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성의식 놀이 통해 형성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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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남자아이 집에서 놀고 있다. 남자아이 엄마가 문을 열었는데, 그 때 상황이 남자아이는 아랫도리를 벗고 있고,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의 음경을 주사기로 콕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순간 기겁을 한 엄마는 자기애를 데리고 나와 막 혼을 내고, 놀란 아이는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려간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듣고 정중히 사과했다.

자기 아이한테는 “음경은 예민해서 소중히 다뤄줘야 하는 건데, 너희가 장난을 쳐서 아주머니가 화가 났으니, 아주머니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아이 어머니는 이런 중차대한 일에 이 어머니가 아이를 무섭게 혼내지 않고 그 정도로 그치는 것에 대해 매우 불만을 표시했고 이후 두 집은 왕래를 하지 않게 됐다.

이와 정반대의 사례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대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 일어나는 ‘아이스케키’같은 성적 장난에 대해서 우리는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남자아이들은 크면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이때 취해지는 조처는 여자아이들에게 치마 속에 반바지를 입히는 것 뿐.

위 두 사례 모두 우리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성에 열려 있지 못한 문화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성적 호기심에서 또는 이와는 무관하게 어른 눈에는 성적 행위로 보여지는 병원놀이나 기타 놀이를 하게 된다.

이 경우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이들이 그 놀이에 고착돼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다지 걱정할 게 못된다. 아이는 이런 저런 놀이에서 느끼는 다양한 즐거움에 개방돼 있기 때문에 성 놀이는 스쳐 지나가는 경험일 뿐이다.

‘아이스케키’에 대한 어른, 특히 남자 아이 부모들의 관대함은 어떤가? 물론 이 경우도 아이스케키를 하는 아이가 흉악한 성폭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이 싫어하는 일을 제재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남자아이와 이런 제재 받는 것에 속바지를 입는 것으로 익숙하게 대응을 하는 여자아이의 문화는 우리 사회 남성중심문화의 질서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남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거야’라는 훈계와 이에 대한 적절한 제재는 취해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학년 올라가며 이성에 불편함 느끼는 아이들

이런 점에서 ‘아이스케키’에 대한 어른들의 관대함은 더불어 사는 삶의 기본 도리를 가르쳐야 할 어른들의 직무유기이고 만연한 성희롱 문화의 초석이 된다고 보인다.

초등학교 4, 5학년이 되면 어른들의 배타적 이성애 문화를 판박이 한 새끼 이성애 문화가 판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기의 베스트 파이브나 텐을 정해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 데이, 블랙 데이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선물하고 연애 편지 같은 메일을 주고받는다. 남아보다 평균 2년 정도 성장이 빠른 여아들은 가슴이 나오고 생리가 시작된다. 그러나 성숙의 과정을 편안하게 지지해주는 문화의 부재 속에서 여아의 2차 성징이 빠르게 나타날수록 여아는 더욱 더 주눅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나마 이 아이들이 그대로 남녀 공학 중학교로 올라가면 그런 대로 이성으로 보기보다는 친구로서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등 단계에서 남학교, 여학교로 갈라졌다가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가는 경우 두 성 모두 학생들의 불편함은 극에 달하는 듯싶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의 성적 시선을 느낀다.

“야, 니들은 여자의 어떤 부분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니?” “난 가슴.” “난 엉덩이를 먼저 봐.” “유치하긴, 난 가냘픈 손이 제일 섹시하더라” 등등과 같은.

요즘의 여자아이들은 일방적으로 대상화되지는 않고 함께 남자를 대상화한다. “얘, 저 애 엉덩이 좁은 거 못 봐주겠어.” “제 생긴 거, 토 나올 거 같아.” 서로를 대상화하는 속에서 이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어정쩡한 불편함은 끝내 편안한 우정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바쁜 대입의 블랙홀이 이 불편함조차 빨아들인다. 물론 아주 어쩌다 어른들이 우려하는 탈이 나기도 하지만.

거기다 운이 안 좋으면 예쁜 여자 애들 무지 밝히는 교사를 만나, 그 교사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거울을 보며 생글거리는 연습도 하면서 남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여성성도 계발할 줄 알게 된다.

수업시간 중 당연하게 이뤄지는 교사의 언어적 성폭력

때로는 동아리 후배를 예쁜 얼굴 후배로만 충원하려는 여자 선배로 인해 “왜 쌍꺼풀 없게 나를 낳았어!!”라고 소리 지르며 히스테리를 엄마에게 부리기도 한다. 배짱 좋게 일련의 상투적인 주변 문화를 거부하는 의식이 있다 한들, 기껏해야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 피하지’라는 심정을 가질 뿐이다. 좀더 적극적인 공모로 ‘변태’라는 별명을 지어 불러도 보지만, 그 교사는 여전히 우뚝 서 있는 산 같은 존재로 여전히 유유자적 변태로 생활한다.

‘여자들이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배꼽티나 짧은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이 옳은가?’를 학원 논술 주제로 제시받으면서, ‘니들은 시집이나 잘 가면 돼’라는 교사의 언어폭력을 받아넘기면서,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청소녀들은 그렇게 여자가 돼간다.

든든한 땅을 가벼운 운동화로 걸을 때의 발이 주는 전율,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 몸으로 하나가 되는 카타르시스가 몸이 주는 몸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모른 채, 우리 아이들, 특히 여아들은 불편한 몸뚱이로 여자가 돼간다.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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