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이모·언니”…
일하는 여성 호칭의 정치학
부르는 방식 바뀌면
직업 가치 달라져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는 2011년 한식당에서 일하는 중장년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식당 여성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식당노동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이모’, ‘고모’, ‘엄마’ 등이 32%로 가장 많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는 2011년 한식당에서 일하는 중장년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식당 여성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식당노동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이모’, ‘고모’, ‘엄마’ 등이 32%로 가장 많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익숙한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 대신 ‘프레시 매니저’라고 불리는 것이 처음에는 스스로 낯설고 어색했어요. 하지만 고객들 사이·사내에서 저를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불러줄 때마다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서 좋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6년 정도 프레시 매니저로 활동 중인 김모씨(46)는 새로 만들어진 호칭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는 호칭이 새롭게 만들어진 후 업무 변화까지 느꼈다. 김모씨는 “프레시 매니저가 말 그대로 ‘신선 관리자’이다 보니 내가 전달하는 제품의 품질 관리부터 위생 관리까지 더욱 철저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호칭은 화자가 대화 상대방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넓은 의미로는 상대를 가리키는 지칭어를 포함하기도 한다. 호칭어에는 다양한 방식의 유형이 존재하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대화 상대에 대한 대우 정도를 문법 장치로 정교하게 표현한다.

부를 말이 마땅히 없는 식당노동자에 대한 호칭 조사도 있었다.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는 2011년 한식당에서 일하는 중장년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식당 여성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식당노동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이모’, ‘고모’, ‘엄마’ 등이 32%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아줌마’가 26%, ‘여기요’가 20%를 기록했다. 또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존중, 세상에 퍼지다. 식당노동자 호칭 공모제’ 활동을 전개해 250여명의 시민참여와 방송인 김미화·임지선 한겨레 기자·최은순 한국젠더법학회 회장·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모여 ‘차림사’라는 식당노동자의 새로운 이름을 선정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기업들도 노동자의 명칭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샌드위치 전문점 서브웨이는 매장에서 손님의 주문을 받아 샌드위치를 만드는 직원을 ‘샌드위치 아티스트’라고 호칭한다. 샌드위치 아티스트는 샌드위치 제조 외에도 빵·채소·고기 등 기본 식재료의 손질과 관리, 매장 위생, 고객 응대까지 담당하고 있다. 글로벌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바리스타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커피마스터’로 인정해준다. 커피마스터들은 지역커피마스터를 거쳐 ‘커피대사(앰배서더)’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는 특별한 직함을 취득하며 직원들의 목표 의식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한국 야쿠르트는 작년 3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땅한 호칭이 없어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던 명칭을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로 정했다. ⓒ한국야쿠르트
한국 야쿠르트는 작년 3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땅한 호칭이 없어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던 명칭을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로 정했다. ⓒ한국야쿠르트

한국야쿠르트는 작년 3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땅한 호칭이 없어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던 명칭을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로 정했다. 한국야쿠트르 홍보팀 강원석 대리는 “처음에는 프레시 매니저들이 호칭에 대해 낯설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에게 ‘매니저’라고 부르고 있다”며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프레시 매니저들의 말에 따르면 ‘프레시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직업적 자부심이 올라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야쿠르트에서 ‘프레시 매니저’라는 명칭을 만들기 전에는 고객들이 편의상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불렀던 것 같다”며 “정확한 명칭을 규정한 것은 작년이 최초이다. 이는 직업적 가치를 고민하면서 시도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창립 50주년을 맞아서 야쿠르트 외에 여러 식품을 제공하고 있는 프레시 매니저들의 전문성을 조금 더 제고시키고자 한 것”이라며 “이와 함께 유니폼에도 변화를 줬다. 기존 베이지색과 분홍색 조합에서 분홍색을 빼고 하늘색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바뀐 명칭의 실제 쓰임에 대해서는 “일부 고객께서는 아직도 ‘아줌마’, ‘여사님’, ‘이모님’이라고 한다”며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고객들께서 ‘프레시 매니저’라고 불러주신다고 현장에서 들었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호칭은 노동권리문제와도 귀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나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2011년 캠페인 당시 4-50대 여성 노동자들이 ‘불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했다”며 “최근에도 식당 노동자에게 들어보니 일하는 중에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며 이 점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식당 노동자 캠페인 당시 노동조건을 함께 검토하며 어떻게 불리는지에 따라 노동 조건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심정이나 태도·경험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림사’라는 명칭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공적 공간에서의 대우가 호칭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며 “미디어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호칭이 어떻게 다뤄지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나오 활동가는 “호칭은 관계 설정과 관련이 있다. 호칭이 전부는 아니지만 존중은 이런 부분에서 출발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특히 식당 노동은 가정 내에서 밥을 차리는 노동이 공적 공간으로 나온 것이고 그것을 여성이 주로 했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것이 저변에 깔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한 달에 1-2일밖에 쉬지 못하고, 하루 12시간 일해도 최저시급 정도 밖에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노동권리문제와도 귀결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식당에서 ‘고모’보다는 ‘이모’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의견에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족관계에서 자녀들은 고모보다는 이모와 조금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보통 양육을 엄마들이 했기 때문인데, 엄마의 경우 시누인 고모에게 양육을 맡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제2의 엄마라고 불리는 ‘이모’에게 주로 아이를 맡기게 되고, 상대적으로 고모보다 친근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