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성 개념 양지로 끌어내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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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보기드문 공무원 정부효씨. <사진·민원기 기자>

여성운동 하는 남성 공무원 정부효

이 남자가 또 사고쳤다. 2년 전 서서 오줌누는 여자와 치마 입는 남자를 운운했던 남자, 이번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책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행정자치부 정부효 사무관이 주인공이다. 네 살배기 이란성 쌍둥이, 아홉 살짜리 딸을 둔 정 사무관의 여성관이 궁금하다.

때로는 직업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관에 변혁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로 이 남자처럼.

“남성 영역이 점점 축소되고 부드러운 여성성이 확대되는, 피할 수 없는 성의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어요. 남성은 남성성을 기본으로 여성성을 얼마나 많이 흡수하느냐, 여성은 여성성을 기본으로 얼마나 남성성을 잘 흡수하느냐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죠. 이제 남성성 여성성을 서로 나누며 즐기는 시대가 왔어요.”

2001년 <서서 오줌누는 여자, 치마입는 남자>라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양성평등과 여성문제를 다룬 책을 쓴 행정자치부 상훈담당관실 정부효(41) 사무관이 이번에는 ‘양성성’을 주제로 한 책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를 펴냈다. 남성 공직자가 여성문제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썼다는 사실은 왠지 심상치 않다. “남자가 왜 하필?”이란 질문도 한 두 번 받아본 게 아니다.

여성운동 남성과 어우러져야 성공

정 사무관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동력은 바로 그의 ‘직업’에 있다. 정 사무관은 2000년 2월 행정자치부 여성정책담당관실에 발령 나 2001년 10월까지 일한 바 있다. 40년 가까이 가부장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그에게 여성정책담당관실 업무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여성정책담당관을 하면서 처음엔 갈등이 많았어요. 여성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여성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교재도 없었고 정책 집행할 때 해법이 되는 체계적인 내용도 찾기 어려웠죠.”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 기반이 취약했던 현실은 오히려 그에게 ‘힘’이 됐다.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 여성계가 내놓는 자료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그만의 교재로 만들었으며 미국·일본·캐나다 등 해외에 나가 그 나라 사례들도 깊이 있게 분석해 그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스스로 공부’ 뿐이었다면 지금의 정 사무관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도 잊지 못할 스승이 있으니 바로 황인자 서울시 복지·여성정책보좌관이 그 주인공. “그 당시에 황인자 보좌관님이 여성정책담당관이었는데 여성문제는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박학다식했죠. 그 분의 지도가 아무 것도 모르는 제게 무척 큰 힘이 됐어요.” 정 사무관은 황인자 보좌관을 백과사전이라고 거리낌없이 치켜세운다. 자기는 그의 수제자(?)였다는 자기자랑도 은근슬쩍 내비치면서.

정 사무관은 여성정책담당관실에서 지금의 상훈담당관실로 옮긴 지 1년 조금 넘었다, 하지만 여성정책담당관 시절에 쌓은 내공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여성들이 정부 포상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지침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 외에도 상훈담당과에서 할 수 있는 여성관련 이슈들을 껴안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이란성 쌍둥이 키우며 남녀차 관찰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도 내공이 커지면서 나오게 된 결과물. 특히 <서서 오줌누는 여자, 치마입는 남자>를 쓴 이후로는 늘 남성과 여성의 근원적인 문제를 마음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고.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아마도 저만큼 여성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고민하고 공부한 남성은 없지 않을까 해요.”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말이 괜한 자만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된다. 특히 이번에 나온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학계에서 논의해온 양성성의 개념을 양지로 끌어내어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 년 넘게 주말과 휴가를 이 책에 반납했다”는 정 사무관의 정성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여성운동은 남성과 여성을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토론이 많아져야겠죠. 마음 속에만 담아둬서는, 함께 이야기하지 않고는 풀리기 어려워요.” 그런 점에서 여성부도 이름을 ‘성 평등부’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가 내놓은 간곡한 제안이다.

4살 된 이란성 쌍둥이 남매와 9살 된 딸까지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정 사무관은 집에서의 ‘성 평등’부분은 왠지 자신이 없다. “제가 쓴 책을 보고 아내가 ‘그런 좋은 책을 쓰는 사람이 그거밖에 못하냐’는 핀잔도 주곤 하죠. 아무래도 아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집안 일에 적극적이지는 못한 거 같아요.” 하지만 빨래나 청소는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라면 끓이는 건 아내가 못 따라올 정도예요. 휴일마다 이불을 털어 먼지를 없애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은 걸요.”

이란성 쌍둥이를 키우고 있기에 생물학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생기고 변화되는지 유심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정 사무관. ‘이란성 쌍둥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본 남성과 여성’이라는 새로운 사례집이 그의 손을 빌어 나오게 될 가능성, 충분하지 않을까.

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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