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미얀마 2층 버스에 여성이 타지 못하는 까닭
[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미얀마 2층 버스에 여성이 타지 못하는 까닭
  • 조용경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 승인 2020.02.21 15:24
  • 수정 2020-02-24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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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 머리 위에 앉으면 안된다"
미얀마 최고 지도자는
여성인 아웅산 수치라며
남녀차별 없다고 말하지만
교육, 상속 등 전분야에서 성차별 극심
동생을 등에 업고 있는 빠다웅 족 어린이. ©조용경
동생을 등에 업고 있는 빠다웅 족 어린이. ©조용경

 

1월 2일부터 18일까지 15박 17일의 일정으로 열아홉 번째의 미얀마 여행을 다녀 왔다. 2013년 여름 이후로 시작된 일이다. 처음 몇 번은 비즈니스적인 관심에서, 그 다음 몇 번은 그냥 미얀마가 좋아서, 그리고 나머지 십여 차례는 여행가적 관점에서 미얀마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어서 였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곳을 돌아 다니려 애를 썼고, 가는 곳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심히 글을 썼다. 그 글들을 모아서 2018년 『뜻밖에 미얀마』라는 책도 냈고, 여기 저기로 불려가 미얀마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스스로가 마얀마 전문가인 듯한 착각에 빠져 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지금까지 미얀마의 전국을 돌아 다니며 그 나라를 들여다 보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썼지만, 그건 지극히 외면적이고 피상적인, 미얀마의 겉모습에 대한 관심에 불과했다. 단 한 번도 미얀마의 속살, 오늘의 미얀마 사회가 안고 있는 내면적 문제들을 들여다 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1월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미얀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미얀마 연방을 구성하는 14개 지역(7개의 관구과 7개의 주) 가운데,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친(CHIN)주 깐팔랏(Kanpetlet) 시에서였다.

해발 1700~2000m에 달하는 고산 지대 칸타용(Khan Thar Yong)이라는 작은 마을의 입구에서 여성들이 큰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담은 커다란 입간판을 보았다.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 안내하는 가이드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오른쪽 큰 글자는 “이제는 여성이 정치적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림 속 깃발 안의 작은 글자는 “친 주의 법을 개정하라! 여성들에게 남성과 꼭 같이 상속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미얀마에는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지켜온 부부유별(夫婦有別)과 같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보수적인 친 족의 특성으로 인해 친 주에서는 이러한 차별이 법적으로, 또 법 못지않은 사회적 규범으로 남아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사람이라는 이유로 부모 재산의 상속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이었다. 그런데 5년 전 쯤, 한 여성이 반기를 들었다. 금년 40세인 흘루 냉(Daw Hlu Naing) 여사가 주변 여성들을 규합해 입간판에 세워진 바로 그 자리에서 주의 악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고, 끈질긴 투쟁을 통해 법을 개정하게 된 것이다. 이 입간판은 바로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흘루 냉 여사는 그 후 자기 마을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이 사건은 가장 보수적인 친 주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킨 의미있는 사건이었다고 한다.

고산 지대 작은 마을 칸타용(Khan Thar Yong) 입구에 있는 입간판. 여성들이 “친 주의 법을 개정하라! 여성들에게 남성과 똑같이 상속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라”는 내용의 큰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조용경
고산 지대 작은 마을 칸타용(Khan Thar Yong) 입구에 있는 입간판. 여성들이 “친 주의 법을 개정하라! 여성들에게 남성과 똑같이 상속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라”는 내용의 큰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조용경

 

미얀마 남성들에게 ‘미얀마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 혹은 ‘남여 차별’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는 2008년 개정된 미얀마 헌법이 “(미얀마) 연방은 미얀마 연방 국민에 대해 종족, 태생, 종교, 지위, 신분, 문화, 성별과 재산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남녀 차별은 없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현재 미얀마의 최고 지도자는 여성인 아웅산 수치 여사라는 주장이다. 최고 지도자가 여성인 나라에서 무슨 남녀차별이 있겠는가 하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한 사원의 중심 법당에 ‘여성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조용경
한 사원의 중심 법당 앞에 ‘여성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조용경

 

불교의 나라,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마다 병원이나 보건소는 없어도 절은 몇 개씩 있는 미얀마이지만, 큰 사원의 중심 법당에 붙어 있는 ‘여성출입금지’ 팻말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건 차별은 아니고 불교의 교리 해석의 문제”라고 한다. “아마도 일부 불교 스님들에게 여성은 생리를 하기 때문에 부정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아닐까?”라고 말하는 지식인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곤의 마하시 명상센터를 갔을 때는, 식사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도열을 해서 식당으로 들어 가는데 남성 스님, 남성 수도자들이 먼저 들어 가고, 여성 스님과 여성 수도자들은 자리가 날 때까지 열을 지어서 대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성 재산 상속권 얻어 낸 ‘흘루 냉’
목의 굴레 끊어낸 빠다웅족 여성 같이
작은 혁명가들 지역 곳곳에서 나타나

 

