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목소리] (끝)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

이 당연함이 어렵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5분만 더 자야지’하는 나태함은 아니었다. 침대에 웅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있었다. 현관에 우두커니 섰다가 주저앉거나 털어지지 못한 두려움을 안고 집을 나서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액정 화면만 보다 걸으며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도해야 했다. 불현듯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숨이 답답해지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원인도 알지 못했고, 하루 중 언제 그런 상황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살아낼 뿐이었다.

내가 겪고 있던 많은 것들을 나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진단서에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단어를 보긴 했지만 사실 그런 건 전쟁이나 재난과 같이 엄청나게 큰 경험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난 1월, 연계를 받아 상담소에 가게 될 때만 해도 나는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어서 좀 더 우울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미천한 학부 경험이 사회문제의 이면을 파고드는 비판의식을 길러주었던 것처럼, 지난 9개월간의 상담치료는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 회피하고 있던 나의 ‘나이브(naive)’ 한 모습, 수많은 취약성을 스스로 직시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느 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린 그 사건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곪아버린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언어가 되어주었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가서 많은 일을 하지 못해도 좋으니 일단 출근하기. 1000여 명 가까이 되던 연락처는 50개 이하로 줄었고, 파괴적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관계를 정리했다. 매일 쓰는 일지의 감정 상태가 ‘+’(플러스)가 아니어도 이제는 그 상태를 지속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법을 배웠듯 매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며,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평화와 고요함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100%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이제 정말 매일 출근을 하고 있다.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동료들이 신뢰할 수 있고, 다음 날 아침 ‘잘 쉬셨습니까?’라고 반갑게 서로를 맞이할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일상을 이제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정돈된 일상 속에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성을 회복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사건들을 직면하고 담담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일이다. 겨우 떨치기 시작한 악몽과 불안, 수많은 감정변화를 다시 겪을 수밖에 없는 정말 어려운 과정이라고 하셨지만 어쩐지 나는 해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어본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에.

이 세상을 살아갈 희망이, 내게 남은 에너지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내 손을 잡고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며 지켜봐 준 사람들. 모든 일이 다 지나가고 나면 '멘탈갑'이자 '레전드'가 될 것이라며 격려하며 기꺼이 나의 뿌리가 되어주고, 안전장치가 되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 그 고마운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선례이자 역사가 되는 일도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그저 지금으로서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조금의 희망이라도 되어줄 수 있다면 너무나 벅찬 영광이겠지만, 무엇보다 곧 결혼하는 남동생에게서 언젠가 태어날 조카에게 그저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출근을 한다.

<여성신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매주 전제합니다. 이 코너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아픔과 치유 과정을 직접 쓴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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