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순 일곱이신 우리 엄마는 9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혼자 농사를 짓고 계신다. 천여 평의 밭과, 열 댓 마지기의 논농사. 요즘 같은 시절엔 어떤 작물을 짓든 이득이 되지 않지만 그 중에도 씨뿌려 기계로 모심고 물 대주고 한두 번 약만 쳐주면 되는 논농사가 공임이 덜 든다. 병충해가 들거나 태풍이나 장마로 벼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면 별로 속끓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밭은 다르다. 포도, 고추, 콩, 팥, 깨, 감자, 고구마, 마늘, 상추, 배추 등등. 엄마가 밭에 심고 거두는 품목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이런 농사는 돈이 되어서 심는다기보다 자식들이랑 나눠먹겠다는 심산이 더 크다.

이 농사를 짓기 위해 엄마는 아침 7시 전에 나가서 깜깜한 오밤중에 들어오는 강행군을 한다. 더구나 다리가 아픈 엄마는 보통사람 걸음으로 채 10여분이 안 되는 집에서 밭까지의 거리를 오가기 힘들어 점심을 싸들고 다닌다. 찬밥에 신 김치를 싸들고 가서, 배고프면 한술 뜬다고 하신다. 그래서 엄마와 통화하려면 저녁 8시 반이 넘어야 한다.

“엄마 저녁 먹었어? 오늘은 무슨 일 했어?”

그런 엄마를 보는 자식들은 괴롭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엄마에게 땅을 놀리든지 팔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몸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자식들 집도 놀러 다니고, 휴일이면 외식도 하며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는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엄마는 땅을 놀리는 것만은 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신다. 농사를 한해라도 쉬면 그 땅은 잡초들이 무성한 야산이 되고 만다. 땅을 놀리는 것은 죄악이며, 엄마의 가치관에 따르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일이다. 또 땅을 팔아 곡식 자라던 터에 공장이 들어서는 것 역시 봐줄 수 없단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단지 땅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농사를 짓고 키우고 가꾸는 그런 재미를 바라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는 것도 아니다. 곡식들을 심어서 제 때 수확을 못하거나, 소출이 적어 겨우 다음해에 씨만 뿌릴 정도라 해도, 그렇게 함으로써 계속 땅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제 먹거리는 자기 손으로 가꾼다

평생을 한결같이 새벽에 일어나 하루도 쉬지 않고 고된 일을 했으되,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어떤 평가, 대가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자식들에게서도 이제는 그만두라는 소릴 들으면서도 엄마가 지금까지 버티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농사가 땅과 곡식들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땅을 일구고 곡식들과 대화하면서 혼자 하는 노동의 노고를 위안 받으면서 그 결과가 어떻든 수용하는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살고 있는 김포는 수년 전부터 농공단지 조성 정책 아래 농업보다 공장 유치를 통한 세수입 등을 더 장려해왔다. 너른 평야는 이제 찾아볼 수 없고 힘든 농사 대신 공장터로 땅을 파는 것이 대안처럼 선택되어 왔다. 그 공장은 농부의 젊은 아내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으며, 운 좋은 농부들은 공장 수위를 하기도 한다. 땅을 유지하든지, 팔든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던져 버리고 땅을 생산성과 세수입의 차원에서만 보는 정책은 농토의 공장화를 부추기고 있다.

엄마의 손길로 유지되는 우리 땅. ‘우리 땅’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땅을 팔고 사고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집’으로 비춰지는 엄마의 고된 농사일은 땅이 개인의 욕심이나 산업논리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되며, 모두를 위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농사를 통해 보여준다. 환경운동도, 에코주의도 모르지만 엄마는 땅을 맘대로 용도변경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제 먹거리는 자기 손으로 가꿔야 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지키면서 끈질기게 농사를 지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버겁게 땅을 보듬고 있는 엄마를 보는 자식은, 엄마에게 지워진 그 무거운 부담 때문에 포기하자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땅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바보 같은 일인지 알기에.

“엄마.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아보자.”

엄마가 원하는 대로 고되지 않으면서 안온하게 땅을 어루만지면서 소박하게 살 수는 없을까? 죽도록 일하면서 땅을 지키거나 팔아버리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까?

권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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