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흔들리는 마음’, ‘본명선언’ 비교상영회
양영희 감독 “참고차 원본 테이프 제공한 것”
홍형숙 감독 “원본 영상 사용 협의 했다” 주장
일부 영화평론가들 “표절 맞다” 반응

양영희 감독의 NHK TV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장면
홍형숙 감독의 장편다큐멘터리 ‘본명선언’(1998)에 삽입된  ‘흔들리는 마음’ 장면.

 

오사카의 조선인 학생이 일본식 이름 ‘통명’과 한국식 이름 ‘본명’ 중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고뇌한다. 학교와 사회와 충돌하는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재일교포 3세의 역사적 위치와 사회적 존재감은 가뭇없이 흔들린다.
이처럼 날 선 소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두 편 있다.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30분짜리 영화 ‘흔들리는 마음’(1996)과 역시 같은 내용을 다룬 홍형숙 감독의 70분짜리 ‘본명선언’(1998). ‘흔들리는 마음’은 NHK에서 방영된 작품이고 홍 감독의 ‘본명선언’은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한국다큐멘터리상인 운파상을 받았다. 당시 양 감독은 홍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무단 도용했다고 표절 문제를 제기했지만 몇몇 보도 후 묻혀버렸다. 최근 양 감독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오면서 22년 만에 표절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영
화계에서 적잖은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영화감독, 평론가 등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의 비교 상영회가 열렸다. 양 감독은 “사과는 바라지 않는다. 내가 촬영한 장면만 삭제해달라”고 밝혔다. 

양 감독은 ‘흔들리는 마음’ 이후 ‘디어 평양’ ‘가족의 나라’ ‘굿바이 평양’ 등 가족사를 버무린 다큐멘터리에서 분단과 이산의 상처를 생생하게 담아내 주목받고 있다. 홍 감독도 ‘경계도시2’ 등으로 이름을 얻었고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 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어쩌다 22년 전 표절 의혹이 이제야 도드라진 것일까. 양 감독은 홍감이 지난해 ‘경계도시2’ 스태프 임금 미지급 등으로 논란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해치는 뿌리 깊은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표절 논란은 ‘본명선언’에 등장하는 9분 40초 분량의 ‘흔들리는 마음’ 장면에서 비롯된다. 해당 장면은 일본 학교에서 주인공 학생이 자기 본명을 발표하는 장면 등으로, 원래 컬러로 촬영한 것을 홍 감독은 흑백으로 바꿔 담았다. 처음 표절 논란이 인 것은 22년 전으로,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양 감독은 지인으로부터 ‘본명선언’의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 수상 소식과 함께 자신의 영화 중 핵심적인 부분이 홍 감독의 영화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홍 감독과 서울영상집단에 항의했다. 당시 일부 언론이 이를 보도했고 영화평론가들이 ‘본명선언’에 대해 표절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회 전원회의는 “‘본명선언’이 ‘흔들리는 마음’과 부분적으로 동일하다고 해서 표절로 이해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조선인 국적으로 한국 입국이 불가능했던 양 감독은 법적 대응을 하지 못했고, 홍 감독은 이후 ‘본명선언’을 22년간 상영하지 않았다.

양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해당 필름 원본을 홍감독에게 전달한 것은 꼭 좀 원본을 보고 싶다고 간곡히 요청해서였다”며 “(원본)사용을 허락한 적이 없고 저작권이 NHK에 있어 내가 허락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비교상영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 2월4일 자신의 페
이스북에 22년 전 당시 정황을 담은 A4지 9쪽 분량의 입장문을 통해 “사전 과정에서부터 양 감독에게 구성안을 보내기도 했고, 영상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알렸다”며 표절을 부인했다.

두 감독의 주장에서 △‘흔들리는 마음’ 영상의 일부가 ‘본명선언’에 사용된 사실 △‘본명선언’ 제작 전 함께 대화를 나눈 것 △양 감독이 홍 감독에 ‘흔들리는 마음’ 촬영 원본을 보낸 것 등은 일치한다. 말이 엇갈리는 부분은 영상 사용 허락했다는 주장(홍 감독)과 아는 주장을 여부다. 양 감독은 비교상영회 후 “테이프(촬영 원본)를 보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갖다 붙이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1초라도 쓴다면 가편집본을 나에게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1997년 1월과 2월 양 감독에 ‘흔들리는 마음’ 원본 테이프 사용에 대한 비용 협의 등 내용을 담은 구성안을 보냈으며 1998년 9월 양 감독과 전화통화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원본 테이프 일부를 사용하고 양 감독의 이름을 엔딩크레디트에 표기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고 페이스북 입장문에서 밝혔다.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 비교상영 후 영화계에는 창작 윤리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는 한 영화매체 기고문에서 “22년 만에 양영희 감독과 신뢰를 보내주었던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당시)표절논란이 불거지자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로부터 표절 시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비교상영회 직후 페이스북에 “작품의 구
성 측면에서 봤을 때 ‘흔들리는 마음’ 장면이 모두 빠진다면 홍형숙 감독 작품은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재탕에 불과하게 된다.(중략) ‘운파상’도 철회해야 하고.”라고 글을 올렸다. 김 평론가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홍형숙 감독이 제대로 사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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