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와 선언 벗은 여성주의 문화운동

구호와 선언이 사라진 지 오래. 여성운동 내 문화축제 열풍이 뜨겁다. 호주제 폐지, 양성 평등, 여성의 섹슈얼리티 등 각종 이슈를 문화로 풀어내는 방식은 과거 ‘대놓고’ 여성 관련 이슈들을 주장하던 캠페인성 운동에 외면했던 이들을 즐기고 공감하는 현장으로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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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안양 여성의전화가 주최한 ‘희희낙락’ 페스티벌에는 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여성관련 이슈를 담은 문화행사를 즐겼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에 대한 욕구를 가진 새로운 세대와 이를 공감할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된 것. 말하지 않지만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을 과감히 공론의 장에 쏟아 놓는 시도를 통해 낯설지만 왠지 즐거운 느낌으로 여성주의를 전달하는 방식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대구여성 ‘안티가부장제’ 페스티벌

축제 행사 자체가 드물었던 지역. 지난 5일 어스름해질 무렵이 되자 안양 여성의 전화가 주최한 여성주간 기념 ‘희희낙락’ 페스티벌에 하나 둘 오가던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무대에 오른 출연진부터 행사 기획을 맡은 이들까지 너무나 젊다. 십대 여고생에서 중년 아저씨들까지 일단 불러모아 천여 명 가량이 오가며 여성 이슈들을 접하게 한 행사에는 운동하면 떠오르는 일방적인 캠페인과 구호가 사라졌다.

올해 4회를 맞은 대구여성회 ‘안티 가부장제’ 페스티벌은 남성 12명의 심층 인터뷰와 162명의 설문 조사 결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이중성문화 깨기’라는 주제로 술 중심적이고 여성이 배제된 회식 문화를 비판하는 퍼포먼스와 폭력적 성문화를 질타하는 재즈댄스를 공연하면서 이중성문화 깨기, 손바닥 도장 찍기 등의 내용으로 시민의 참여를 유도했다. 문화를 통해 풀어내는 여성운동의 내용과 방식이 그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희희낙락’페스티벌 기획에 참여한 실무진들은 “과거 여류 문예가, 장한 며느리상 시상 등에 치중했던 여성주간 행사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고 평한다.

“우리의 경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게 문화운동 형식으로 나타나는 건데, 제가 나가서 인권이 어떻고 하면 지나는 사람들은 그냥 시끄러워서 쳐다보잖아요. 근데 춤을 한번 추면 다들 모이거나 본다는 거죠.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일단은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희희낙락’페스티벌 총 기획을 맡은 후추는 여성주의 퍼포먼스 집단 페미먼스의 리더다. 후추의 경험이 대변하는 세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이슈들을 녹여 춤추고 노래하고 전시하며 여성주의를 말한다.

99년 만개하기 시작한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또 다른 축은 이슈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문화공연이 아닌 적극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실천으로서의 문화운동이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 균열을 내고 여성이 생산하는 문화, 주체로 참여하는 문화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 페미니스트 저널 의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월경’이라는 소재를 공론화 한 월경 페스티벌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학 내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불턱’이라는 여성주의 문화운동 기획 집단은 1회 ‘유혈낭자’를 거쳐 2회 ‘달떠 들떠’, 3회 ‘얘기치 못한 즐거움’과 4회 ‘경칠년들’을 진행해 왔다.

안양여성 ‘희희낙락’ 축제

1회 월경 페스티벌을 기획했던 찰흙은 “당시 월경이라는 소재를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거나 희화화해서 오히려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신성화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여성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야기하여 사회화하자는 단순한 의도였지만 실제 기획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고 말한다. 워낙 새로운 컨셉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았던 점, 아직까지 여성의 문화를 표현하는 언어가 부재한 데서 왔던 어려움도 덧붙인다.

대학 내 한정성을 탈피하려는 고민을 담아 올해 5회 째를 맞는 월경 페스티벌은 즐기는 공간으로서의 페스티벌 뿐만 아니라 재정 확보를 위한 영화제 개최, 적극적인 담론 생산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문화 영역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여성을 위한 소통 공간을 확보하려는 이들도 있다. 97년 캠퍼스 내 여성주의 문화실험 모임으로 출발한 ‘움’, 현재 ‘아작’으로 활동하는 움의 멤버들은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록 음악에 도전해 7명 가량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를 만들었다.

멤버 김후영씨는 “가부장제라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도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공감대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양한 여성,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문화운동만큼 적절한 도구가 없다.”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50) 대표는 “말과 글로 변하지 않는 현실에 감성으로 다가가는 축제로서의 운동이 갖는 의미가 있다”며 “당위성보다 취향과 여건에 따라 진행하는 문화운동이 가능해진 만큼 보다 해방적인, 축제다워진 여성주의 문화운동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전한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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