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 18주기
2018년 복사판 사건 발생해
성매매 집결지는 사라지지만
일상·온라인으로 스며들어
전체 시장 규모 30~37조원

2000년 10월 13일자 여성신문 제 596호.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직후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심층보도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00년 10월 13일자 여성신문 제 596호.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직후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심층보도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불법 성매매 업소에 감금된 여성들이 목숨을 잃은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가 18주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2월에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성매매 업소의 구조 탓에 대비하지 못해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성매매 업소에서 탈출하지 못해 숨지는 이들의 사건은 언제 끝이 날까. 

전북 군산시 월명동 산돌갤러리에서 '2002 개복동 기억. 나비자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2002년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에서 희생당한 여성의 일기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북 군산시 월명동 산돌갤러리에서 '2002 개복동 기억. 나비자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2002년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에서 희생당한 여성의 일기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02년 1월29일 오전 11시45분, 전북 군산시 개복동 유흥업소 ‘아방궁’에 불이 났다. 카드 단말기 누전으로 난 불은 24분만에 진화됐지만 이날 14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1층에서 발생한 화재를 피하려면 1층 출입구나 2층으로 가야 했지만 모두 밖에서 잠겨 있어 대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앞서 2000년 9월29일에도 인근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의 불법 성매매 업소에서 난 화재로 안에 있던 여성 5명이 질식사했다. 건물 출입문 밖에 잠금장치가 있었고 2층·3층 창문에는 모두 쇠창살이 달려 있어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신문(2000년 10월 13일 여성신문 제 596호)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심층보도에 나섰다. 경찰과 업주와의 밀착 의혹도 제기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군산역 앞 파출소에서 100m 떨어져 있었다. 사건 발생 이튿날 담당형사는 “여성들이 감금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증거가 없고 증인도 없으니 당신이 수사해 보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했다. 수사 결과와 생존자의 증언, 희생된 여성의 일기 등을 통해 희생자들이 일을 할수록 빚이 쌓이는 악순환적 구조 속에 있었음이 드러났다. 희생자 임씨의 일기에는 “하루빨리 자유라는 걸 되찾고 싶어. 혼자서 목욕탕 가고 슈퍼 가고 커피숍 가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라고 써있었다. 아울러 업주가 관할 경찰서에 상납금을 바쳤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00여개 여성·시민단체가 군산시 윤락가 화재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가장 큰 책임은 매매춘을 방치·방조하고 있는 국가”라며 국가를 상대로 공익소송에 나섰다(2000년 10월 6일 제595호). 여성신문은 이때 흔히 쓰이던 용어의 변화를 제안했다. “매매춘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 삼는 ‘윤락’이란 용어는 ‘성매매’로 대체돼야 한다”며 성매매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를 촉구했고, 여성운동권에서 간과돼 왔던 성매매 문제를 “운동 중심에 세우자”는 주장을 제기했다(2000.10.13. 596호).

2002년 1월 29일, 군산 개복동의 성매매업소에서 난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사망. 이에 같은 해 전북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한 군산개복동화재참사대책위가 개복동에서 여성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활동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2002년 1월 29일, 군산 개복동의 성매매업소에서 난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사망. 이에 같은 해 전북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한 군산개복동화재참사대책위가 개복동에서 여성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활동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1년4개월 후에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쉬파리골목 화재 참사’의 복사판이었다.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 진영은 대대적인 법 제정 운동에 나섰고 2002년 조배숙 의원을 통해 발의된 성매매방지법안은 2004년 3월 2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로 제정돼 같은 해 9월 23일 시행됐다. 법 시행 첫날 최은순 변호사, 이정희 변호사 등이 유족을 대리해 국가와 업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결과도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이용우 대법관)는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 했다(2004.10.8. 797호).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지 16년을 맞았다. 제정 이후 50여곳에 달하던 성매매 집결지들은 속속들이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 추진 방안’에 따라 16곳이 폐쇄됐고 14곳이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2020년 1월 현재 남은 곳은 12곳이다. 그러나 집결지 폐쇄 정책으로 흩어진 성매매 업소는 성매매 알선 사이트와 변종 성매매 업소들이 일상생활 속 깊숙이 침투했다. 

지난 22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건물. 2층의 창문들이 콘크리트로 막혀있거나 창살이 쳐져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2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건물. 2층의 창문들이 콘크리트로 막혀있거나 창살이 쳐져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6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 보고서는 성매매 전체 시장 규모를 대략 30조에서 37조원 사이로 추정한다. 40조원으로 추정되는 커피 산업과 유사한 규모다. 산업 규모의 증가에는 성매매에 죄의식 없는 남성들의 낮은 성 의식과 성매매 범죄 단속에 미온적인 경찰의 태도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2016년 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일반 남성 1050명 중 ‘평생 동안 한번이라도 성구매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50.7% 절반에 달했다. 

지난 12월31일, 부산시는 한때 국내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던 ‘완월동’ 폐쇄에 따라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을 위한 조례를 마련해 실시한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올해부터 생계비, 주거비 등 여성 1명에게 1년간 최대 2200만원을 지원한다. 

2016년 여성가족부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성매매·가출 등을 경험한 위기청소년 1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8%가 부모 또는 보호자로부터 폭행, 감금, 굶김 등의 학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학대 경험이 곧 성매매 산업으로의 유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은 2016년 발간자료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외면적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이자, 각종 벌금, 옷값, 방값 등 온갖 형태의 채무 등으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한다. 3650%의 고리대를 매기는 업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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