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술실 신체접촉 성추행 아냐…
부적절 발언은 성희롱” 판단
간협 “상식 벗어난 판결” 비판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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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도중 벌어진 의사와 간호사의 신체 접촉을 두고 법원이 성추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간호사 단체가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한간호협회(회장 신경림, 이하 간협)는 1월 28일 성명을 내고 “법원이 수술 상황이라는 단편적인 정황만을 고려해 의사의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성추행을 무죄로 판단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3단독 박창희 판사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 A씨가 외과 전문의 B씨와 병원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B씨와 병원이 공동으로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3~2016년 B씨가 집도하는 수술에서 전담 간호사로서 신체 내부를 촬영하는 카메라를 잡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B씨의 팔꿈치가 바로 옆이나 뒤에 선 A씨의 신체에 닿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2016년 4월 함께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이어진 술자리에서 B씨는 A씨에게 “그 정도는 괜찮지”, “가족처럼 편한데 가족끼리 키스하는 것 아니냐” 등의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이날 발언 이후에도 수술 도중 신체접촉이 발생했다.

A씨는 이런 신체접촉은 성추행에 해당하고 발언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B씨와 병원을 상대로도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B씨가 주장하는 신체접촉은 수술 진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일 수 있다”며 “고의로 한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술실에는 레지던트와 다른 간호사 등이 있으므로 B씨가 쉽게 고의적인 성추행을 할 여건도 아니라고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B씨가 술자리에서 “가족처럼 편한데 가족끼리 키스하는 것 아니냐” 등의 발언을 한 것은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A씨가 상당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발언이 학술대회 후 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B씨의 사용자인 병원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간협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해당 의사의 평소 품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통해 충분히 해당 행위가 고의성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다”고 했다.

또한 단체는 “일부 의사가 간호사에게 우월적 지위와 권한을 행사하는 행태가 문제의식 없이 법정판결에서 통용된다는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로써, 이번 판결에 대한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간협은 사법부에 △간호사에 대한 괴롭힘과 성추행 등을 엄중하게 다뤄줄 것과 △의료계에 의료현장의 핵심인력인 간호사를 의사의 협력적 동반자로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 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단체는 “간호사가 간호현장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의사들의 행태 때문”이라며 “그 결과로 안전한 간호가 불가능해 국민건강권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되는 중대한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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