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
1600년 역사지닌 오랜 옷이지만, 서양에서도 주목하는 글로벌 현대옷
내 스승은 어머니와 가난, 이리자 선생님

박술녀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한복을 입고 미소를 짓고 있다.ⓒ박술녀

 

 

한복은 둥글고 온화하고 자연스러운 선과 곡선의 아름다움이 압권이다. 보름달이 뜬 날 밤 물 한 사발을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소박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한복의 멋이다.

한복은 속옷을 겹겹이 갖춰 입는 것이 기본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선이라면 그 선은 속옷을 갖춰 입었을 때 옷태가 살아나 항아리처럼 부풀게 되는 ‘상박하후’ 모양새를 이루면 제대로 입은 것이다. 한복은 오방색이라고 불리는 황, 청, 백, 적, 흑 5가지의 색조로 이뤄져 색에 의미들이 담겨있다. 여성분들이 혼인 전 다홍치마를, 생일을 맞은 어린아이는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1600여년간 이어진 고유 한복은 세계에서 전통성이 제일 길며 고구려 고분벽화(4~6세기)와 신라, 백제 유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한복의 기본복은 스키타이계이며 북방민족의 복식에 속한다.

이러한 한복이 지난해 10월 아이폰 사진앱에 ‘한복’을 검색하면 사진이 나오지 않지만 기모노라고 찾아야지만 한복 사진이 나와 한복이 기모노로 분류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 어셔, 아만다 사이프리드, 최근 방탄소년단까지 박술녀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었다. 그는 올해 예순 다섯.원로 한복연구가 이리라 선생의 제자로 42년간 한복을 지어왔다. 그와 한복과 인생에 대해 간단한 얘기를 나눴다.

박 디자이너 한복 인생에서 스승은 누구인가.

“개인적 스승은 어머니와 가난, 한복 스승은 이리자 선생님이다. 직업을 갖게 한 두 분인 것이다.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한복을 잘 정리해서 입어 친인척 결혼식에서 보여준 고운 맵시를 보고 자라 한복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의복을 하면 풍요롭게 살지 않을까’라는 물음에, 어머니가 ‘한우물을 깊게 파라. 힘들어도 우리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복은 있으니 계속해라’라는 말씀을 들었다. 끝까지 남 잘 때 일하고 꽃놀이갈 때 일만 하고 살았다.”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20대 당시, 한복연구가로 성공을 예감했나.

“한복 살짝 변형한 외출용 양장복을 해보겠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깊이 파면 물이 나온다'고 말렸다. 내가 바느질한 한복을 본 양복 선생님이 '사람이 한 바느질이 아니니 서울로 올라가라’고 했다. 처음 이리자 선생님에게 취직하고 싶어서 방문했을 때 20대였다.  옛날엔 20살만 넘으면 결혼 준비를 할 때였다. 이리자 선생님은 처음에 (저를) 안 된다고 거절했다가 받아주신 후 한복의 멋이 무엇인지 알려주신 스승이었다. 따로 기술 배워 한복집을 차릴까봐 안 받으셨다고 했다. 그러다 1986년 군자동에 가게를 열었다. 열심히 한 것밖에 없다. 여름휴가, 겨울휴가, 꽃놀이 등 가족과 쉬어본 적 없다. 시작한 일을 끝마무리 해야했기 때문이다. 한 번 아들이 어느 날 어린이대공원에 가자고 졸라서 간 적 있다. 집에 가자는 제 말에 아들이 주저앉았는데 지금도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생각 없이 살았나 후회되기도 한다.”

