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 살았던 조선 남자의 시원시원한 여성주의에 감탄했다. 1922년 1월 8일 동아일보에 “조선여자여 태양을 마주보고 서라: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논설이 실렸다. 3.1 독립혁명이 일어나고 삼 년 후, 이 논설의 필자는 여성이 완전해져야 비로소 조선이 완전해질 것이라며, 규방을 나와 권리를 요구하고 해방을 절창하라고 한다. 여성도 힘을 합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냐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다.

한자를 풀고 논설의 요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자매 되는 청년 여자에게 고한다. 그대들은 규방을 나와 태양을 마주보고 서라. 자유의 인격자가 되며 각종 의미의 노예적 노고를 그만두고 인습의 질곡을 끊고 새로운 생명의 소유자가 되어, 재능을 각 방면에 발휘하며 진면목을 철저하게 노출하라. 그대들은 천생 밥하고 지지고 볶는 자, 재봉사, 남자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며, 규방에 들어앉아 오직 생산만 하는 자가 아니로다.”

이 필자는 또한 당시의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에 묶이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가라고 응원한다. “그러한 노역에 구속되어 그대들은 수양을 위한 향상의 기회, 발전의 기회가 있었는가. 나는 물론 그대들이 이와 같이 근면하고 친절하고 희생적 정신이 풍부함에 감복한다. 그러나 그 너무도 무자각하고 겸손이 과하여 무기력, 무용맹, 무개성함에 놀란다. 그대들의 생활을 이제 태양광선 아래 서서 진정으로 생각해 보자. 자매여, 자기의 권위를 망각하고 자기의 존귀와 향상과 발전을 망각하고, 유순함이 그 무슨 도덕이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 유순, 복종, 잡역을 강제하는 재래의 모든 도덕은 모두 남자의 편의를 위하여 여자에게 가한 포학이요 박해이니, 실은 옛 도덕의 본의도 아니다. 그대들은 용맹심을 분발하여 인성의 본연에 위반되는 모든 인습을 벗어 버리고 규방을 나와 태양 아래 자연인으로서 얼굴을 들고 우뚝 서라.”

이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필자는 “암탉이 울면 안 된다”는 당시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여성이 국가의 일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해방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 “국가, 사회, 문예, 경제는 모두 남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그대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그대들이 이러한 것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가. 국가가 불완전하면 그대들의 사랑하는 자녀는 죄없이 전쟁의 이슬이 되고, 신랑은 죄 없이 감옥에서 울 것이라. 그런데 ‘암탉이 울면 안 된다’는 것이 어찌 교활한 흉계요 큰 폭력이 아니겠는가. 그런즉, 조선 청년여자가 취할 방책은 무엇인가. 첫째, 배울 기회를 가져라. 이는 그대들의 당연한 권리다. 둘째, 상당한 식견과 인격으로써 권리를 요구하며 해방을 절창하라. 이는 인형이 아닌 그대들의 당연한 요구다. 그대들이 완전해진 후에 제2의 조선이 비로소 완전해질 것이다.”

얼마나 멋진가! 요즘 사람이라면 메일이나 댓글을 보내 팬심을 고백하고 싶다. 백 년 전의 남자가 이렇게 멋지다고 무릎을 탁탁 치며 감탄했더니, 옆에 있던 남편이 다소 질투 나지만 자기도 분발해 보겠다고 한다. 흠, 아주 마음에 드는 반응이네.

요즘도 여성에게 망언을 하고 악의적 댓글을 달고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들, 여성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막고 페미니즘을 욕하는 남자들은 모두 백 년 전의 이 훌륭한 조상님을 보고 각성하기를. 역사가 진보하기는 하는데 참 더디다.

(이 논설은 ‘또 하나의 문화 1호: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에 재수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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