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버선발’과 ‘소금꽃나무’
[반하라 칼럼] ‘버선발’과 ‘소금꽃나무’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0.02.12 09:54
  • 수정 2020-02-12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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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이야기』와 『소금꽃나무』
『버선발 이야기』와 『소금꽃나무』

 

홍콩 시위 시민들도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 모태가 된 시, ‘묏비나리’를 쓴 백기완은 작년에 신화적 동화소설, 『버선발 이야기』를 써냈다. 본래의 우리 말에 독보적 지식을 갖고 있는 그는 사장된 우리말들을 그의 소설로 불러내서 생명을 넣어주는 문학적 연금술사가 되었다. 생소한 말들로 인해서 소설이 흐르듯 읽히지 않고 해석이 요구될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뜻을 캐서 따라가다보면 깊고 맑게 니나(민중)의 희망을 써내려간 뜬쇠(예술가) 백기완의 한바탕 글쓰기에 몰입하게 된다.

소설에서 주인공 ‘버선발’이 살고 있는 세상은 ‘납쇠’(돈버러지 돈놀이꾼), ‘쫄망쇠’(처먹을수록 소갈머리가 좁아지는 투기꾼)와 ‘뻑쇠’(입에 올리기도 더러운 색시장사)가 판을 치는 ‘벌개’(사람 살 곳이 못되는 지옥)다. 거기서 배우지 못하고 땅없는 머슴들이 노역에 몰려 내는 땀은 ‘흐르는게’ 아니라 그마저 몽땅 ‘뺏기는’식이 되어 그들은 사는게 죽기보다 못한 절망에 빠져있다. 그러던 어느날 버선발로 인해 ‘새뜸’(좋은 소식)이 퍼지게된다. 이어서 ‘괏따소리’(거짓을 깨뜨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소리)로 말하고 노래하는 ‘저어갈꾼’ 바로 ‘뜬쇠’(예술가)들이 ‘띠따 소리’(거짓소리)를 한바탕 부숴버리려고 앞장을 서자 그들의 뒤를 따라 ‘니나’(민중)와 ‘나간이들’(장애인들)이 다함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들이대 뺏아긴 그들의 ‘하제(‘희망·내일)을 찾게 된다.

백기완은 소설속에서 머슴들이 더이상 노동할 수 없게 되면 아무데나 던져버려지는 주검에 몰리도록 혹사당하면서 흘리는 땀을 그냥 땀이 아니라 박땀(목숨이 간닥할 정도로 일하게 될 때 흘리는 땀), 피땀(눈물나는 노동), 진땀, 무지땀, 비지땀, 안간땀 등 세세한 땀으로 표현한다. 일하면서 지겹도록 흘리는 땀인 ‘무지땀’을 읽자, 김진숙의 책 제목인 『소금꽃나무』가 생각났다.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유일한 여성 용접공으로 일했던 김진숙은 동료들의 노동복 등판에 그들이 흘린 ‘무진땀’이 말라서 하얗게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소금꽃나무’를 떠올린다.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지겹도록 흘린 ‘무지땀’이 작가 김진숙에 의해 ‘소금꽃나무’로 ‘아름답게’ 이미지화 된 것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면서 조선소 크레인에 올라 309일간 고공시위를 했던 김진숙은 지금 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으로 불리지만 노동잡지에 인터뷰기사를 썼던 저널리스트이고 ‘소금꽃나무’ (2011)책을 쓴 작가이다. 책엔 참혹한 고통의 기록도 있고 지적 상상력과 유머감각이 빛나는 글도 있다. 무진땀 흘리는 힘든 노동에 눌리고 빨갱이로 몰리는 탄압과 고문에 굴복되지 않고 그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그에게 경탄하게 된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고공시위중 기른 방울토마토를 안고 크레인에서 내려왔던 모습에선 자연생명의 귀중함을 전하는 대지의 여신 이미지를 보기도 했다. .

신화적 동화소설인 백기완의 『버선발 이야기』와 기록문학인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같은 결의고통을 보여주고 같은 꿈을 전망한다. 버선발과 같은 머슴들이 ‘벌개’(지옥)에 놓여있듯이 김진숙과 같은 노동자들도 절망과 공포의 시간을 겪는다. 김진숙은 그런 지옥과 같은 암흑을 삼킬 수 없었던 친구 ‘권미경’을 그의 책에서 불러내기도 한다.

글·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미경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홀어머니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오빠와 어린동생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 된다. 고통스럽기만 했던 삶을 견뎌야 했던 미경은 작업시간에 빵 먹었다고 조장에게 구타당하고 온 날, 여런 권의 일기장만을 남긴 채 옥상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결코 패배의 죽음이 아니었다. 투신한 미경의 팔뚝에 새겨진 유서를 보면 ‘버선발 이야기’속의 버선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들을 ‘다슬’(깨달음) 행동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미경도 죽음으로 동료들을 일으킨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에 묻어주오./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으리./인간답게 살고 싶었다./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소금꽃나무』중 권미경의 팔뚝 유서)

『버선말 이야기』는 땅과 바위를 발 힘으로 쿵쿵 짓눌러 파괴하는 신통력을 갖은 버선발이 위기를 벗어나고 니나(민중)들에게 희망을 주고 행동으로 함께 희망을 성취한다는 소설이다. 김진숙의『소금꽃나무』는 못만드는 것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신통한’ 노동자들이 참된교육을 받아야하고 민주적인 노조를 만들어 갖어야 한다고 노동자의 희망을 전한다.

탁월한 예술적 재능과 용감한 정신으로 평생을 투쟁해온 백기완과 김진숙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6년과 2018년 사이에 254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2020년 1월에만 43명의 노동자가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 ‘새름’(좋은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하제’(희망)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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