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연의 일부처럼 살고 있는 자연미술가, 고승현
[인터뷰] 자연의 일부처럼 살고 있는 자연미술가, 고승현
  • 권혁년 객원기자
  • 승인 2020.02.21 15:50
  • 수정 2020-02-25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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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野投)의 고승현 위원장
40년 외길 인생으로 자연미술 분야를 개척하고 이끌어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서 2년마다 자연미술비엔날레 열려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미술… 최장 10년 안에 모두 사라져
고승현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위원장 ⓒ고승현 제공
고승현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위원장 ⓒ고승현 제공

자연미술은 아직도 많이 생소한 분야다. 자연미술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물로 작품으로 만든다.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울리게 만들고, 작품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생각하면서 만들어야 한다고 돼 있다. 작가 자신의 몸을 이용하거나 현장에 있는 자연물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 자연미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자연미술을 하는 곳이 많지 않다. 자연미술공원으로 운영하는 유일무이한 곳이 공주시에 있는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이다. 이곳에서 자신을 자연처럼 여기고 생활하는 작가가 있다. 그런데 그 세월을 들여다보면 입이 벌어진다. 40년이다. 자연에서 생활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연이 돼서 한 몸처럼 40년의 세월을 버텼다.

사단법인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野投)의 고승현 위원장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야투는 대한민국 주류 미술계와는 거리를 두고 생활했다. 말 그대로 자연에 던져진 삶을 살았다. 공주에서 아름다운 금강을 끼고 나지막하게 형성된 연미산이 그의 작업장이자 생활 터전이다. 여름이면 더위와 모기와 싸우고 겨울이면 추위와 씨름해야 했던 곳이다.

고승현 위원장을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칼국수집에서 만났다. 첫 인상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아저씨였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 온화한 미소가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이었다.

야투라는 이름과 왜 자연미술을 시작했는지를 물었다.

“40년 전 공주시의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젊은 미술가들이 있었어요. 저와 유동조, 임동식, 지석철, 허진권 씨 등이 야투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이들 중에 저와 유동조, 임동식씨가 연배가 조금 많았어요. 우리 셋은 금강 변을 거닐면서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를 참 많이 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군사독재 시설이어서 미술계에서는 정권에 항거하는 의미의 민중미술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자연에게 미술을 던진다는 의미로 이름을 야투라고 했어요.”

자연미술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처음에는 금강 백사장에서 야외현장미술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간의 삶이 척박해고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사막화, 미세먼지, 오존층 파괴 등 지구상의 파괴행위가 점점 더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복의 의미를 담아서 자연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어요.”

야투는 처음에 사계절연구회라고 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계절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자연의 질서와 변화에 반응하는 순수한 창작의지를 바탕으로 작업했다. 작가이자 서로의 작품에 대한 유일한 감상자였던 회원들끼리 자연과 함께하는 야투적 자연미술 방법론을 탄생시켰다.

야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의 자연미술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도 자리도 많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런 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또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도 많았다.

고 위원장은 야투를 만들고 처음으로 1986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평화 비엔날레에 개인 작품과 야투 회원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처음 소개한 것 치고 현지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고 했다. 그래서 이듬해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발행되는 전문미술잡지 쿤스트 니크리히텐(Kunst Nachrichten)에 특집으로 소개됐다. 이것을 계기로 1988년 독일 함부르크미술대학에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도 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를 했다. 정점은 2016년과 2019년에 찍었다.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고승현 위원장은 본인 스스로 입에 풀을 물고 낙타와 당나귀 앞에 섰다.

낙타와 나_고승현_2016 남아프리카공화국 ⓒ고승현 제공
낙타와 나_고승현_2016 남아프리카공화국 ⓒ고승현 제공

 

해외 작가들의 요청으로 국내에서도 자연미술 비엔날레가 개최됐다. 1991년의 일이다.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이 그 시작이다. 1995년에는 24개국에서 87명의 외국 작가와 50명의 국내 작가가 참여해서 공산성과 곰나루를 자연미술로 뒤덮었다. 하지만 이때도 주목은 국내보다 해외가 더 열광적이었다. 전시회 성격의 미술행사에서 2004년 처음으로 우리나라도 자연미술 비엔날레가 열렸다. 2011년에는 활동의 범위를 더 확장하기 위해서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현재 38개국 157명의 작가들이 교류를 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자연은 경계가 없다라는 메시지로 자연 속에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떠날 때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노마드의 삶처럼 인간의 삶의 근원인 이 땅을 움직이면서 인간 내부의 본성적 예술의지가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어떻게 흘러나오는지를 보기 위한 실험이다.

고 위원장의 시그니처 작품이 100년의 소리다. 가야금을 만드는데 우리가 아는 일반 가야금하고는 많이 다르다. 생김새나 소리는 우리의 가야금과 비슷한데 재료를 보면 그때그때 다르다.

가야금을 만들 때 자유로운 재료 선택을 해요. 국내나 해외나 현장에서 발견되는 돌과 나무로 가야금을 만들어요. 지역에 따라서 나무의 종류와 크기, 모양,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제작 방법도 달라요.”

자연미술이 일반 미술과 여러 가지고 차이점이 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반 미술은 영원히 보존될 수 있는 반면 자연미술은 짧으면 2~3년 길어도 10년 안에는 모두 사라진다는 점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자연에서 얻어져서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미산의 돌과 흙과 나무들로 작품으로 만들고 이들이 자연의 풍화 작용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한다. 만약에 철로 된 작품이 있다면 이것은 작가와 협의를 통해서 5년 안에 자연스럽게 철거를 한다.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지 않으면 자연미술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_프레드 마틴(프랑스)_나무정령_2018년 ⓒ고승현 제공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_프레드 마틴(프랑스)_나무정령_2018년 ⓒ고승현 제공

40년간 가장 인상 적인 작업 활동에 관해 물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금강변의 청벽 백사장에서 작업을 할 때였어요. 45일 동안 합숙생활을 했는데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작업을 하고 밤에는 동쪽 끝에서 서쪽하늘 끝으로 수십 가닥으로 갈라지는 번개와 천둥소리를 들으면서 서로의 작업 내용을 토론했던 시절이었어요. 새벽녘에는 짙은 안개와 이슬방울의 영롱함을 보았고 어느 날은 갑자기 분 돌풍으로 인해 설치된 작품과 천막이 모두 날아가기도 했어요. 또 백사장에 작업해 작품이 간밤에 불어난 강물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자연 현상 속에서 겸손과 인내를 배웠고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도 느꼈어요.”

절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 위원장은 자신의 힘으로 안 되는 부분에서는 하느님을 힘을 자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렇게 날아가고 휩쓸려도 자연미술은 우리 곁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비엔날레는 국제 교류전이다. 그렇다 보니 행정도 있어야 하고 자금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아웃오브 안중이다. 해외에서 많은 작가가 찾아오면서 공주시에 조그마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 실정이다.

인터뷰 말미 고 위원장은 제가 40년 동안 자연미술을 하면서 얻는 것은 적응력입니다. 내가 자연환경 속에서 적응하면서 살기 위한 노력이에요. 사람인 나도 자연의 일부분이니까요. 거기서 조화를 이루어야 겠다고 생각을 해요라며 스치듯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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