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 속에 여자의 인생이 있다
달리는 차 속에 여자의 인생이 있다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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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이자 쉼터 파트너이자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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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차 속에서 일도 하고 제주 석양을 보며 ‘진짜낭만’을 즐기기도 한다. <사진·민원기 기자>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면서 차의 활용도가 높은 오너 드라이버들은 하루가 더욱 활기차다. 우선 이들은 조금만 걸어도 비 오듯이 땀을 흘려야 하는 뚜벅이의 서러움과 이별했다. 또한 최근 납치 등 강력 범죄가 들끓는 심야에도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해가 길어진 탓에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탁 트인 야외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자동차는 이제 여성 오너들에게 이동을 위한 발의 역할 뿐 아니라 일에 있어서 동업자, 생활에 있어서 파트너의 역할까지 해 내고 있다.



무더운 여름, 막히는 도로에서도 여유만만. 불쾌지수 제로를 향해 달리는 그녀들에겐 자동차라는 은밀한 생활공간과 특별한 드라이브 스타일이 있다.



아이스박스는 여성오너의 센스



정재윤(23)씨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다. <앙앙>, <슈어>, <퍼스트 레이디>, <레이디 경향> 등 이름 있는 잡지에서 모델들의 의상과 스타일을 담당한다.



더운 여름이 되면서 정씨의 차에는 시원한 음료수와 과일, 초코바 등이 들어가는 작은 아이스박스와 쓰레기통, 먹은 후 냄새를 없애는 탈취제가 구비됐다. 직업상 모델과 기자, 사진작가들의 먹거리까지 챙겨주는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스태프들에게 건네 주고 가끔 자신의 목도 축인다.



그의 차 운전석 옆자리에는 언제든지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메모지며 볼펜, 명함, 핸드폰과 이동할 때 편리한 굽 낮은 신발이 준비돼 있다. 스타킹, 핀, 가위, 테이프 등 의상촬영시 필요한 도구와 팔찌, 코사지, 귀걸이 등 장식품은 뒤 트렁크에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정씨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꼬박 8시간. 오늘도 긴장된 마음으로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2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 이윽고 한적한 고속도로에 진입한 정씨. 신나는 음악을 켜고 선루프를 열었다.



“저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아요. 속도가 붙으면 바람의 저항이 세지니까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것 보다 선루프를 열고 달리는 게 훨씬 더 기분 좋아요. 소음도 적고 여름엔 상쾌하구요.”



여자에게 차는 동반자이자 애인



금방 비가 내렸다 해가 났다 하는 요즘, 스타일리스트인 정씨에게 차는 없어선 안될 든든한 동업자이자 숨은 내조자이다. 스케줄에 따라 무거운 옷과 액세서리를 챙겨들고 옷가게며 촬영장소 여러 곳을 번개처럼 자유롭게 옮겨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차를 구입한 지 6개월 만에 벌써 1만5000km를 달렸다.



“스타일리스트는 기동성이 생명이거든요. 운전하는 거 좋아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많은 짐을 한꺼번에 빨리 날라야 하니까 차는 될수록 크고 경비는 적게 드는 게 좋죠. 그래서 얼마 전에 차를 디젤로 바꿨어요.”



정씨의 애마는 아직 새 티를 벗지 못한 싼타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튜닝이나 장치를 하는 것이 오히려 걸리적거린다.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옷은 옷걸이에다 걸지 않고 전부 뒷좌석에 눕혀 차곡차곡 쌓아둔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만화가로 꽤나 유명해진 장차현실(40)씨. 그도 차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사람이다. , <스카이 라이프>, <보이스>, <보리> 등에서 자신의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데다 최근 다운증후군 딸 은혜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한겨레)를 펴내 서울과 양수리집을 오가는 일이 더 잦아졌다.



그의 차는 울퉁불퉁한 시골길도 거뜬히 달릴 수 있는 싼타페. 집이 시골에 있어서 자주 자동차 바닥이 긁히고 바퀴가 빠진다며 2년 전 차체가 높은 싼타페로 바꿨다. 그가 차를 위해 투자한 건 그다지 없다. 운전 경력 10년 동안 접촉사고 한 건 없다는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다만 자신과 딸의 안전을 고려해 운전석과 조수석에 에어백을 설치하고 여성의 엉덩이를 보호하기 위해 의자에 열선을 깔았을 뿐. 구질구질한 장식보다는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장차씨에게 차는 자상한 남편이다. 10년 전 그가 차 없이 충무로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 등에는 아이를 들쳐업고 양손에는 그림통과 필름통이 든 무거운 짐보따리를 들고 회사를 다녔다. 그 상태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도 곤혹이었다. 그런데 차가 생기면서 그가 짊어진 짐의 70%를 벗을 수 있었다.



차 속의 뮤직박스



“차에 아이를 내려놓으면서부터는 들고 다닐 짐도 가벼워지고 식사도 간단하게 해결하게 됐어요. 그 전보다 2, 3배 일을 더 잘하게 됐죠. 한마디로 기특한 고철덩어리예요.” 그가 아는 아줌마들을 만나면 꼭 운전을 해야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요즘처럼 날씨 좋은 철에는 창문 열고 쭉 뻗은 시원한 길을 내달릴 때 장차현실씨는 여유를 느낀다. 특히 아침 8시경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길은 너무나도 상쾌하다. 길 옆으로 강이 흘러가고 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산과 구름, 물은 매일 봐도 지겹지 않다.



이런 시간들은 그를 무더위와 일상에서 탈출케 한다. 차에서 한영애, 윤도현, 체리필터, 최근엔 로라 존스의 CD를 듣고 있으면 엄마로서의 역할을 잠시 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언제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스케치할 수 있도록 그의 옆 좌석에는 늘 스케치북이 놓여있다.



정휘숙(30)씨는 FM 라디오에서 잔뼈가 굵은 음악방송작가다. 하루 40분 짧은 출퇴근길이지만 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 소중하다. 그 날 그 날의 분위기에 따라 어떤 음악을 틀지, 누구를 섭외할 지, 청취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풀어놓을 지 머리속으로 미리 정해두기 때문이다.



정씨의 차는 흰색 레조. 직업이 직업인지라 차를 타면 맨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다른 주파수에서는 어떤 음악과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지 늘 모니터도 해야 하고 스스로도 재밌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램은 어느새 청취자의 입장에서 흠뻑 빠져 듣는다. 그러면 더위며 일, 주위시선까지도 잊게 된다. 멋진 음악에 진행자의 입담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다면 따로 피서를 계획할 필요가 없다고. 하루도 놓치지 않는 프로그램은 MBC FM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한번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한참 웃고 있는데 신호 대기중인 옆 차가 빤히 쳐다봐 창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덥고 짜증날 때는 TOTO의 , Barry Manilow의 가 좋더라구요. 여름에 어울리는 재즈나 연주곡을 들으면서 리듬을 타는 것도 괜찮구요. 저는 언니와 방을 함께 써서 차에 있을 때만 완벽하게 혼자 있거든요. 가끔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거나 유난히 별이 총총하게 빛나는 밤, 혹은 시원스레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혼자만의 ‘진짜 낭만’을 만끽하죠.” 독신을 고집하는 정씨에게 백마는 또 다른 애인이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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