아니라 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마저 어느 날 뚝 끊겨버렸다. 딱 한 군데만 더, 딱 한 번만 더, 하며 늘어난 급식처가 많아서 나는 어떤 고양이들이 내가 주는 사료를 먹는지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젠틀맨이 다쳤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등 뒤로 검은 운동화 끈 같은 것을 늘어뜨린 채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유심히 살펴본 것은 “꼬리에 뼈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들었던 대로였다. 캣맘으로 오랫동안 살다보니 “즉사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입에서 불쑥불쑥 튀어나가곤 한다. 다친 채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보는 순간이다. 젠틀맨도 그 상태로 한 달을 살았다.

냇물에서 물방개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내가 이처럼 길고양이를 잡아야만 하는 상황을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한 채 나는 또 녀석을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절대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녀석은 잡을 수가 없었다. 녀석은 조금만 분위기가 이상하다 느끼면 홱 돌아서 가버렸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 녀석이 좋아하는 습식 먹이가 있는 내 옆으로 다가올 때 손으로 잡아서 이동장에 넣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그 방법 또한 불가능했다. 내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요란하게 뛰는 바람에 청각이 밝은 녀석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홱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냥 죽도록 둘 수밖에 없다고 수없이 단념했지만, 한 번 마주친 뒤로 자꾸 눈에 띄는 녀석에게 무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빨리 그 문제를 해결해 버리려고 녀석을 찾아다니기에 이르렀다. 그때 마지막 방법이 하나 더 있음을 알았다. 녀석도 한 번쯤은 방심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거였다. 그때부터 나는 포획틀 안에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어쩔 수 없이 알게 된)을 넣어두고 익숙해지도록 유도했다. 일 주일이 넘도록 녀석은 딛는 순간 문이 닫히는 발판 앞에 있는 간식만 먹을 뿐, 마지막 한 걸음을 자제한 뒤 사라졌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앞두고도 절대로 한 발을 더 딛지 않는 동물의 자제력이 믿어지지 않았다. 녀석은 그 몸을 하고도 단짝인 암컷이 먼저 먹은 뒤 먹었고, 그 암컷이 낳은 새끼들과 코인사도 하며 털도 정리해주었다. 나는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지만, 병원에서 약을 짓느라 할 수 없이 젠틀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녀석은 이름에 맞는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잡히던 날, 추운 날씨였음에도 너무도 긴장한 나의 외투까지 땀에 흠뻑 젖었다. 자꾸만 도망치는 녀석을 좇아 포획틀을 든 채 동네 언덕을 수없이 오르내릴 때 머릿속에서는 ‘즉사가 좋은 거야!’라는 외침이 높은 파도처럼 솟구치곤 했다.

그날 녀석이 잡혔다. 한순간 긴장이 풀렸고, 포획틀을 작동시키는 발판을 디뎠던 것이다. 그 즉시 병원으로 간 젠틀맨의 꼬리는 조금도 남김없이 절단되었다. 겨울이라 꼬리뼈의 괴사가 엉덩이뼈까지 진행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나는 아직도 젠틀맨을 포획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잡아 놓고 보니 상남자로 느꼈던 젠틀맨이 너무도 순하고 겁이 많은데 좀 놀랐다. 겁이 많기로는 우리 집 다른 고양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젠틀맨은 우리 집 다섯 고양이와는 격이 좀 다르다.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철장에 있는 녀석을 이동장에 넣을 때는 꽤 긴장하게 되지만, 왠지 녀석이 나를 공격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순화되지 않은 고양이의 특성을 생각해 발톱만은 조심해야 한다. 녀석은 오직 방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할킬 수 있으니까.

녀석을 병원에 데리고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모는 차를 타야 할 때도 있다. 아침부터 기사에게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것도 싫고, 분노하거나 비굴해지고 싶지도 않아 나는 젠틀맨을 이동장에 넣어 등에 지고 걸어서 병원으로 간다. 녀석은 자신이 살던 곳의 냄새를 아는지 그 장소를 지날 때면 버둥거리며 절규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곧 녀석은 잠잠해진다. 병원에서는 두 사람이 붙어 녀석을 치료하고, 세 대의 주사를 맞은 뒤 집으로 돌아온다.

밖에서 녀석은 그처럼 아픈 중에도 사료와 간식을 먹었다. 날이 추운 겨울인데다, 그래도 꾸준히 사료를 먹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집에 들인지 일주일만에 녀석은 약이 섞인 간식을 고뇌에 찬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왠지 ‘먹어주는 것’만 같았다. 젠틀맨의 얼굴엔 ‘당신은 나를 너무도 괴롭히는 사람이지만, 나쁜 뜻은 아닌 것 같으니 약을 먹기로 했어요’라고 쓰여있었다.

치료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생각해 보니, 젠틀맨에겐 좀 행운이 따르는 것도 같다. 사실 심하게 다친 길고양이가 바로 입양처로 가지 못하고 집으로 오면, 캣맘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언제든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세입자다. 순화되지 않는 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따른다. 이미 우리 집에는 그런 고양이가 다섯 마리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틀맨이 포획될 때는 묘하게도 행운이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고, 도와준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젠틀맨보다 더 상황이 나쁜 고양이를 여러 번 입양 보냈다. 놀랍게도 불행한 고양이들이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 입양되었다. 다칠 때와 똑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 장소에다 완치된 고양이를 다시 방사하지 않고 입양시키겠다는 의지를 내가 힘들게 세우면, 언젠가는 좋은 입양처가 나타나곤 했다. 나비처럼 나풀대는 흠 없고 예쁜 아깽이를 고집한 사람이 오히려 믿지 못할 행동을 했음을 나는 기억한다. 며칠 전에는 젠틀맨이 다친 장소에서 대장 고양이가 또 들개에게 당해 싸늘하게 식은 채 발견되었다. 꼬리가 없어 중심이 흔들리는 굼뜬 젠틀맨을 그곳에 다시 풀어놓지 않기로 결정한 건 잘한 일이다.

그러니 젠틀맨아, 힘을 내렴. 너는 십 년 캣맘인 나의 첫 행운! 하지만 너를 보내련다. 낯선 곳에 적응해야할 힘든 시간들이 아직 한 차례 더 남아 있지만, 그게 삶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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