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성들의 요구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국회
일상의 민주주의 실현 위해
여성이 국회와 세상 바꿀 때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2002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유행이라는 재난에 불안하고 두렵다. ‘대구의 공기를 마신 사람은 서울에 오지마라’는 말이 돌 정도다. 언론은 대구를 혼란과 혐오의 대상으로 보도한다. 재난 상황에서 특정지역의 혐오는 결국 특정지역의 분리와 배제로 이어진다.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무한경쟁만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의 경제적 불안은 여성을 라이벌로 상정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여성혐오는 여성살해, 여성분리와 배제로 이어졌고, 여성의 생존을 위협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특정지역의 혐오는 여성혐오와 닮아있다.

3‧8 세계여성의 날은 100여년 전 노동권과 참정권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없었고, 노동조건이나 사회적 환경도 매우 열악해 늘 생활고에 허덕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선거권 획득 투쟁은 미국에서 열린 여성의 날을 기억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올해로 서른 여섯 번째를 맞는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도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연기됐다. 전국에서 예정되어 있던 각종 여성의 날 기념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3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세계여성지위원회(CSW) 회의도 간소화된 절차적 미팅 외 모든 일정이 공식적으로 연기되었으며, 모든 일반논의와 부대행사, NGO포럼도 취소됐다.

올해 한국여성대회의 슬로건은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페미니스트 정치, 바로 지금!’ 이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최근의 거대한 미투운동까지 여성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차별의 실태를 고발하고, 근본적인 사회구조 변화를 위해 정부와 국회에 법과 제도, 정책 개선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도 국회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지난 70여년 동안 국회는 이성애, 비장애인, 고소득층, 고학력 등 한국사회에서 특권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여성과 소수자를 배제해 왔다.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국회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을 대변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여전히 17%에 머물고 있다. 지역구 30% 여성할당제는 법제화는 되어있지만 의무조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난 15년 동안 어느 정당도 이 조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

세계 최초로 여성할당제를 실시한 핀란드는 1907년에 치러진 최초의 보통선거에서 ‘여성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여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여성의원 10% 할당제를 실시했고, 1993년에는 40% 성평등 할당제를 도입했다. 스웨덴 여성의원 비율은 1993년 할당제 도입이후 40%대를 넘어섰다. 프랑스는 2000년에 남녀동수법을 입안했다.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와 싸움, 연대를 통해 만들어낸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았던 국회, 성별임금격차 1위 국가임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국회를 바꿔야 한다. 여성들의 경험과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정치가 되어야 한다. 성차별·성폭력 구조를 해체하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성평등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차별과 혐오, 배제가 없는, 존재 자체로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하여 이제 여성이 국회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때이다. 페미니스트 정치는 바로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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