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설립 10년만 특수법인 전환
자체 예산·인력 확보하며
체계적‧안정적 운영 가능
기능별로 조직 개편
"여성폭력 방지 허브기관으로"

7일 오전 서울 중구에서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이 여성인권에 대해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홍수형 사진기자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n번방 사건’은 피해자 대다수가 미성년자이고 가해자는 수사관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신분증을 보내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협박한다. 사기범죄이자 협박범죄이며 조직범죄”라고 지적했다. ⓒ홍수형 사진기자

 

“미투(MeToo) 운동 이후 젠더폭력에 대한 사회의 민감성이 높아졌고,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도 높아졌어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특수법인으로 전환 돼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미투 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하 인권진흥원) 원장은 재단법인이던 기관의 특수법인 전환이 미투 운동의 성과라고 강조하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권진흥원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폭력을 근절·예방하고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상담소 등 피해자 지원시설을 지원한다. 지난 2009년 민법에 따라 재단법인으로 설립됐으나 법적 근거가 없어 정부의 보조‧위탁사업으로만 운영돼 왔다. 설립 10년 만인 지난 1월 법적 근거를 둔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서 박봉 원장은 특수법인 인권진흥원의 첫 수장이 됐다.

“인권진흥원은 위탁 사업별로 직원을 고용할 수 있어서 그동안 정규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번에 많은 분들의 노력 덕에 특수법인으로 출범하게 되면서 기관 자체 예산과 인력을 가질 수 있어 이전보다 체계적‧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8월 28일 취임한 박봉 원장은 20여년 간 여성노동과 반성폭력 등 여성인권 분야에서 적극적인 대중운동을 펼쳐온 여성운동가다.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을 역임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특히 한국여성민우회에서 1995년 활동가로 첫 발을 내디딘 이후 사무국장과 사무처장, 대표까지 20년 넘게 몸담으며 낙태죄 폐지운동, 노동시장 성차별 문제 해소 등에 앞장섰다.

7일 오전 서울 중구에서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이 여성인권에 대해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홍수형 사진기자
7일  서울 중구 충정로에서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이 여성인권에 대해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홍수형 사진기자

 

인권진흥원 원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해 8월 28일. 전임 원장이 물러난 이후 6개월간 공석이던 자리에 성폭력과 성평등, 노동 분야를 두루 거친 그가 임명되면서 특수법인 전환으로 어수선한 조직을 정비할 것으로 안팎에서 기대를 모았다. 박봉 원장은 조직을 기존 ‘3본부 4센터 16팀’에서 ‘4본부 1실 4센터 8팀’ 체제로 개편했다. 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등 폭력 유형별 지원에서 현장지원·교육·인권보호 등 기능별 지원 조직으로 대대적으로 바꿨다. 여성폭력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통합적인 피해자 지원을 위해서다. 부서간 소통을 늘리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내부 역량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박봉 원장은 인권진흥원에 대해 “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한 GO(정부기구)와 비NGO(비정부기구) 사이에 있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진흥원이 소관 부처인 여가부와 폭력 피해자, 상담소 등 지원현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권진흥원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를 운영하며 피해자 상담부터 불법촬영물 삭제와 법적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범죄와 피해 양상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박봉 원장은 “범죄 유형이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피해자 지원을 하는 기관 입장에서 한계도 존재한다”고 했다. 최근 문제가 드러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성년자 등 여성의 신상정보를 알아낸 후 협박해 노출사진과 영상을 요구하고,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 대화방에 영리 목적으로 영상을 유포한 사건이다. 여러 개의 대화방마다 수백명에서 수천 명이 가입해 피해촬영물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박봉 원장은 “기존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개인간 이뤄졌다면 ‘n번방 사건’처럼 이제는 조직범죄가 되고 산업이 되고 있어 현행 법·제도로 대응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피해자 대다수가 미성년자이고 가해자는 수사관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신분증을 보내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협박한다. 사기범죄이자 협박범죄이며 조직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이스피싱’ 문제가 커지가 국가에서 대응하는 것처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부모와 교사 등 피해자 주변에서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주의깊게 살펴볼 수 있도록 인식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진흥원도 한계에 갇혀있지만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박봉 원장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빠르게 현안을 파악하고 법·제도에서 문제가 있으면 여가부와 소통해 국회로 연결할 수 있는 여성폭력 방지 허브기관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