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국적’을 떼고 생각해봐야 할 이유
[반하라 칼럼] ‘국적’을 떼고 생각해봐야 할 이유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0.03.12 14:52
  • 수정 2020-03-12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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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커우 기차역에서 마스크를 쓴 한 가족이 짐을 끌며 역을 나서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국을 방문한 3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미국 시애틀 내 병원에서 격리 치료 중이며 현재 상태는 양호하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에서 발발한 첫 우한 폐렴 감염 사례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월 21일(현지시간)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커우 기차역에서 마스크를 쓴 한 가족이 짐을 끌며 역을 나서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국을 방문한 3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미국 시애틀 내 병원에서 격리 치료 중이며 현재 상태는 양호하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에서 발발한 첫 우한 폐렴 감염 사례다. ⓒ뉴시스·여성신문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중국인을 막아야 한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대구 시는 일본과 같다’, ‘이탈리아 인들을 막아라’, ‘한국인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전염병 공포가 확산되면서 국내외를 불문하고 ‘국가기표’를 붙힌 차별도 바이러스같이 번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무슨 국적이 있다고 ‘공포’가 생기면 특정화된 국가 범주로 개인들을 차별화해서 그들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는 폭력이 악성 전염병같이 나타난다.

코로나 바이러스 19전염병 발생 이전부터 “‘조선족’은 우리와 섞일 수 없는 중국인”이고 “한국의 기생충일 뿐”이라며 혐오로 일관하는 조선족에 대한 공격은 소셜미디어에서 아무런 법적 제재없이 만연했다. 연초에 전염병 위험성에 관한 보도가 나오자 병의 발생지인 우한은 물론 중국방문도 하지 않았던 한국의 ‘조선족’ 주민들이 중국 국적자라는 이유로 맨 먼저 호명되었다. 그들의 상권이 마비되었다는 보도를 본지 오래다. 후에 ‘신천지’ 교도들중에 전염병 확인자들이 많이 나오자 ‘신천지’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소셜미디어를 달구었다. 그러자 ‘신천지’ 구원에 다급해진 어떤 세력들은 신천지는 ‘결백’하고 감염을 원인은 ‘조선족’이라고 지목하면서 ‘조선족’주민들에 대한 가해를 이어가고 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두만강 너머 청나라 영토는 일제강점기까지 ‘간도’로 불리면서 조선이주민들이 개척해 살던 곳이다. 그처럼 수많은 식민지 조선인들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이주했는데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을 거쳐 이어진 냉전체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귀국이 막혔다. 그렇게 중국에 체류하게 된 조선인들은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에 중국국적자와 북조선국적자로 나눠진다. 그들의 선택과는 무관했다. 모택동과 김일성의 합의에 따라 중국의 ‘산해관’ 이북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인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 되었다. 상해와 같이 산해관 이남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북조선 국적의 외국인 체류자가 되었다. 한가족이라도 중국의 산해관 이북과 이남에 따로 살고 있었다면 서로 외국인이 된 것이다. ‘국적’이란 이처럼 개인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규정되기도 하고 그들의 선택과 별개였다. 조선족들은 그들의 국적을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국적선택 유무에 관계없이 그들을 ‘중국인’이라고 구별해내면서 그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과 언어폭력은 반드시 걸러지고 제재되어야 한다. .

20세기의 유럽에선 다른 나라로 이주하지도 않고 태생지에서 68년 전 생애를 보냈지만 다섯 번이나 다른 국적자가 되어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던 사람도 있다. 1971년에 벨기에 사람으로 사망한 ‘에밀’의 경우이다 (다비드 반 레이브루크의 책 『아연』, 2015).

에밀은 ‘바티칸’이나 ‘모나코’보다는 크지만 초미니 규모의 중립국인 모레네-뉘트르(Moresnet-Neutre 1816-1920) 에서 1903년 독일인 미혼녀의 아들로 태어나서 다른 가정에 입양된다. 에밀의 엄마는 고향을 떠나 뒤셀도르프 시에 가서 한 공장주 집의 하녀로 일하다가 주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는 임신한 몸으로 독일을 떠나 모레네-뉘트르에 피신가서 아이를 낳고 산파의 도움으로 아기를 입양보내면서 아이의 양육비를 보낸다는 계약을 맺는다.

에밀은 출생과 함께 독일이 아닌 중립국 국적을 얻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중립국은 침입을 받고 독일 영토가 되면서 11세가 된 에밀의 국적은 독일국적으로 바뀐다. 전쟁이 끝나고 과거 중립국이었던 모레네-뉘트르는 패전국인 독일 영토에서 승전국인 벨기에 왕국의 영토가 된다. 에밀의 국적은 벨기에 왕국의 국적으로 바뀐다. 1923년 벨기에 군대에 징집된 에밀은 독일의 최대 공업지대인 뤼르 지방을 점령한 프랑스와 벨기에의 군인으로 복무하게 된다. 그곳에서 에밀은 독일인 친부를 처음 찾아가지만 점령군에 대한 적개심이 충천했던 독일인에게 벨기에 군복을 입고 나타난 덕에 문전박대 당한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에밀의 고향은 다시 독일에 점령되고 옛영토 탈환지역으로 규정되어 독일군 징집지가 된다. 42세의 부양가족이 많은 에밀은 첫 징집을 피하지만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40만명을 잃은 나치정권은 에밀마저 징집해서 전쟁포로를 지키는 독일군으로 복무시킨다. 아이를 많이 낳은 에밀의 아내에게 나치독일은 ‘독일엄마’ 표창상을 주지만 에밀부부는 거부한다. 아기의 이름에 나치 고위간부의 이름을 주던 대세에 반해 테어난 아기에게 벨기에 왕의 이름을 주는 등 위험을 감수하면서 저항했던 에밀 부부지만 결국 나치정권의 독일 제3제국 국적의 독일군까지 되어야만 했다. 에밀은 전쟁이 끝나기 얼마 전 탈영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독일군 복무사실 때문에 레지스탕스에 의해 체포되어 프랑스 쉘부르 지역의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다. 포로수용소의 환경은 혹독했고 다른 독일군 포로와 똑같은 ‘노예’ 노동에 시달리다가 살아서 집에 돌아오지만 인생의 마지막20년을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바깥만 응시할 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지내다 사망한다. 전후에 그의 고향은 다시 벨기에 영토가 되어 그의 국적은 다섯번 바뀌게 되었다.

에밀의 경우와 다른 부침이 심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살았던 한반도인들도 여러번 국적 변경을 경험했다. 이처럼 ‘국적’이 자연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선택과도 무관하게 개인들을 억압해온 역사적 현실을 이해해본다면 마치 국적이 ‘본질적’인 것마냥 개인을 ‘국적’으로 구별된 ‘타자’로 규정해서 차별화하는 건 부조리할 뿐인데 이런 부조리에 편승하는 타성적 공모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의 서쪽 이웃과 동시에 우리의 동쪽 이웃과의 관계도 ‘국적’에 막히지 않고 먼저 같은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열린 미래의 지평을 펼쳐야 한다. 투명하고 열린 태도로 함께 협력해야만 코로나 비이러스 19 전염병 사태와 같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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