42년간 한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4층 건물을 가진 것과 어머니 팔순 잔치 때 가족 모두에게 (제가 만든) 한복을 입혀 사진 찍은 일이다. 이룰 수 있는 만큼 꿈만 꾼다. 주제를 안다는 얘기다. 교수 제의도 왔지만 맞지 않아 하지 않는다. 건물도 아닌 바느질을 할 줄 아는 능력이 비결이다. 바느질에 쾌락을 느끼고 좋아했다. 모든 에너지대로 바느질이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새벽 3~4시까지 바느질했다. 제자는 치마, 저는 저고리 등을 맡거나 처음부터 다 하거나.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시장 다녀오고 바느질만 했다. 제자들이 지금도 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신뢰는 얻는 데 50년 걸린다면 잃는 데 5분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슬프다. 아이들 기저귀를 갈거나 젖 물린 적, 우유병을 물린 기억이 별로 없어서다. 남편이 많이 희생했다. 가족 4명이 밥 먹는 평범한 행복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 ‘박술녀 한복’이다.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일은.

“여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일이다. 일할 땐 몰랐지만 세월이 갈수록 동생이 그립다. 그땐 바느질을 직접 해야만 했다(눈물). 40대 초반인 제가 27년 전 동생이 죽었다는 연락을 어머니로부터 받았는데 바느질만 하고 가질 못했다. 울면서 일한 그 생각이 난다.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았다. 동생의 죽음을 함께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 왜 이렇게 일만 했을까…어릴 때도 많이 울었는데…부질없는 인생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 박 디자이너가 했던 팁이 있다면. 

“일은 열심히 하되, 엄마로선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원칙만 깨지 않으면 할 수 있다. 누가 돈을 더 벌고는 중요하지 않다. 술한잔하고 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스스로 술담배를 하지 않느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50세때, 어머니 돌아가신 55세 때에도 인생을 사실 몰랐다.”

한복 가격이 350~400만원으로 비싸다는 지적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벌이 아니고 치마, 저고리, 속치마, 속바지, 버선, 백 등 10가지가 한 세트다. 가격대가 최소 150만원에서 50만원 단위로 최대 450만원 정도다. 한복을 제대로 만들고 수의로 하겠다면 속옷까지 폴리에스테르가 아닌 비단으로 감아야 한다. 150~190만원 한복은 비단으로 만들지 않는 차이다. 고가 라인은 100% 비단(실크)를 속치마부터 속바지까지 감는다. 남의 나라 옷인 원피스 한 가지가 4~500만원대와 비교해 한복 10가지는 왜 가격을 그만큼 받지 못하나. 가격보다는 그 옷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제대로 우리나라 전통 옷을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비단으로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42년 한복을 지었다. 화가가 어떻게 물감값만 받겠나. 가치가 있다면 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계획은.

“한달 두 번 일요일엔 쉬고 싶다는 것이 계획이다. 제2 박술녀의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사랑하는 한복을 대중에게 계속 알리겠다.“

 

설 한복 제대로 입는 법

설을 맞아 한복을 찾지만 장롱에 고이 보관해 둔 한복을 정작 어떻게 입어야 제대로 입는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복은 속옷을 겹겹이 갖춰 입는 것이 기본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선이라면 그 선은 속옷을 갖춰 입었을 때 옷태가 살아나 항아리처럼 부풀게 되는 '상박하우' 모양새를 이루면 제대로 입은 것이다. 체형별로 올바르게 입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 한복은 속바지와 버선, 속치마 순으로 입은 뒤 겉치마를 입어야 한다. 겉치마를 입을 때 자락이 왼쪽으로 오도록 하고 앞쪽이 들리지 않도록 2~3cm 당겨 입는다. 속저고리와 겉저고리를 입고 겉저고리는 저고리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앞으로 당겨 입은 후 저고리 고름을 매면 된다.

남자 한복은 바지를 먼저 입고 큰 사폭이 오른쪽으로 가도록 한다. 허리띠로 허리를 잡아맬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하며 바짓부리는 대님으로 맨다. 다음으로 저고리를 입고 고름을 맨 뒤 조끼, 마고자를 입는 순서다. 외출 시 두루마기를 걸치는 순으로 입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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