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지스페이스 기획전 ‘처녀길(Virgin Road)’

@21-1.jpg

~21-2.jpg

◀디자이너 원지해씨의 퍼포먼스 장면들.

@21-3.jpg

▶쌈지스페이스 전시관에 마련된 최정화의 설치물. 사람들이 가지고 온 플라스틱 물건들을 이곳저곳 놓아두는 작업이다.

처녀길(Virgin Road). 일본에서 신부가 결혼할 때 걸어가는 길. 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일본에서만 쓰이는 합성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급속히 서구화된 일본의 문화적 배경을 상징한다.

쌈지스페이스에서 7월 한 달간 진행되는 처녀길 특별전은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상대의 서구화된 모습 읽기다. 한국과 일본의 예술가들은 서로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술, 음악, 패션. 세 가지 분야의 작가들은 상대 문화에 대한 인상에서 출발해 그에 대한 ‘반응’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한다.

길에서 만드는 취향 공동체

“셀프 익스프레션. 1인칭 표현이라고 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직접 발견하고 자기화 하는 1인칭 문화를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누가 보는 것보다 자기 취향에 맞는 공동체를 형성하죠.”

이번 전시에서 ‘원한다면 꿈꿔봐(가칭)’라는 퍼포먼스이자 패션쇼를 준비하는 디자이너 원지해씨는 서구화 된 아이들의 장난감과 국적 불명의 캐릭터 상품들을 가지고 ‘노는’ 젊은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의 장르가 혼합된 놀이나 노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문화를 연출해 가는 발견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

만화책, 코스프레, 무용, 의상. 네 가지 소재로 원씨가 진행하는 퍼포먼스에는 ‘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란 부제가 붙는다. 온라인 모임에서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지듯 오프라인 상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취미, 코드가 맞을 것 같은 이들을 찾아 친구 맺기를 하는 작업. 원씨의 표현에 의하면 ‘취향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자체가 이미 퍼포먼스인 셈.

“인터뷰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이에요. 환타지, 감정, 꿈 등 그들의 환타지 표현법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업이죠. 길에서 만나면 일단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해요. 니네가 가진 옷, 아이들의 심리로 멋대로 환타지를 실현시켜 보자. 소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즐기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거든요.”

인디 락그룹 황신혜 밴드의 리더 김형태와 그래픽디자이너 조경규도 참여한다. 김형태는 이번 전시에서 월간 <소녀와 굴삭기>, <또 까불래(가칭)> 라는 제목의 잡지를 창간한다.

<소녀와 굴삭기>라는 요상한(?) 제목의 잡지는 전 세계의 교복과 굴삭기에 대한 정보를 담은 잡지. <또 까불래>는 어떻게 조직폭력단을 만드는가의 방법을 제시하는 코믹한 주제의 잡지다. 그것도 창간과 동시에 폐간되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잡지도 있다는 가상의 잡지를 만들어 보는 거에요. 잡지도 하나의 예술이잖아요. 카달로그 멀티미디어. 지금의 잡지들은 목적의식이 너무 과다한 것 같아요.”

파트너인 조경규는 음식을 주제로 한 사진 작품을 전시한다. 새우깡 같이 일본과 한국에서 공존하는 음식이나 짜장면 같이 국적 없는, 그래서 한국적인 음식에 체리 장식을 얹어 촬영하는 등 대중적인 소재에 장난기 어린 표현을 보여준다.

기존 미술에 대한 인식은 잊어야

설치미술가 최정화는 마포구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쓸모 없이 버리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한 곳에 모아 진열하는 ‘해피투게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온 플라스틱을 이곳저곳에 놓아 그대로 전시하는 형태다.

이와 비견되는 일본 예술가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인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을 제작한다. 그룹 골저러스(GORGEROUS)의 멤버이자 조각가인 우지노 무네테루는 한국 도착 후 동대문 등 재래시장 답사 후에 구입한 자전거와 구이 테이블로 공연에 쓰여질 악기를 직접 제작한다. 또 다른 멤버 마쯔카게 히로유키는 그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얼굴사진을 설치하는 동시에 유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체적으로 패러디와 키치적인 느낌의 이번 전시는 서구 문화가 한국과 일본에서 전혀 다르게 정착되어 온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가슴시각개발연구소의 김상화 실장은 “기존 미술에 대한 인식을 다 잊어버리고 오라”고, 쌈지스페이스의 큐레이터 신현진씨는 “의미를 찾는 것은 평론가들이나 한다. 그냥 와서 즐기면 된다”고 요구한다.

7월 1일 오프닝 파티에서는 쌈지 스페이스 개관 3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이벤트 클럽 소리에서 VJ와 함께 하는 레이브 파티가 마련되며 쌈지의 물건들을 판매하는 벼룩 시장도 열린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