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 DAE JEUNG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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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끔 캔디가 생각난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캔디가 생각나면, 나는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앉는다.

순하고 겁 많던 캔디는 2017년 한여름에 구조되어 친구 집에 갔다가 1년 막 지나서 잃어버렸다. 캔디를 입양했다 잃어버린 친구는 먼저 장미를 돌보고 있었다. 친구는 건강이 좋지 않고 가난할 뿐 아니라 금연할 의지도 없어서, 나는 장미를 그 집에 하루도 맡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온 동네가 혀를 내두르는 지독한 공사가 우리 집과 한 뼘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친구가 “이러다 얘 스트레스로 죽겠다”면서 임보를 제의했을 때 대안이 없었다.

장미는 가자마자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장미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애처로워하던 친구는 아깽이를 한 마리 입양해야겠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래서 길 건너 서촌, 부잣집 한옥 마당에서 공주라는 고양이가 낳은 아깽이를 입양 보냈다. 묘연이 아니었던지, 친구는 그 다음날 새벽 그 아깽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얘 말고, 정말로 불쌍한 고양이를 잡아줘. 얘랑은 안 맞는 것 같아. 장미도 무서워하고”

생각해 보니 그 아깽이의 엉덩이를 마당에 사는 백구가 핥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장미가 그 냄새에 기겁할 만도 했다. 내 부탁을 받은 동네 수의사 부부가 맨손으로 잡아서 데리고 온 아깽이가 캔디였다. 한 번 씻기자 캔디는 온몸의 털이 몽땅 빠져 푹 패인 살갗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심한 곰팡이는 처음 보았다. 캔디를 치료해 장미가 있는 집으로 보냈다. 장미는 캔디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할 때마다 빈 젖을 물리며 잘 보살폈다.

캔디를 치료하느라 옮았던 곰팡이균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데, 이제 캔디는 없다. 2018년 9월 20일 입양자가 잃어버린 뒤 찾지 못했다. 캔디는 인간의 집에서 일 년 정도를 살았을 뿐이다. 나는 SNS도, 카톡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카톡에 가입은 되어 있다. 잃어버린 캔디를 찾아다니던 봉사자가 고양이 사진을 보낸다고 하여 가입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마침 ‘집 나간 순자를 찾습니다’라는 제목 때문에 무심할 수 없었다. 순자는 잘 아는 친구가 개명하기 전의 이름이고, 지인의 집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카톡을 보낸 사람의 ‘옥’이라는 이름도 순자와 매치되었다.

카톡의 순자는 역시 내가 언젠가 들어서 알던 고양이였다. 순자를 잃어버린 곳이 우리 집과 가까운 서촌이라 사진을 눈여겨보았으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양이었다. 순자가 그 넓은 사직대로를 건너 우리 동네로 왔을 리는 없으리라. 그렇지만 수성동 계곡 쪽으로 올라가 인왕산 자락을 타고 움직였다면, 내 급식처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순자는 개성 있게 생긴 고양이라 마주치기만 한다면 못 알아볼 리 없다. 그러니 순자야, 제발 내 눈에 띄렴. 그러면 너는 집으로 돌아가 남은 생을 안전하게 살 수 있단다.

언젠가 나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고양이와 마주쳤다. 유기된 것 같은 예쁜 노랑이였다. 녀석이 유기되었다고 믿는 것은, 그 녀석을 찾는 전단지가 어디에도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그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달려와 구슬피 울어댔다. ‘캣맘을 알아보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하며 먹을 것을 주자 녀석은 눈물방울을 매달고 허겁지겁 먹었다. 예쁘고 호리낭창했던 그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살다가 엄청난 사고를 당한 뒤에야 우리 집에 들어왔고, 부잣집에 외동으로 입양되었다. 그 효리의 입양 1주년에 초대받아 거창하게 대접받으며 나는, 고양이 팔자도 사람 팔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캔디와 함께 버려졌다가 7~8개월 뒤에 구조된 복이가 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두 녀석은 만나자마자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순자를 잃어버린 지인에게 나는, 캔디를 찾으면서 알게 된 정보를 확신에 차 말했다.

“고양이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반드시 육 개월 안에 살던 곳으로 되돌아와요”

처음엔 나도 믿지 못했던 정보를 그분이 과연 납득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캔디를 찾아다니다 만난 사람들(무려 다섯 명이나!)은 하나같이 집을 나갔던 고양이가 알아볼 수 없는 몰골이 되어 정확히 육 개월 만에 사라졌던 장소에 다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때 알게 된 한 동물병원 원장(고양이박사라 할 만했다)도 ‘육 개월’을 강조했다. 산란을 위해 산천으로 돌아오는 연어도 아닌 고양이가 살아 있으면 반드시 육 개월 안에 사라졌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순자가 쓰던 모래를 대문 밖이나 창문 아래에 깔아두세요. 다른 길고양이들은 그냥 밟고 지나가도, 순자가 오면 그 모래를 발로 긁어서 흔적을 남겨요.” 나는 탐정에게 들을 말을 계속 읊고 있었다. “간식을 좋아했으면 캔을 달그락거리며 찾아다니면, 그 소리를 듣고 나올 수도 있어요.” 상대방의 침묵은 이해했다는 뜻일까,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다는 뜻일까.

“진짜로,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아깽이를 구해 달라”던 입양조건에 딱 들어맞았던 캔디. 6개월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캔디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힘주어 말했다. “순자가 살아있으면 반드시 육 개월 안에 돌아와요!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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