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 크로커다일
전문성으로 세계 도전
"배낭매고 외국시장 돌아보고
젊은 여성들, 아마존에 판로 뚫어 보세요"

맨손으로 차에서 쪽잠 자며
전국 300개 대리점 개척
"여성이라고 특혜 바라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하겠다"

 

 

서순희 회장은 "정부에 여성 기업이라고 특혜를 달라고 안 한다. 다른 기업과 똑같이 (특혜를) 달라"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합리적 가격과 알찬 품질로 잘 알려진 남성 크로커다일과 세계적 패션 브랜드 피에르가르뎅, 여성복 던필드 레이디를 만들고 있는 던필드 그룹 서순희 회장을 서울 중구 회현동 던필드 그룹 본사에서 만났다. 창밖으로 남대문 시장이 내다보이는 회장실은 어디 한 곳 넘치거나 과한 느낌 없이 던필드에서 만드는 옷들처럼 단아했다. 1992년 남성복 크로커다일 브랜드로 남성복을 처음 내놓은 이래 서 회장은 피에르 가르뎅, 레이디 던필드를 탄탄한 내셔널 브랜드로 키워냈다. 창립 28주년을 맞는 올해 세계 시장에 본격 도전한다. 남편과 사별한 뒤 “살아남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고 맨 손으로 시작”했던 그는 지난해 ‘상호 존중하는 좋은 경영대상’에서 ‘올해의 여성리더상’을 받았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특별 부회장과 한국패션산업협회 이사로 활동하는 한편, 국가유공자 780명을 후원하는 사회기여활동에도 앞서고 있다.

새로 옷이 나올 때 디자인부터 생산, 출고, 분배, 영업을 일일이 챙긴다고 들었습니다. 연 매출이 15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패션 기업에서 회장이 그처럼 디테일을 챙기는 일이 가능합니까.

“대표가 대표인 척하면 그때부터 회사에도, 삶에도 구멍이 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10%만 살펴봐도 나머지 90%는 파트별 직원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습니다. AI 든 스마트화든, 옷은 사람 손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진심을 담은 손끝 감각이 없으면 일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돈이 아까워 하자있는 제품을 그대로 출고시키면 27년 간 나를 믿어준 모든 소비자을 배신하게 됩니다. 내가 먼저 배신하면 당연히 매출로 돌아옵니다, 검사에서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는데 실제로 소비자가 입어보고 문제있다고 말하면 과감하게 리콜합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봉제공장을 차리는 대신 협동조합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접근을 생각했습니까?

“제 돈으로 공장을 차릴 돈이 없었지요(웃음). 패션은 기본 구색으로 갖춰야 할 품목이 진짜 많습니다. 구성과 기술력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 대를 이어 해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착안했습니다. 시장에는 바지면 바지, 셔츠면 셔츠, 티면 티, 자기 분야에서 월등한 순발력이 있는 분들이 계셔요. 그런데 이 분들은 각자 하나 씩 밖에 못하죠. 구색을 못하니까. 저는 크로커다일 브랜드를 라이센스 사놓고 품목 별로 100명을 협동조합으로 구성했어요. 각자 자기 아이템은 최고로 하시는 거죠. 그렇게 품목별로 협동조합을 해서 품질은 장담할 수 있으니 다음은 유통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했지요.”

봉고차에서 쪽 잠을 자면서 대리점을 확장했다지요. 전국 300개 대리점을 개척한 비결이 무엇인가요.

“처음 스타트 할 때 광주의 한 메리야스 가게 사장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네 번째 찾아갔더니 ‘저기 또 오네’ 하시더군요.(웃음). 그래서 ‘사장님, 배가 너무 고파요. 믹스커피 한 잔 만 주세요’ 했어요. 진짜 배가 고파 탈진상태였어요. 시장 한쪽에서 파는 팥죽 한 그릇을 시켜주더군요, 그걸 게 눈 감추듯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나니 ‘뭐 판다고?’ 물으세요. 남자 옷을 판다니 그 분이 가게 앞을 한 쪽 비켜주며 ‘여기다 놔라’ 그러세요. (비결이라면) 믿음을 준 거? 옷 품질은 백화점 수준인데 가격은 시장에서 팔 수 있을 정도로 좋았어요. 하루 8개까지 대리점 계약을 한 날도 있었다. 브랜드 덕도 봤지요. 광주 사장님이 대구, 목포에도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피곤한 것도 모르고 전국을 뛰어다녔어요.”

