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코로나 바이러스와 혐오 바이러스
[정진경 칼럼] 코로나 바이러스와 혐오 바이러스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20.02.12 09:26
  • 수정 2020-02-12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다. 그와 함께 퍼지는 혐오 정서도 무섭다. 중국 우한에서 교민들을 데려온다기에 역시 “조국이 좋구나”하고 안도했다. 그런데 그들을 2주간 격리할 수용시설이 있는 지역 일부 주민들이 반대 현수막을 걸고 정부 관료에게 계란을 던지며 시위하는 뉴스가 나왔다. 그럴 수가!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야박해졌나 탄식이 흘러나왔다. 시위하던 그 모습은 영국 BBC 방송 등을 타고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방탄소년단(BTS)와 영화 ‘기생충’ 등 문화 역량을 높인 국가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다음날 ‘아산 배방맘’이라는 한 시민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많이 힘드셨죠? 아산에서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라는 따듯한 말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고, 그로부터 수많은 릴레이가 펴져 나갔다. 많은 주민들이 회의를 열어 반대 현수막을 철거하고 “힘내세요, 모두가 함께 이겨냅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여성들의 힘이 컸다. 오세현 아산시장도 아산은 예로부터 치유와 힐링의 도시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분연히 일어났던 충절의 고장이라며, 우리가 먼저 나서 교민들을 품자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위로와 격려의 뜻을 담아 여러 가지 물품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이 그렇게까지 나쁠 리는 없지. 이 아름다운 운동의 확산을 보니 이전의 뉴스에 다쳤던 마음이 살살 아물었다.

이번 일을 보면서 자기 지역에 장애인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극렬히 반대해 장애학생의 부모들이 무릎 꿇고 호소하게 만들었던 사람들, 치매요양병원이 들어서면 집 값 떨어진다고 결사반대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조금만 시선을 돌릴 수 없을까? 우리 아이가 언덕길에서 휠체어도 밀어주고 시각장애인과 건널목도 같이 건너는 값진 경험을 하며 더 훌륭하게 클 것 아닌가. 좋은 요양시설이 가까이에 생기면 100세 시대에 나와 가족에게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일부 사람들은 어쩌다 이렇게 야박해졌을까. 어떤 역사적 경험과 사회경제적 상황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제 강점기,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 극심한 경쟁의 힘든 세월을 겪으면서 앞뒤 안 보고 나와 내 가족만 살고 보자는 생각이 자라난 것일까. 흑백논리와 차별을 일삼는 권위주의 성격의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는 특히 많아 보인다.

전파력 높은 전염병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무섭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이성이 있고 공감능력이 있다. 합리적 판단으로 전염 위험성을 최대한 차단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성숙함을 보인 아산 시민들과 달리, 정치인들 중에는 모든 중국인 관광객을 당장 강제 출국시키고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라는 등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공포 메시지를 유포하고 혐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위험한 사람들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지금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우리 유학생과 교민이 아시안이라고 바이러스 취급을 받으며 차별당하고 있다. 배제와 혐오는 감염자나 접촉자가 자신의 증상을 숨기게 해 방역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전염병 전문가는 말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혐오 문제를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 대신 ‘국적 불문, 최근 2주 내에 중국에서 오신 손님 여러분들은 출입이 불가합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식당의 특성상 바이러스 전파 예방을 위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고 써 붙인다면 어떨까 한다고. 국적이나 인종에 의한 차별을 하지 않으면서 바이러스 차단에는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부당한 차별인지 합리적 이유가 있는 조치인지는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교민들을 더 수송해와서 내가 사는 도시 외곽, 전문가가 보장하는 안전한 시설에 수용한다면 찬성하겠다. 아산 시민들에게 배운 대로 마음 편히 쉬고 가시라는 환영의 글을 올리겠다. 이 위기를 우리가 의학의 힘과 더불어 공감과 포용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