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사회 권위주의적 교장 만들어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예술가 교장 없나

내가 아는 한 인류학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교육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 날 통화를 하다 우리는 동시에 교장 선생님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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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교육자의 인품이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사진·우리교육 최승훈>

그 교수는 “위선과 가식 덩어리인 학교장, 교감과 이제는 상종하기도 싫다. 문화 상대주의로도 더는 이해해줄 수 없다. 문화인류학자로서도 포기했다”는 요지의 교장과 교감에 대한 절망과 불만을 터뜨렸다. 막 운영위원이 돼 교장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도 당시는 비슷한 수위의 절망을 표하며 공감의 말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운영위원회 안건 하나 하나에 소신 있게 내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이 ‘도깨비 뿔 달린 요괴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교장 선생님과 같은 인간인 사람의 그저 다른 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교장 선생님과 어느 정도 편안한 관계가 되기까지 1년 세월이 흘렀고 그 시점에서 교장 선생님은 전근을 가셨다.

식민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위기인성 중 엘리트형의 전형적 예가 바로 ‘권위주의’로 표상 되는 교장 선생님들이 아닌가 싶다. 나와 마찬가지로 학부모위원이었던 또 한 분의 전교조 소속 교사와 내가 힘들었던 만큼이나 ‘네’‘네’ 하는 편한 학부형이 못됐던 우리도 교장 선생님께는 꽤 힘든 존재였을 듯 싶다.

후임으로 오신 교장 선생님은 이전 교장 선생님보다 10년은 젊고, 그만큼 역사의 아픔이 남긴 상처에서 멀리 있어서일까, 오자마자 선생님들로부터 덕장(德長)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넉넉한 분이다.

운영위원회 분위기도 180도 달라졌다. 비로소 권력의 무드가 사로잡지 않는 편안한 회의 분위기가 이뤄졌다. 이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수입 콩의 유전자조작 가능성과 그 위험성에 대해 준비해간 자료를 나눠주고 위원들에게 설명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내 의견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져 이제 아이 학교에서는 우리 콩, 두부, 콩나물, 된장과 우리 밀을 쓰고 있다.

참고로 이전에는 1㎏에 천 몇 백원 하는 화학발효 된 된장을 먹었는데, 이제는 같은 단위가 7000원 하는 자연 된장을 먹는다. 고기 3번 먹던 걸 두 번으로 줄이니 급식비를 올리지 않고도 이 정도 급식 변화는 가능했다.

우리 밀이 튀김을 하면 맛이 없어 못쓰고 있다는 영양사의 말을 듣고 아쉬워하던 중에 튀김용 우리 밀이 나왔다. 바로 사들고 가 영양사에게 건네줬다. 이전의 교장 선생님 체제에서라면, 내가 직접 영양사와 이런 교류를 하는 것은 사회로 치면 국보법 위반쯤의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밀가루 품목 하나를 바꾸기 위해 강한 소신을 보여야 의견이 청취될 수 있을 거라는 압박감을 가지면서 밀가루의 위해성에 대한 설명을 강행군해가면서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한 먹거리를 먹이자는 공감대가 운영위원 회의에서 한번 형성된 이상, 밀가루 품목 바꾸는 일 정도는 급식에 관심 있는 운영위원 한 사람이 영양사와 직접 협의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새로운 교장 선생님 밑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교육청의 급식 검수에서 우리 학교가 최고 점수를 받았고 교장 선생님은 운영위원들 덕분이라고 하니 나 또한 어깨가 으쓱해졌다.

교장의 젊은 마인드가 학교를 변화시켜

새 교장 선생님은 이웃 학교랑 약속된 친선 축구 시합을 상대 학교에서 준비가 귀찮다는 이유로 무산시키려 하자, 어른들이 아이들과의 약속을 파기할 수는 없다며, 그리고 시합이 무산되면 고대하던 아이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냐며 끝까지 시합을 성취시켜 냈다.

이전의 동요 대회는 가족이 나가면, 온 가족이 드레스 같은 옷을 맞춰 입고 나가야 하는 등 전시성 행사로 치러져 호응도가 낮았으나, 이번에는 아이들도 원하면 까다로운 요구 없이 다 하게 하니 동요대회가 참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잔치가 됐다.

이웃의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복지관의 복지사를 교장 선생님이 한 번 만나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보내라고 했다. 복지사를 만난 교장 선생님은 장애인을 위한 무료 전동스쿠터 구입 사업의 지원을 어린이회 일로 넘겼고 어린이회는 자발적으로 의결하고 모금을 해 복지관에 전달했다.

아이는 교장선생님이 조회 시간에 해준 이야기라며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형을 거미인간, 개미인간, 꿀벌인간으로 구분하면서 내게 소상하게 전달해줬다. ‘조회’하면 지겹게 서 있던 생각뿐이 나지 않는 내게 아이의 반응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눌한 교장 선생님의 화법이지만, 진실이 담겨 있고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 이 광경은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간의 심적 교감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정도 되면 교육이 예술이라고 할 만도 할 듯하다. 교장 선생님 부임 몇 달 동안 일어난 이 변화를 보면서 나는 ‘교장은 학교의 얼이다. 교장은 학교의 100%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토요일에 아이 반 청소를 하러 가서 청소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교장 선생님은 100%인 거 같아요”라는 내 말에 담임 선생님은 “아니요. 120%예요. 예전보다 우리가 일을 덜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알아서 하게 해주시니까 그렇게 편안할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결국 답은 사람이고 인품이었다.

교장의 부당한 권위와 이로 인한 관료 행정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교장선출보직제니 다면평가제니 하는 제도 도입이 교육운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제도도 바뀌어야겠지만, 그 어떤 제도라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실 사람은 제도의 불합리함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삶의 본원이거늘. 이제 위기인성은 교장 선생님 자신이나 학교 경영에도 장점이 되지 못함을 교장 선생님, 그리고 교장 후보자들이 스스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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