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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캐서린 햅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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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햅번이 출연한 영화 <러브 어페어>의 한 장면.

열정적인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았던 캐서린 햅번이 지난달 29일 코네티컷의 집에서 96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영화 인생은 6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4회 오스카상 수상에 12회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으며 America Film Institute가 정한 최고의 여자 배우로 선정됐다.

햅번은 참정권 운동과 산아 제한에 여성의 목소리를 높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립적인 여성의 대변자격 역할을 해왔다.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나는 우리 여성들이 2류 성(second-rate sex)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살았던 시대 때문에 성공했는데, 독특한 개성을 가진 나의 스타일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고, 나는 그 시대 신여성 부류 가운데 하나였다.”라고 말했다.

햅번은 1930년대를 주도한 대표적인 신여성으로도 꼽힌다.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 적절한 의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됐던 바지를 입었으며 그녀의 패션 기호는 1986년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가 그녀에게 상을 줄 정도로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스커트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오래 전에 깨달았다. 언젠가 여성이 스커트를 입는 것이 좋아 보인다는 남자의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입어봐. 스커트를 입어보라고.” 1993년 그녀의 인생을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햅번이 한 말이다.

“그녀는 여자들에게 바지를 입힌 사람이다. 할리우드가 한번도 낳은 적 없는 위대한 스타이자 여배우이며 전통 할리우드의 마지막 계통이었다.” 그녀의 전기를 쓴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말한다. 브로드웨이는 30일 오후 8시 그녀의 장례식을 치렀다.

임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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