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

 

연극 ‘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는 배우 박정자의 연기 인생 58년을 담은 1인극이다. ⓒ뮤직웰
연극 ‘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는 배우 박정자의 연기 인생 58년을 담은 1인극이다. ⓒ뮤직웰

 

“지루한 것은 싫었어요. 언제부터 불타올랐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연극 ‘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는 79세의 배우 박정자의 58년 연기인생을 축약해놓은 공연이다.  매번 바뀌는 수많은 배역과 함께 뜨겁게 살아온 노장 연극인에게 호기심과 열정을 찐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나이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예요”라는 그의 대사처럼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은 점점 커지고 열정은 더욱 뜨거워지는 것, 그것이 인생이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연기가 일상이었고 인생이었던 배우는 말했다. “내가 혹시 장난감 태엽을 한번 감았다가 저주를 받아 영원히 멈추지 못한 걸까? 내가 가진 건 다음 정거장까지 밀고 나가는 것 밖에 없었고, 나머지 극장 밖의 시간은 그냥 기다리는 인생 같았어요.”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2월 6일부터 열흘 동안 공연된 연극 <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는 70분 동안 관객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한마디 대사가 모두 인생론이 담긴 명강의 같기도 했고, 연기론 같기도 했으며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같기도 했다. 관객들은 그시간에 연극에 몰입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주부에서 아버지, 창녀, 의사, 수녀, 할머니, 마녀, 남자와 여자 등등 수많은 배역을 박정자가 소화해내는 방식은 직선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나는 세 시간안에 그 인물이 될 수 있어요. 목표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안으로 쳐들어가 완전히 육박전을 하는 거예요. 어떤 트릭도 없어요. 필요한 건 오직 통제를 잃은 배우의 광기 뿐이죠. (...) 나는 배역을 연기하는 게 아니예요. 내가 배역이 되는 거예요.”

인생의 어떤 일이든, 이렇게 목표의 안으로 쳐들어가서 육박전으로 박살을 내버리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이충걸 작가가 쓴 연극 대사는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연기가 아니라 배역이 되어버린 배우, 미친 듯이 연기 한 게 아니라 광기 그 자체였던 배우를 만나는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세상에는 어떤 광기의 에너지라는 게 있고, 천재는 그 어떤 코드의 광기 덩어리를 가슴에 안고 태어나는 사람일 것이다. 박정자의 무대는 그 광기가 잘 연마된 연기를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 시간, 사람은 없어지고 광기의 연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에 따르면 배우 박정자는 ‘고통스럽게 자신을 불지르고 태워서 무대를 밝히는 배우’다.  배우 박정자는 스스로 ‘위험한 개성을 사랑한 열혈배우’라고 하고 ‘연극이라는 하나의 신앙을 얻기 위해 일상의 계절을 버렸다’고 말했다.

대표작 <19그리고 80>에서 그는 여든살의 노인 ‘모드’를 연기하며 열아홉의 어린 청년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 여든이 되는 내년에는 19세 청년과 7번째 공연을 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나의 여든살을 축하하는 나의 방식’이라고말했고 관객들은 기대에 찬 박수를 보냈다.

“난 후회가 없어요. 그건 내가 아직은 일흔 아홉이기 때문이에요. 아직은... 나는 이 ‘아직은’이라는 부사를 참 좋아해요. 그건 많은 순간을 살았지만 미처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잖아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서도 객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다. 마스크를 쓴 중노년의 관객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진풍경이었다. 그들 모두 배우 박정자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이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예요.” 라고 말해주는 배우 박정자를 보면서 여성관객들은 힘을 얻고 위안을 받았다. 여든 살 기념 공연 때도 꼭 오겠다고 약속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극본에 이충걸 작가, 이유리 연출, 의상에 진태옥 등과 이번 무대에 함께 했다. 음악감독 허대욱의 피아노 연주와 영화<페드라> OST ‘사랑의 테마’, ‘낭만에 대하여’ 영화 <조커> 삽임곡 ‘Send in the clowns' 등 6곡의 노래도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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