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물 유포 ‘범죄’
삭제요청 피해자·가족만 가능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불법촬영물… 제3자 삭제시
증거 인멸 우려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 편의 한 장면. ⓒ 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 편의 한 장면. ⓒ SBS

온라인에 한번 퍼진 불법촬영물은 삭제해도 독버섯처럼 다시 나타난다. 전문가들이 디지털성범죄를 ‘끝나지 않는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다.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온라인상 유포된 영상 삭제와 함께 불법촬영물을 촬영·유포·시청한 자를 모두 범죄 가해자로 명확히 규정해 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라는 요구가 높다.

불법촬영물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피해자가 요청하면 영상물 삭제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삭제 지원 요청은 피해 당사자가 직접 해야한다. 피해자가 불법촬영 및 유포사실을 모르거나 알게 된 후라도 사망한 경우 삭제 지원을 요청할 길이 없었다. 실제로 유포된 불법 영상물을 지워도 다시 유포돼 고통 속에 극단적인 선택한 여성 피해자 사례도 있다. 2018년 디지털 성폭력 영상 피해자였던 A씨는 생전 많은 비용을 지급해 디지털 장의 업체에 삭제를 요청했지만 또 다시 다른 사이트를 통해 계속 유통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씨가 고인이 된 이후에는 불법사이트에 그의 영상이 ‘유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유통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문제는 다행히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라 일부 해결이 가능하게 됐다. 이 법안은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부모나 배우자 등 가족도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개정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조의3(불법촬영물등으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은 국가의 삭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배우자와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로 확대했다. 바뀐 법령은 오는 4월 30일 시행된다.

이번 법률 개정은 지원이 필요한 피해자가 개인적 사정으로 삭제지원을 요청하지 못해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개정된 법률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과거에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가 직접 고소를 하지 않은 이상 가해자를 처벌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친고죄 규정은 지난 2013년 폐지됐다. 그러나 불법촬영물 유포 등 디지털성폭력은 명백한 성범죄임에도 예외가 된다. 신고 권한이 피해자와 가족으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여성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와 공공기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하 인권진흥원) 등은 현재 피해 당사자만이 불법영상물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누구라도 불법촬영물임을 인지하면 삭체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요청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불법촬영물 삭제 요청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활동한 채우리 변호사는 “사회적으로는 피해 영상물을 삭제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피해자는 영상물이 삭제되면 고소를 하고 싶어도 증거가 인멸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면서 가해자가 오히려 삭제 요청을 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도 느꼈다”며 “최소한의 본인확인 절차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피해 영상물 삭제와 관련해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8년 한사성이 서울시와 함께 저작권 권한이 없는 게시물을 대상으로 불법촬영물 삭제 사업을 진행했을 때 누가 봐도 불법촬영물로 보이는 영상이 80%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삭제 지원 요청 범위 확대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입장에서 보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이 처리 될 수도 있다”며 “피해자 동의를 원칙으로 하되 특수상황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삭제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인권진흥원은 피해자의 증거 인멸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상 유포된 영상은 삭제하되 원본을 보관하는 백업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성인권진흥원 박성혜 디지털 성범죄피해자센터 팀장은 “현재 새로운 시스템을 테스트하는 진행 중이며 피해촬영물을 보관하는 보안 폴더를 곧 오픈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해당 시스템은 영상 유포가 피해의 시작이기 때문에 유포 정황을 입증하기 위해 마련했다”며 “삭제된 불법촬영물이 재유포가 됐을 때 원본과 비교하기 위해 구축했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서는 피해 영상물을 유포하고 시청하는 가해자를 엄벌하는 문화 형성이 중요하다. 허민숙 여성학자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영상물 삭제 요청을 하는 것이 ‘장치가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은 지금의 상태에서 과연 옳은가’라는 의문이 든다”며 “제3자가 객관적으로 불법촬영물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명확한 기준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고 공유하고 시청한 사람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며 “우리의 관행 중 하나가 ‘피해자가 누구인가’에만 혈안 돼 있다. 사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영상물을 업로드했고 다운받았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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