미얀마에는 남자 아이들이 8~12세 사이에 일정 기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신쀼(Shinpyu)라는 의식이 있다. 부처님이 왕위를 버리고 불가에 귀의하는 모습을 본 따, 남자 아이들을 일정 기간 출가시키는 것이다. 남자 아이를 사회적인 리더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시키는 일종의 리더십 교육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관계없이 신쀼 의식은 개인 가정, 혹은 마을 공동체의 축제 형태로 진행이 되며, 부모들은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이 축제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로지 남자 아이들을 위한 축제일 뿐이다. 출가하는 여자 아이를 위한 축제의식은 없다. 살 만한 집에서 여자 아이가 스님이 되는 경우란 별로 없으며, 여자 아이가 출가를 하는 경우는 고아이거나 집안이 매우 가난해서 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미얀마 국민들의 90%에 가까운 사람들은 여전히 불교를 신봉하고 있는데, 적어도 불교 내부에서의 남녀차별은 현격해 보인다.

트럭을 개조한 2층 버스. 여성들이 2층에 타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용경
트럭을 개조한 2층 버스. 여성들이 2층에 타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용경

 

재미있는 사례는 또 있다. 미얀마에서 시골 도시를 다니다 보면 트럭을 개조한 2층 버스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험한 시골길을 달리는 트럭버스들을 보면 대형 교통사고가 날 것 같아 조마조마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데 여성들이 2층에 타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언젠가 한 고위 관리와 식사를 하면서 “왜 여성들은 2층에 타지 않는가” 물었더니 그는 뜻밖에도 “여성이 남성의 머리 위에 앉아서는 안된다는 의식 때문”일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참 놀라운 답변이었다.

연설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 ⓒnldofficial.org
연설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 ⓒnldofficial.org

 

미얀마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이런 ‘남녀유별’(男女有別) 의식은 불교 교리보다 더 깊은 뿌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에 다녀 온 서북부 친 주의 몇몇 부족에서는 여성 얼굴에 검은 색 문신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친 족을 필두로 마간(Magan), 문(Muun) 부족 등은 거의 1000년 전부터 여성들이 사춘기에 들어서게 되면 사실상 강제적으로 얼굴에 문신을 했다고 한다. 이들 부족의 여성들은 오래 전부터 얼굴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가깝게는 이웃 부족의 힘 있는 남성들을 비롯하여, 멀게는 버마 왕국의 왕이나 귀족들이 친 족의 여인들을 납치해서 아내로 삼거나, 노리개 삼아 끌고가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약한 이들 부족 남성들이 여인들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이 얼굴 문신 풍습이었고, 이것이 거역할 수 없는 부족의 전통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성들을 자기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한 남성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 낸 수단이 얼굴 문신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런 풍습은 1970년대에 들어 금지되었지만, 여성을 단순히 지켜야 할 재산으로 생각한 나쁜 문화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나쁜 문화적 전통은 또 있다. ‘목이 길어 슬픈 여인들의 마을’로 유명한 미얀마의 중부, 카야(Kayah) 주에 있는 빤뻿(Pan Pet) 마을에는 빠다웅이라는 종족이 살고 있다. 이 부족의 여성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목과 다리에 놋쇠로 만든 링을 채우고 키가 커 갈수록 이 링의 숫자를 늘려간다. 이 링을 착용하면 목이 길어져서 예쁘게 보인다는 속설이 있지만, 사실은 목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이 링의 무게로 인해 쇄골(collar bone)이 밑으로 내려앉기 때문에 목뼈가 길어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라고 한다. 더구나 척추까지 휘어져서 건강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친 주의 얼굴 문신 풍습과는 달리 이 풍습은 지금도 지속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해맑은 미소를 지닌 7~8세의 여자아이들이 목에 금속 링을 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런 풍습이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여성들을 마을에 묶어 놓고 그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남성 중심의 음모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2016년 2월,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만난, 키가 크고 외모도 시원시원한 한 젊은여성은 목에 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덟 살 무렵부터 했는데,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 다닐 때 창피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부모를 졸라서 끊어내 버렸다”고 얘기했다. 당시 30세였던 그 여성은 “처음엔 마을에서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사람도 많고, 건강도 좋아져서 참 좋다. 이젠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 씩씩한 여인 역시 아웅산 수치 여사 못지 않게 여성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작은 혁명가였다.

현재 미얀마의 여성운동가들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적합한 직책에 남성을 보임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 현행 미얀마 헌법 제352조가 특히 군대나 경찰 혹은 특정 공직에서의 여성 등용을 제한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개정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집권하고 있는 미얀마에서 중앙정부의 여성 장관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국회의원의 경우 하원은 여성 의원이 11%, 상원의 여성 의원 비율은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여성들도 여성 후보자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

내가 만난 미얀마의 젊은 여성들 중에서도 여성의 역할을 사회 속에서의 장식물(decorative)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다수가 '여성은 가사, 육아와 교육, 노인 봉양 등을 담당해야 한다'고 믿는 상황에서는 미얀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쉽지 않은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일단은 친 주에서 여성의 재산 상속권을 얻어 낸 ‘흘루 냉’이나, 스스로 자기 목의 굴레를 끊어내 버린 빠다웅 족의 여성과 같이, 곳곳에서 작은 혁명가들이 뛰어나와 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진짜 촛불’들이 오래지 않아서 미얀마를 밝히는 횃불로 타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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