간판도 없이 시작한 남성복 크로커다일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판매망을 뚫었습니다.

“갖다놓은 거 다 팔았다고 연락받고 새로 옷을 가져가면서 또 울었습니다. 길이 보였기 때문이고 내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죠.”

그런 회장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아본 분들도 여성들이었네요?

“시장 가게 여사장님들이 저를 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여성들은 동지애 같은 것을 의리 있게 지킵니다. 자기보다 높아보이면 시기질투도 하겠지만, 진실성 있게 한결 같은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짠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기업하는 여성들에게는 서회장의 성공담이 부럽겠습니다.

“여성경제인협회 일을 하면서 여성 기업인을 많이 만납니다. 힘드냐고 물으면 다 힘들다고 합니다. 다 울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물어봅니다. 지금 이 순간 50만원 빌리러 갈 때가 있습니까? 대부분 그럴 곳이 있다고 해요. 그럼 여러분은 아직 힘든 게 아니라고, 여러분이 500만원 가치가 있으니 50만원을 빌려주는 거라고 말합니다.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마라. 힘들다고 하면 돈을 감추는 게 세상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담만 보지 마시고, 그 속에 담긴 것을 가져가시기 바란다고요."

서회장께서는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리더는 매순간 선택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길 중 내가 갈 길을 선정하고 그 선택한 것을 책임져야죠. 가시덤불에 찔리고 진흙탕에 빠져도 자기가 가는 길을 책임지는 것이 리더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진흙탕을 밟고 가시덤불을 헤쳐 가면서 저를 믿고 따라오는 모든 이들에게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더 큰 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아갈 것입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던필드 그룹의 인재 정책은 무엇인가요.

“미더운 사람입니다. 저 자신이 먼저 신뢰, 신용,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신의를 지켜왔습니다. 우리 회사는 남녀 직원이 반반입니다.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신의와 정성이 있는 분들을 존중합니다. 출산 휴가 3개월 후 돌아온다고 약속한 여성 직원들이 과연 돌아올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회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인 기업문화’를 중시하는 그는 직장 내 성평등은 제도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한 여성 직원이 동료 남성 직원에서 상자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 제가 야단을 쳤습니다. 샤방샤방한 여성이면 월급도 샤방샤방하게 받을 것인지요? 상자가 무거우면 끌고 가더라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부에도 여성 기업이라고 특혜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기업처럼 경쟁하겠다고 합니다. 여성 기업이라고 낮춰보지 말라는 거지요.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그만큼 해야 합니다. 여성이니까, 약하니까 봐 달라고 해선 남성들과 공존이 어렵습니다.”

출산, 육아가 모두 여성 몫으로 돌아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큽니다.

“직장 생활하려면 감수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고,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겠지만, 아이들이 꼭 그것을 원할까요?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저도 동대문에서 장사는 해야 하고 어린 딸을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 딸이 주변 아주머니들이 사탕이라도 주면 그것을 엄마 준다고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나중에 혼자 유학을 보냈는데, 너무너무 외로워서 소리내어 울기도 했지만, 엄마가 고생한 것을 보고 자라 엇나갈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여성이 사회생활을 원활히 하려면 가족 구성원 모두의 협조와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여성신문처럼 끊임없이 이슈를 언급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언론의 역할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여성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데 어떤 점이 뛰어나던가요?

“여성들이 기업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섬세하면서 배짱이 있어요. 남성과 다른 점은, 맥락을 보는 눈이 있다는 거죠(보통 그 반대로 생각하는 일이 많은데요?) 남성은 1+1=2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합니다. 수치로 딱딱 맞춰보고 안 맞으면 안 하는 일이 많아요. 저도 그렇고 제가 겪은 여성들은 좀 달라요. 당장 손실로 답이 나오는 데도 이익이 보여요. 이익한 손실이죠. 엄마가 자식 키울 때 그 자식이 잘 될 것으로 믿고 투자하는 것과 같아요. 여성이 가진 감성과 미래를 보는 직관이 장기적으로 롱런하는 원천이 아닌가 합니다.”

그는 젊은 세대가 배낭 하나 매고 외국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을 돌아보고 아마존에서 팔 생각을 해 보라는 것이다.

창립 30주년을 바라보는 던필드그룹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우린 남성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더 키워서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로 나가야지요.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대기업의 확장속에서 우리 중소기업은 생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면 서로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 우뚝설 수 있는 남성 전문 브랜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