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주장하는 운동가들은 여성단체마저 낙태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현실이 일반 여성의 선택권마저 축소시킨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성은 급속도로 개방되는데 가정, 학교 등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지 못해 여성들은 사후처방식으로 ‘낙태’아니면 ‘미혼모’, 기혼여성은 ‘책임’만을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여성활동가들은 ‘여성 선택권’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공개되는 것을 꺼렸으며 낙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있다. 호주제폐지 등 ‘여성의 권리 찾기’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여성단체 실무자는 “인간배아 복제 등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으나 낙태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성폭력상담소 등 낙태문제와 직접 관련된 단체가 아니면 의견을 쉽게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여성활동가는 “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 낙태수술을 받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최대한 설득을 한 후 권유하겠다”며 “병원에서 죄인처럼 수술을 받고 눈총을 받는 것도 괴롭지만 낙태를 한 경우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개인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여성단체라 할지라도 여성의 선택권을 말하는 순간, ‘생명경시’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여성단체가 아직은 없는 것 같다”며 “88년에 관련 논문을 낸 이후 지금까지 같은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여성을 위한 상담소가 마련되지 않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여성운동가들은 여성해방운동과 관련, ‘모든 여성은 재생산의 자유 등 자신의 몸을 관리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낙태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권 존중’과 ‘여성의 권리’와의 미묘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논쟁의 중심에 선 여성단체가 없다는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다. 지난 2001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와 웹진 언니네(www.unninet.co.kr)가 낙태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게 고작이다. 기·미혼 여성들의 솔직한 낙태 경험담은 당시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후속타’ 부족과 여성단체들의 지원 부족 등으로 메아리 없는 기획으로 그쳤다는 한계를 가졌다.

그러나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서 “인구정책 중심으로 낙태를 조장하는 국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구조에서 시선을 옮겨 여성들을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찬성, 반대를 떠나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의 낙태논쟁이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는 조심스런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신아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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