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세랑 “욕망 가진 여성들 부딪히거나 이해하는 이야기 쓰고 싶어요”
[인터뷰] 정세랑 “욕망 가진 여성들 부딪히거나 이해하는 이야기 쓰고 싶어요”
  • 김진수 기자
  • 승인 2020.01.17 06:55
  • 수정 2020-01-16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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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목소리를 드릴게요』 펴낸 정세랑 작가
최근 10년간 쓴 SF단편 8편 묶은 소설집
페미니즘부터 문명을 향한 경고까지
기발한 상상력 돋보여
정세랑 작가. ⓒ아작
정세랑 작가. ⓒ아작

 

거대한 상상력의 호수에서 헤엄을 치는 느낌이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정세랑 작가가 2010년부터 2019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 8편을 묶은 소설집『목소리를 드릴게요』가 나왔다. 기발한 상상력에 절로 감탄하게 되지만 멸망을 향해 치닫는 문명을 향해 날리는 경고 앞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이번 소설집은 정 작가의 과학소설(SF) 모음집이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넘나들면서 양쪽에서 모두 호평을 받은 정 작가의 이번 소설집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SF 월드’에 빠 져들게 된다.

표제작인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2010년 11월 발표작이다. 의도치 않게 남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수용소에 머문다. 영어 교사인 여승균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제자들이 폭력성을 가지게 되고 살인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용소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성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다. 다수를 위해 선량한 소수의 희생은 정상적인 것인지 묻는다.

“한국에 2010년대엔 위기가 많았잖아요. 개인과 공동체의 충돌에 대해서 자유의 값은 어떻게 매겨야 할지 곱씹었습니다. 저는 시민이란 스스로의 유해함을 애서 깎아내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 유해함이 의도치 않은 유해함이라고 할 지라도요.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깎아내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그 사람들에 대한 찬사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8편의 단편을 넓게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과 문명 그리고 여성이다. 자원이 고갈되고 쓰레기 더미가 된 지구를 갈아엎는 지렁이(‘리셋’)나 환경오염과 전쟁, 전염병을 거쳐 환경주의와 페미니즘이 돌아가는 23세기 지구(‘7교시’)가 있다. 소설집 속 여성의 세계는 안전하고 입체적이다. 인공 포궁과 바이오 필름형 피임도구의 보편화로 원치 않은 임신이 사라지는 세상(‘7교시’), 여왕의 얼굴이 다스리는 태평성대(‘목소리를 드릴게요’), 좀비를 활로 쏘는 정윤(‘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이 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아작
『목소리를 드릴게요』 ⓒ아작

“다양한 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그리고 싶습니다. 욕망의 대상은 자유, 명예, 생존, 신념, 사랑, 치유를 포함하여 온갖 것들이 될 수 있겠죠. 서로 욕망을 가진 여성들이 부딪히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스스로 찾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여자들의 여러 얼굴을 계속 그려가려고 합니다.”

해설을 쓴 김규림 평론가는 정 작가가 동세대 젊은 독자층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해서 잘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정 작가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가라는 평가는 늘 기쁘다”고 했다.

중학생 때 우연히 미국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을 접했다. 듀나, 배명훈, 김보영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SF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미국의 판타지 작가 어슐러 르 귄, 존 스칼지 등의 작품은 국내 번역된 작품을 즐겨 읽었다. ‘터미네이터’, ‘반지의 제왕’ 등 SF나 판타지 영화도 챙겨봤다.

환경주의자로 자란 덕분에 자연과 환경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최근에는 부모님과 제주도에 가서 해변에서 쓰레기를 주웠다. 끝없는 쓰레기가 나와 슬펐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생명들에게도 엉망으로 굴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문명이 이대로는 지속되지 못할 것 같아요. 모두가 함께 망쳐놓고 과학자들에게 기적 같은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것은 무리인 듯합니다.”

자연이나 문명만 파괴되는 건 아니다. 악플이 칼날이 주는 상처는 사회의 적신호다. 정 작가는 악플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고 했다. “저에 대한 악플을 제가 보지 않아도 제 주변 사람들이 보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겪는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악의에 노출된 삶에 대해 꼭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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