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W정치 인사이드] 미래통합당의 여성공약에는 가정폭력이 없다
[신지예의 W정치 인사이드] 미래통합당의 여성공약에는 가정폭력이 없다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 승인 2020.03.12 13:04
  • 수정 2020-03-12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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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여성안전공약집, 가정폭력 언급 없어
더불어민주당 가정폭력 가해자 체포우선주의 도입
정의당/국민의당 가정폭력처벌법 패러다임 전환 약속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 앞다투어 여성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W정치인사이드는 4.15 총선에서 각 당의 여성 정책을 분야별로 나눠 샅샅이 분석한다.
'디지털 성폭력', ‘스토킹 범죄’ 편에 이어 3편에서는 '가정폭력' 공약을 다룬다.

 

‘전처 살인사건’ 피해자 딸의 국민 청원글 내용 캡처


“엄마를 살해한 아빠를 사형해주세요” 

'전처살해사건'의 피해자 딸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글 중 일부다. 한 여성이 전 남편의 스토킹과 협박 끝에 살해당한 '전처살해사건'은 한국사회 가정폭력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출신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아내 살해 사건도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정폭력처벌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 심각성은 여전하다.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 뿐 아니라 성학대, 정서적 폭력, 스토킹, 살해까지 포함된 심각한 범죄지만 법 집행은 여성인권보다 가정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가 가정폭력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단호히 대처하도록 법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성공약을 발표하는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 뉴시스·여성신문

미래통합당 여성공약집에는 가정폭력이라는 단어가 없다.

미래통합당은 여성공약 첫 장은 ‘남녀 간 성별 갈등은 건국 이래로 가장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다’로 시작한다. 이어 '신종범죄가 여성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지만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실효성 없는 정책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또한 ‘안이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통합당의 여성공약집에는 가정폭력 관련 공약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성인지 관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미래통합당 여성 안전 공약에는 ‘여성 행복은 곧 사회공동체의 근간인 가족 행복의 출발점’이라는 선언이 담겨있다. 그러나 여성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등치하는 관점은 가정폭력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 문제였다. 여성계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은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인권 보호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가족행복을 강조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가정폭력처벌법의 패러다임 전환을 약속했다.

정의당은 가정폭력처벌법 1조 입법목적부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보장’으로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이 가정폭력을 단순한 ‘가족관계’로 치부하고 ‘가정 내 경미한 범죄’로 여겨지게 만든다는 게 정의당의 진단이다.

또한, 정의당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전면 폐지하고, 가정폭력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고 재범 방치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가해자 상담 관리감독 강화를 위해 가해자 상담을 피해자 지원기관이 아닌 별도 기관에서 시행한다. 피해자를 위한 초기 응급 조치와 피해자 보호 및 자립 지원제도 강화도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법의 목적조항은 법 집행의 핵심 방향을 결정한다며 정의당의 해당 공약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가정보호와 유지’라는 입법목적을 삭제하고 오로지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보장’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가정폭력처벌법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현행법 상 가정폭력처벌법은 ‘건전한 가정의 육성 및 가정의 보호와 유지’와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 보호’를 동시에 목적으로 두고 있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전면 폐지 공약도 중요하다. 그동안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조항을 근거로 가정폭력 가해자가 상담을 받으면 형사 처벌이 면제되기도 했다. 여성계는 오랫동안 ‘상담은 처벌이 아니’라며 가정폭력처벌법의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의 폐지를 주장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국회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18년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20대 국회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 여성신문

 

국민의당은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하여 가정폭력범을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폭력처벌법 목적부터 ‘가정의 회복’에서 ‘피해자 보호’로 바꿀 것이라며 가정폭력에 대한 정부 대응 방향을 전면적으로 선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국민의 당은 또한, 가정폭력 대상의 범위와 유형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혈연 관계 뿐 아니라 가해자 사이에 자녀가 있거나 동거 관계, 데이트 관계까지 포함하여 가정폭력 대상의 범위를 넓히고 가정폭력 유형의 범위에는 WHO 기준인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과 함께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행위인 가스라이팅도 포함시키겠다는 내용이다.

가정폭력 사건발생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하고, 임시 접근금지 명령의 신속처리를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며 이메일, 전화, SNS까지 임시 접근금지 명령에 포함시키겠다고도 밝혔다.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의 폐지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처벌기준을 강화하고 피해자와 동반 아동까지 치유, 회복할 수 있는 시설과 임시주거공간도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당의 '가정폭력 피해자 기준과 피해 범위 확대' 공약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해당 내용이 개정된다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가정폭력 사건들이 형사사건으로 인정될 것이라 예상된다. 데이트폭력 관련한 별도의 입법이 없더라도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 현행 법 샅 가정구성원의 범위는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 동거하는 친족 등으로 협소하게 한정되어 있다. 성적 폭력, 경제적 압박 등 여러 형태의 폭력이 가정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구제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상당하다.

 

민주당 2020총선승리를 위한 여성당당 선포식 ⓒ 뉴시스·여성신문

더불어민주당은 현장체포주의 도입을 약속했다.

현장체포주의는 경찰 단계에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피해 사건에 개입, 가해자를 현장에서 체포가능하게 하는 응급조치 강화 공약이다.

또한, 민주당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피해자 보호명령에 자녀 면접 교섭권 행사의 제한을 추가한다고 약속했다. 임시 접근금지 명령 등 임시조치 위반 시 과태료가 아닌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도록 처벌 규정도 강화할 예정이다.

현장체포주의 도입은 피해자 및 가정구성원의 안전 확보와 추가 범죄 피해를 막는데 중요하다. 가정폭력 사건 신고 당일 폭력이 발생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명확하게 하지 않을 경우 현행범 체포 및 긴급임시조치의 비율이 낮아진다. 사건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별다른 제재나 경고 없이 돌아갈 경우 피해자는 경찰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지원 요청을 포기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경찰이 사건현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가정폭력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다. 미국 대부분 주에서 가정폭력 관련 법에 '체포우선주의'를 명시해놓았다. ‘체포우선주의’를 적용하자 가정폭력 재범 가능성이 10% 이상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영국 또한 체포 요건을 충족하면 경찰이 가해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명령에 자녀 면접 교섭권을 추가하는 조항은 2017년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중 일부 내용이다. 정춘숙 의원의 개정안 중 가정폭력 전담재판부를 지정하도록 하는 안이나 피해자에 대한 변호사 선임의 지원 등의 내용도 민주당 추가 공약으로 검토되기를 바라본다.

 

<정책 총평>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은 “가정폭력처벌법에 데이트폭력이 포함된다면 별도의 입법이 없더라도 데이트폭력 처벌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면서 “다만 현재 가정폭력처벌법 상 사건이 가정 보호사건으로 다뤄지게 되어 있어 처벌의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지금 정치권의 여성 공약은 ‘공허한 약속’”처럼 보인다면서 시작할 때는 현란한 약속을 내걸지만 선거가 끝나면 여성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말비판했다. 또한 “각 당에서 여성공약을 내걸기는 했지만 여성폭력 해결에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이수정 교수의 비판을 뼈 아프게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가정폭력 공약 언급조차 없는 미래통합당은 말할 것도 없다. 불과 6개월 여성 공천 30% 이상을 약속했지만 지금은 여성공천에 신경도 쓰지 않는 민주당이나 20대 국회에 여성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다른 정당들도 사실상 가정폭력을 묵인해온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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