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지천명 매력을 발견하다
남자 지천명 매력을 발견하다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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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기태>















캐논 모델로도 뽑힐 만큼 사진가 하면 대표적인 남자, 여자 사진가들이 없던 시대, 일부러 여자 사진가들만 뽑아 여자 사진가들을 키운 남자, 패션사진계에서 날리던 이름을 뒤로 하고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던 남자, 사진가 김중만을 만났다.











“여성 사진가가 더 나와야 한다

너무 남성위주 사진으로 흘렀다”








이런 사람하고 연애나 해봤음 좋겠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눈매로 말하는 그를 앞에 두고 생각했다. 아마 많은 여자들이 그런 생각을 했겠지. 김중만이란 이름 앞에서 느껴지던 권위가 그에게선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진계의 거목이라는 말이 오버가 아닌 사진가 김중만은 새가 날아다니고, 천장에 닿을 듯한 벤자민 두 그루 옆에, 어느 갤러리 오브제처럼 가지를 뻗은 죽은 나무가 천장까지 가지를 삐치고 있는 스튜디오에서,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화씨 120도쯤의 열의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연예인 사진은 안 합니다.”



엊그제까지도 얼굴이 브랜드인 스타들 얼굴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을 내고(After Rain, 소담)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래서 오는 16일 갖는 사진전시회는 오로지 순수 사진이라고 했다. “돈이 안 되는 사진이죠” 이야기 도중 마침 전시를 위해 액자로 만든 작품이 들어왔다. 십자가 모양 패널에 우후죽순 가느다란 이파리들과 묘한 하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잠깐만요”를 외친 후 액자 앞에 선 그는 요리조리 따져보고 있었다. “이거 간판 같잖아” 굵게 땋은 레게머리, 손목 위와 어깻죽지, 다리에 타투를 한 그는 어디를 봐도 50줄을 넘긴 노신사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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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만이 가장 아끼는 작품 김현식의 발.













그가 말했다. “맘에 드는 건 대여섯 장밖에 없어요. 김현식 발하고 몇 개.” 그가 지금까지 찍은 사진이 족히 30만장인데, 이런.



일부러 여자 사진가를 뽑았다



- 당신에게 사진은 무엇인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사진은 ‘죽음’이다.”



- 죽음? 죽음이라니? 죽음이 뭔가?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공포스럽고 가장 기쁘고 그런 것. (사진의 미래와 디지털 카메라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데 난 찍는 거 외엔 관심 없다. 카메라, 필름, 조명 잘 모른다. 기술은 사진과 나온 제자들이 알려준다. 작동법 모른다. 난 마음으로 찍는다. 마음의 파인더로 본다. 그걸 잡기 위해서 카메라를 갖다 대지, 카메라 파인더 통해 세상을 보는 게 아니다.”



- 지금 유명한 포토그래퍼인 조선희씨나 김지양씨가 다 당신 어시스트로 일했다. 그런데 다 여자다. 90년대인데, 그때만 해도 여자 어시스트들을 잘 안 뽑았던 걸로 안다. 그런데 특별히 여성들을 쓴 이유라도 있나?



“일부러 여자들을 뽑았다. 여자 사진가를 키워야겠다 생각했다. 그때 여자가 없었다. 남자는 너무 많고, 여자 사진가는 너무 없었다.”



- 여자 사진가들이 남자와 다른가?



“다르다.”



- 어떻게?



“여성이 사진 한다고 하는 그 자체가 나한테 중요하다. 남성만 작업에 끌어들이는 건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여성 사진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남성 위주 사진으로 흘렀다.”



- 혹시 페미니스트적인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건가?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다. 페미니스트적 색채는 구본창이 더 있다. 나보다. 난 남성적 사진을 한다. 그래서 여성적인 면이 부족하다. 그걸 애들이 메운 거다. 그래서 둘 뽑은 게, 조선희, 김지양이었다.”



- 지금도 여성들을 우선 뽑나?



“아니다. 이제는 여자 사진가들이 많지 않나? 이젠 반반씩 뽑는다.”



- 당신이 사진가들을 뽑을 때 기준이 뭔가?



“사진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나 없나를 본다. 사진에 대한 열정, 애정, 정열이 얼마큼 있느냐. 사진 왜 하냐 물어서 ‘뭐가 되고 싶어요’ 이러면 잘린다. (웃음)”



- 그러면 어떤 대답을 원하나? 기억에 남는 대답이 있나?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다. 이게 명답이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인성, 이런 걸 원한다. 사진가들이 내 밑에 와서 굉장히 고생한다. 최저 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한다. 일부러 그런다. 다른 사진가들처럼 4배 올릴 수 있지만, 그럼 고생스러운 게 없다. 난 내 삶을 애들하고 산다. 애들이 강아지도 보고 그런다. 빨래까지 시키진 않지만.(웃음) 내 삶의 부분을 애들하고 공유한다. 기술적인 거 그런 걸 가르치진 않는다. 내가 모르니까. 사진가로 사는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준다. 사진가가 결정적인 하나의 답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긍정적인 마인드, 철학을 바란다. 반드시 훌륭한 사진가가 될 필요는 없다. 내가 처음 서울 와서 보니, 제자를 안 키우는 시스템이었다. 의아했다. 물론 사진가가 자기가 살아나가기 위한 방법이고 우리 영역을 나눠가져야 하니까, 그런 건 안다. 하지만 사진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 대수냐? 조그만 일이고, 우리 시장이 크지 않은데, 나눠가지면 또 어떠냐?”



