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와
함께 창궐하는 인종차별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JeNeSuisPasUnVirus
해시태그 운동까지 번져

한 음식점 엘리베이터에 ‘중국 여행객의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 써 붙어있다. ⓒ여성신문 진혜민 기자
한 음식점 엘리베이터에 ‘중국 여행객의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 써 붙어있다. ⓒ여성신문 진혜민 기자

 

며칠 전 간단히 장을 보러 집 앞 마트에 갔다가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들과 마주한 순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 시선을 느낀 관광객들은 불쾌했는지 나를 보며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그날 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보다 외국 유학 중인 후배의 글을 읽었다. 그는 “외국인들이 자신을 ‘코로나’라고 불러 화가 났다”며 “그냥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썼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만으로 거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후배의 글을 읽으며 내가 겪던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그들은 전염병이 도는 동안 한국에서 수차례 인종차별을 당했을 수 있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시선을 사용한다”고 했다. 나의 시선은 마트에서 만난 중국인들에게는 충분히 차별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중국계뿐 아니라 아시아계 전반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이 늘고 있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 학생의 수업 참석을 금지하고 아시아인을 모욕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입양됐다고 밝힌 한 프랑스인 여성은 27일(현지 시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전개했다. 트위터 캡처
아시아에서 입양됐다고 밝힌 한 프랑스인 여성은 27일(현지 시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전개했다. 트위터 캡처

 

현재 유럽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시아인 혐오가 확산되면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은 #JeNeSuisPasUnVirus 해시태그 운동까지 번졌다. 1월27일(현지시간) 한국에서 입양된 프랑스인 여성은 트위터를 통해 해당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내가 기침을 하지 않는데도 남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걱정하게 된다”며 “코로나바이러스로 중국과 모든 아시아인에 대한 시스템적 혐오가 자리 잡았다”고 허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월28일(현지시간)에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 북부 요크리전 교육위원회에는 최근 중국에서 돌아온 가족이 있는 학생들의 교실 출입을 통제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여기에는 9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로이터는 “캐나다에서는 지금껏 우한 폐렴 확진자가 3명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심각한 ‘반 아시안 감정’이 창궐할 우려가 크다”며 이는 2000년대 초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를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이나 유럽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차별과 혐오는 이어진다. 배달의민족 배달직원들이 중심이 된 배민라이더스 노조가 회사 측에 중국인 밀집지역 배달 금지를 추진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노조는 공문을 통해 “우한 폐렴이 확산해 많은 사람들을 접촉할 수밖에 없는 배달노동자의 특성상 불안감과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우한 폐렴 위험이 안정화될 때까지 안전 마스크를 지급하고 확진자가 발생된 지역(읍면동) 및 중국인 밀집 지역(유명관광지, 거주지역, 방문지역 등) 배달금지 또는 위험수당 지급할 것” 등 두 가지를 요구했다. 이에 국내 거주하는 중국인도 있는데 합리적 이유 없이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중국인을 혐오대상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이 1월 23일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이 1월 23일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국가인권위원회는 5일 성명을 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함께 퍼지고 있는 중국인 등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와 낙인찍기를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인권위는 감염증 공포와 불안감을 특정집단의 책임으로 돌리는 혐오 표현이 사태에 대한 합리적 대처를 늦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심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 안의 차별 의식을 돌아보자. 불특정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행위로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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