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①]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행동한다
[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①]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행동한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3.06 07:25
  • 수정 2020-03-05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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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5월 일어난 사건
많은 연구자들이 분기점으로 해석
여성안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곧 현실에서의 운동으로 나타나
2020년까지 이어지는 중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가헤자 남성이 피해자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한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여성 폭력의 심각성을 알렸다. 사건을 보고 여성들이 느낀 ‘내가 당할 수 있었다’는 분노는 메갈리아로 촉발 된 온라인 페미니즘이 오프라인으로 터져나오는 계기가 됐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여성혐오와 여성안전에 관심을 갖고 페미니즘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20대 전후의 여성들, ‘강남역 세대’를 들여다본다.

 

2017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의 모습.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남역 10번 출구의 모습.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은 20대 전후의 여성들이 여성안전과 페미니즘에 대해 눈뜨게 만들었다. ⓒ여성신문

 

2016년 5월17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살해했다. 남성은 여성이 들어오길 기다려 무참히 살해했다. 사건이 알려지고서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였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은 4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사회의 여성 의제를 이끄는 힘이 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을 대중적 공론장으로 부른 사건이자 정치적 주체로서의 여성들을 부상시켰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를 깨닫고 페미니즘을 일상에서 실천하기 시작한 20대 전후의 여성들을 일컫는 ‘강남역 세대’는 왜 등장하게 됐을까? 

지난해 10월, 여성신문은 창간 31주년을 맞아 1990년부터 2000년 10년 사이 태어난 20대 페미니스트 여성 11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한 계기가 있다고 응답한 응답자 중 계기를 묻는 질문에 302명(25.83%)의 여성들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전후’라고 응답했다. 또 바로 전해인 ‘2015년 메갈리아 탄생’이라고 응답한 여성들도 178명(15.22%)에 달했다. 

여성들의 응답은 실질적 수치로 드러난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었던 2016년은 유래없이 많은 페미니즘 도서가 출판 된 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2016년은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가장 많이 출판된 해로 대략 80~100여종이 출간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년 8023권에 불과했던 페미니즘 관련 도서 매출권수는 2016년 3만1484권, 2017년 6만3196권으로 증가했다. 수많은 대학에서 여성학회나 여성주의 자치기구가 생겼던 때도 사건 직후다. 2016년 하반기에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교파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 모임 ‘참페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여성주의위원회 등이 생겨났다가 교내 반대세력에 밀려 사라졌다. 개인 사모임으로 결성된 단체는 셀 수 없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장은진(29)씨는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강남역에서 추모를 하던 중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언쟁을 벌였다. 장씨는 그때를 “잊을 수 없고 눈물이 나는 경험”이라고 말하며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은 그 전에도 있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을 ‘여자기 때문에 죽은 사건’이라고 사람들이 말해준 때는 그때였다”고 말했다. 장씨는 그 후 친구들과 함께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만들어 2년여 지속했다고 한다. 

많은 20대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우리사회의 주요한 사건으로 인식한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3주기 추모제 ‘묻지마 살해는 없다’를 기획했던 불꽃페미액션 한솔 활동가는 “여성혐오 범죄가 거의 최초로 이슈화 됐다. 큰 분기점이었다”고 말했다. 많은 연구자들 또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운동계 큰 사건으로 본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사회에서 심문되지 못한 죽음의 책임, 이에 대한 상실감과 애도의 욕망을 내면화한 새로운 하위주체들이 등장한 계기”라고 말한다.(2018,여성혐오와 젠더차별, 페미니즘:강남역 10번 출구를 중심으로)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또한 “논쟁과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20~30대 여성”이며 “2015~2016년은 한국 페미니즘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은 때”라고 말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이처럼 큰 사건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해당 사건이 동세대 여성들이 내면화하고 있던 생존에 대한 공포를 거의 처음으로 실체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거리에 선 페미니즘: 여성 혐오를 멈추기 위한 8시간, 28800초의 기록』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추모 포스트잇은 여성 공통의 경험과 연결성, 자각과 죄책감, 변화를 위한 다짐 등의 서사구조가 각본화된 것처럼 비슷했다고 지적한다. 연구자 조혜영은 “‘반성-자각-결의’라는 서사는 소위 메갈리아를 전후로 한 여러 장면들에서도 나타났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르러서는 현실적인 생존의 위협과 맞물려 훨씬 더 강도가 셌다”고 말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 여성들은 특히 여성 개인의 삶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사건들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앞선 여성신문의 설문조사에서 20대 여성들은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복수응답)로 '여성 안전'(75.5%), '성폭력'(64.8%)을 가장 높게 꼽았다. 이러한 경향은 2016년 10월23일 한국에서 열린 첫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Black Protest)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어 2018년 5월1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까지 이어졌다. 매번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열린 시위는 일정한 시위문화를 만들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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