사진 찍는 기쁨으로 산다



- 만약 당신이 죽음을 앞두고 지나간 날을 돌아본다 치면, 삶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겠나?



“가정은 재미없다. 난 무조건 더 돌아다니고 사진 찍고 싶다. 뭘 정리하고 나누고 그런 거 관심 없다. 보람이니 훌륭한 거니 그런 거 관심 없다. 사진 찍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찍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너무 고맙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찍을 수 있어야 한다.”



- 원래 프랑스에서 그림을 전공하다, 같은 방 친구가 암실 작업을 하는 걸 보고 도와주다 사진을 하게 된 걸로 안다. 이유가 있나?



“속도성이다. 찍으면 나오니까. 그걸 보니 이건 진짜 나하고 맞는 거다. 탁 그런 생각이 들었다.”



- 1975년에 사진을 시작해서 1977년엔 프랑스에서 선정한 사진가 80명에 뽑히고 그랬다. 사진 시작한 지 2년 만에 그 정도면 거의 천재적인 거 아닌가?



“그렇진 않다. 잠자는 시간, 샤워할 때 빼곤 파인더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다. 말할 때도 이렇게(카메라를 잡고 눈에 대보이는 포즈로) 말하고, 밥 먹을 때도 이렇게 하고 밥 먹었다. 그 프로세스 자체가 신기했다.”



- 프랑스에서 보그, 엘르 같은 유명 잡지하고도 일한 걸로 안다. 그러다 1978년에 귀국했다. 그런데 왜 귀국했나?



“프랑스 니스에 살 때, 홍대 교수들이 매년 우리집에 왔다. 한국 대표화가들이 프랑스에 온 건데, 학생으로 그때 가이드를 했다. 그런데 교수들이 내 작품을 보고 서울에서 전시해야 한다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딱 와서 보니, 사진이 없는 사회였다. 혼자 딱 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여기 있어야겠다. 배운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니까. 물론 강운구, 주명덕 그런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 그런데 왜 (그 좋은)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눌러 앉았나?



“여기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웃음) 사랑하는 여자께서 상당한 여자라서.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거기다 아이들도 키워야겠다 그러며 한 발 묶여 있다 보니. 궁극적으로 내가 원래 성격이 계산적이질 않다. 여기가 유리하고 저기가 낫다. 그런 게 없었다. 지금은 계산적이 되다 보니, 지금이면 안 있는다.”



난 너무 과대평가 됐다



- 사는 기준은 뭔가? 즐겁기 위해서?



“아니다. 진실성이다. 젊었을 땐 즐거움이 더 컸고, 지금은 진솔한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건 재미없고 무덤덤한 삶이다. 정직해야 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고,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게 어우러져 있다. 순수하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순수를 잊어버리는 거 같아서 자꾸 노력한다.”



- 아까 순수사진으로 돌아간단 이야기도 그 맥락인가?



“그렇다. 난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본다. 순수 사진전은 결국 안 팔리는 사진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거다. 사람들이 다 아는 건, 대중적인 거고, 자연 풍경을 찍는데, 전혀 장사 안 되는 사진이다.”



- 사진 말고 좋아하는 건 뭔가? 사진 찍지 않는 여가 시간엔 뭘 하나?



“빈둥빈둥 누워서 논다. 사진책 보고, 비디오 보고, 스포츠 채널 보고.”



- 무슨 스포츠를 특히 좋아하나?



“단연 축구다. 좋아한 지 30년 역사다. 아니. 하지는 않는다. 게을러서. 그냥 본다. 거의 모든 스포츠를 본다.”



- (엊그제 파티 갔단 이야기를 떠올리며) 파티도 좋아하나?



“아니.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밥 먹으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엔 다 좋아했다. 며칠 밤새고 놀았다. 그러나 지금은 빈둥빈둥하는 걸 좋아한다. 그게 에너지 소비가 없다. 내가 꿈꾸는 예술가 상이 있다. 도도하고 오만하고 폐쇄적이고 비협조적이고 언소시얼하고 가난하고 무명화하고. 내 꿈이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이고, 어떻게 저런 인간이 있나 싶게.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 그런 예술가가 꿈이다. 지금은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려면 이런 인터뷰도 말아야 하고 소개도 말아야 한다. 예전엔 밖으로 꺼내면 이상하게 보니까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꺼낼 수 있다.”



- 그러기에 당신은 이미 너무 유명한 거 아닌가?



“아니. 미국 가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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