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디자인 ‘셉테드’ 확산
조명 영향범위 1㎢ 넓어질수록
살인·강도·강간 등 범죄 감소
전국서 312개 관련 사업 추진

성동구가 금호4가동의 단차가 높은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부착한 스카이라인 주소 안내사인이다.ⓒ뉴시스.여성신문
성동구가 금호4가동의 단차가 높은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부착한 스카이라인 주소 안내사인이다.ⓒ뉴시스.여성신문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 밝기가 조금만 밝아져도 살인·강도·강간 등 범죄가 줄어든다. 지난해 경찰청과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범죄예방 환경조성(CPTED) 시설기법 효과성 분석 연구’를 보면 가로등의 영향 범위가 1㎢씩 넓어질수록 5대 범죄가 1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취 소란·청소년 비행 등 무질서 관련 112 신고도 4.5% 줄었고, 폭력 범죄도 약 17% 감소했다. 도시 환경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범죄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도시 환경디자인을 바꿔 범죄를 예방하는 기법인 ‘범죄예방디자인(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이하 셉테드)’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셉테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범죄예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9년 12월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총 312개의 셉테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주거침입 범죄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 ‘2018 범죄분석통계’를 보면 2017년 절도범죄 발생 건수는 총 18만4355건으로, 이 중 7038건이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한 절도범죄는 총 9045건에 달했다. 여성·노인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거침입 성범죄도 늘고 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주거침입성범죄는 1611건 발생했다.

범죄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경찰청은 2005년 부천시 고강도 등에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최초의 셉테드는 CCTV 확충과 가로등 조도 개선 등이 주요한 사업목표가 됐다.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로 셉테드가 확산됐다. 전국으로 확산된 셉테드는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갖게 됐다.

서울시는 2012년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 조성을 시작으로 셉테드를 도입했다. 소금길 사업 완료 후 실시한 주민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죄불안감이 9.1% 감소했고 범죄예방 효과에 대해 78.6%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성동구는 2019년 17개 동 24개소에 셉테드를 기반으로 한 안전마을 조성했다. 벽화와 솔라표지병, 고보조명(로고젝트) 등이 설치됐다. 또 재개발이 유보되며 노후주거지가 밀집한 금호4가동 일대에는 위치 파악과 신고를 용이하게 해주는 ‘스카이라인 주소 안내 사인(Skyline Wayfinding)’을 설치했다. 성동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시설물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게 스카이라인 주소 안내 사인”이라고 말했다.

궁을 끼고 있는 종로구는 관광상품과 연계한 셉테드를 선보였다. 종묘 옆 동순라길과 서순라길의 한옥 게스트 하우스와 연계해 ‘순라군 무료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순라군은 밤에 궁중과 도성을 순찰하던 군인을 뜻하는 말로 관광객들은 종묘 옆 담장을 따라 걸으며 순라군 체험을 하고 주변 관광지를 훑어본다. 관광객들이 체험 관광을 하며 자연스럽게 치안 순찰도 겸하는 것이다.

동작구는 여성 및 범죄 취약계층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여성안심거울길’을 조성했다. 다세대·다가구 밀집 지역 공동주택의 주차장과 유리 출입문에 ‘미러시트(mirror sheet)’를 붙이고 도로 노면에 ‘안심거울길’을 표기했다. 미러시트는 보행자를 따라온 사람의 얼굴을 두 사람에게 노출해 범죄 욕구를 감소시킨다.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로만 제안된 디자인들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거나 방치될 수 있다. 동작구 보육여성과 관계자는 “처음 시설물을 설치하기 전에 범죄율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어떤 범죄가 발생하는지에 따라 설치물이 달라진다. 노상범죄가 많은 지역, 가택침입이 많은 지역 등 범죄 종류에 따라 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부산 북구 구포동은 고령 인구가 많고 어두운 골목길 환경으로 노상범죄에 취약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밝은 거리를 조성했다. 인천 부평구에서는 건물 외벽을 통해 사람이 접근할 시 조명과 경고 멘트가 나오는 침입방지경보장치(H가드)를 설치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시설물을 설치했다.

해외에서는 범죄 대응 패러다임이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바뀜에 따라 셉테드가 주요한 도시 환경 디자인의 하나로 떠오른 지 오래다.

법무부가 2018년 발표한 ‘외국 셉테드사업 추진 사례 연구’에 따르면 일본 아다치구의 한 셉테드 타운은 2012년 3월 13일 건립됐다. ‘방법 CCTV가 필요 없는 마을’을 모토로 하고 있다. 실제로 CCTV가 마을 입구에 단 1대 있을 뿐이다. 주민들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접근통제를 강화하는 등에 집중했다. CCTV를 셉테드의 핵심으로 이해했던 과거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이다.

말레이시아 연방정부 주택지방정부부에서는 2010년 이후 세이프 시티(Safe City) 프로젝트를 통해 쿠알라룸푸르시 곳곳에 방범 반사경을 설치하거나 투시형 건물을 세웠다. 말레이시아는 2011년 범죄 불안감이 높은 마을에 경계 펜스를 설치하고 조명을 방해하는 나무의 가지를 쳤다. 가로등 조도도 개선했다. 이후 진행한 주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안전도와 만족도가 크게 개선됐다.

이창훈 한남대 행정·경찰학부 교수는 “셉테드는 환경 디자인을 바꿈으로써 잠재적 범죄자의 논리적인 사고의 방향, 절차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셉테드를 적용해 물리적 환경만 바꾸는 경우 범죄 예방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며 “물리적 환경을 바꿀 뿐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향상해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도록 셉테드를 활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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