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1월16일 부산지법 판결
여전히 성관계 의무라고 믿어
공권력 도움 비율 1% 안돼

ⓒpixabay
ⓒpixabay

 

2009년 1월16일, 우리 사회에 부부간 강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고종주)는 외국인 아내 A씨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3년 5월 대법원은 또 다른 부부간 강간 사건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판결했다. 법조계는 부부간 서로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을 비로소 심어준 혁명적인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40년 사이 달라진 대법원의 판단 
1970년 3월, 대법원은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설령 남편이 강제로 부인을 성폭행했다 하더라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969년 대구지법 경주지원과 대구고등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부부간 강간죄가 인정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남편이 동거녀를 보내고 부부가 새 출발을 하기로 한 만큼 남편에게 정교 청구권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깼다. 판결은 이후 40년간 우리 사회에 부부간 강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2005년 6월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부부간 강간 처벌을 명시한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론에서 “가정 내 부부간 문제를 법이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홍 의원은 “단순히 배우자의 동의 없는 강제적 성관계 등은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다. 해당 내용은 2007년 개정된 가폭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2013년 대법원은 다시 부부간 강간 사건을 다루게 됐을 때 공개변론으로 심리했다. 형법상 강간의 피해자인 ‘부녀’에 아내가 포함되는지, 또 부부간 성적 문제를 사법부가 개입을 할 지가 쟁점이 됐다. 당시 공개변론에서 피고인측 참고인으로 나선 윤용규 강원대 교수는 “부부 강간 사안은 확정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치료와 교육의 문제다”라며 “부부강간죄의 유죄 성립은 법리를 처벌강화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건리 당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부부 사이의 반복된 폭력은 타인에 대한 강간보다 더 중한 폭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부인이라는 이유로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유죄를 주장했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다”며 유죄를 확정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반응이 갈렸다. 여성단체 등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을 바꾼 일대의 사건”이라고 환영했으나 일각에서는 “부부간 강간죄를 이혼소송 등에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부부 침실의 문은 아직 닫혀있다 
부부간 강간이 유죄 판결 받은지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부부의 섹스는 의무며 권리’라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에 업로드 된 부부간 성관계를 다룬 다수의 영상들은 “내키지 않더라도 부부 관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38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 C씨는 “서로의 욕구를 인정해 나가는 것이 결혼생활”이라며 “상대방의 욕구를 인정하고 의무로써 성관계를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이혼 사유로 성생활이 참작되는 만큼 결혼의 의무로써 명시됐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결혼 관계 중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민법 제800조부터 제833조까지 중 상대에 성적으로 응할 것을 의무로 하는 조항은 없다. 제804조 타인과 간음하지 않을 것과 제826조 부부는 동거를 기본으로 할 것에 따라 성생활을 할 수 있는 관계로 본다. 따라서 상대의 요구에도 장기간 성 생활에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혼 사유로 인정된다(대구가정법원2013드합10054). 

ⓒ다음 카페 캡처
ⓒ다음 카페 캡처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1년간 발표한 상담 통계를 분석한 결과 과거나 현재의 부부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2006년 7.9%에서 2017년 10.4%로 늘어났다. 그러나 법적 대응으로 이어진 사례는 단 2.58%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내놓은 가정폭력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배우자로부터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여성 2.3%, 남성 0.3%였다. 폭력을 경험한 이들 중 공권력 등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0%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66.6%가 ‘그냥 있었다’고 응답했다.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응답자를 대상으로 이유를 물은 결과 ‘부부간에 알아서 해결할 일인 것 같아서’(27.6%),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18.6%)가 주된 이유였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2013년 이전에는 부부간 강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며 “명확하게 수치화 할 수는 없으나 판례가 나온 이후 부부간 강간과 성폭력을 호소하는 사람이 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