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길고양이 급식은 하루도 쉴 날이 없는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그럼에도 짐을 싸다 깨달은 사실은, 내가 고양이 급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왔다는 점이었다.”

 

©pxfuel
©pxfuel

 

우리 집 다섯 고양이와 동네 고양이들의 급식을 쉬며 나는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다. 3년 만에 집을 떠나 호텔 방에 앉아 바라보는 창밖으로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내 집의 허술한 창들도 바람에 늙은이들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 열리는 한중 시인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하기 전, 나는 봉사자를 구해야만 했다. 몇 해 전 중국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철저히 대비했음에도, 밥그릇이 없는 사각지대에서 아기고양이가 아사했다. 내 집 창에서 환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모르고 지나가면 좋았으련만,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준 이웃사람이 열 명은 되었다. 그토록 관심 있게 그 상황을 봤던 많은 사람들이 그 가여운 생명에게 먹을 것 한 줌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내겐 미스터리이다.

이번엔 봉사자를 동네에서 구하기로 했다. 그래야 제때 눈에 띄어 지난번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터였다. 운이 좋아 쉽게 봉사자를 찾았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풋한 정현이다. 부탁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정현이에겐 약간의 길고양이 경험이 있었다. 다친 채 집 마당에 들어온 고양이를 2차병원까지 데리고 가 치료해준 경험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집을 떠나올 때는 일정이 빡빡한 회의에 참석하면서도 휴가를 받아 쉬러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처럼 내게 길고양이 급식은 하루도 쉴 날이 없는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그럼에도 짐을 싸다 깨달은 사실은, 내가 고양이 급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왔다는 점이었다. 그 깨달음은 꽤 놀라웠고, 그동안 그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정현이가 있으니 나는 사흘 동안 잘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호텔에서 푹 쉬다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회의는 어느 해보다 강도 높았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짜놓은 일정은 화장실을 뛰어서 다녀와야 할 정도였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 시인들의 질문과 대답이 길어 통역을 통해 진행되는 회의 속도는 너무도 느렸다. 그 사이에도 쉴 새 없이 문자가 들어왔다. 경복궁역이 지척인 우리 동네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인왕산의 들개 떼가 고양이를 사냥하러 내려온다. 내가 없는 사이에 들개에게 죽은 고양이 때문에 친절한(?) 이웃들이 보내는 문자가 계속 들어왔다. 나는 마치 사업가처럼 어디서든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집에 중환자가 생겨 마지못해 휴대폰을 구입했을 때조차 자유를 박탈당했다며 억울해했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회의 내내 내 눈에는 다른 시인들의 손이 자꾸 보였다. 나이든 남자 시인까지도 곱고 하얗고 마디 없는 아름다운 손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문학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대로 엄청난 사료 푸대와 간식 박스를 뜯느라 열 손가락 가득 거스러미가 일고, 골판지의 골처럼 여기저기 갈라진 내 손은 자꾸 테이블 아래로 숨고 있었다. 이따금 남의 눈을 피해 들여다보며 한숨 쉬는 내 손도 과거엔 ‘아담하고 재주 많아 보이는 예쁜 손’이라고 칭찬받았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

되도록 숙소에서 재충전하려던 의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온 시인들과 함께하는 만찬 자리부터 의무감이 느껴져 빠질 수가 없었다. 늦게 돌아온 숙소의 로비에서는 몇 년만에 만난 선배 시인이 차를 한잔 하자며 발길을 잡았다. 쉬고 싶은 나를 객실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 사람은 영업시간 종료를 알리는 바의 종업원이었다. 그 자리는 다음날 새벽 주산지를 보러 가자는 제안과 수락으로 마무리되었다. 왕버들나무가 물속에서 자라는 사철 아름다운 저수지인 주산지에 일찍이 나는 몇 번 가보았지만, 새벽에 간 적은 없었다. 주산지의 겨울 새벽 풍경이 궁금하긴 했지만, 나는 정말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재빨리 쉬겠다고 선언해버린 영리한 후배가 남긴 어색한 분위기로 인해 멍하게 있던 나는 또 합류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주산지를 보러 가길 아주 잘했다. 주산지는 겨울의 맵찬 바람에 힘찬 물결을 일으키며 깨어 있었다. 여명 속 장엄한 풍경이었다. 그 풍경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환원되며 내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밤새 뒤척이며 쌓인 피로를 떨치며 싱싱해진 채 하루를 시작했다.

돌아오기 위해 짐을 싸다 말고 나는 헛웃음을 웃는다. 챙겨 넣었던 기억이 없는데, 내 여행 가방 안에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이 들어 있다. 아무래도 몇 해 전 중국에 갔을 때의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듯했다.

내가 이미 캣맘이 되어 있던 어느 해 여름, 중국의 한 고풍스런 호텔에서 앙상한 가슴뼈를 드러낸 채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여러 번 보았다. 그 고양이 때문에 그곳에 머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으슥한 호텔 모퉁이를 돌자 그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얼른 돌아섰지만, 이미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열리는 한중 작가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 시인이었다.

바람이 흔들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고 있자니 이곳으로 내려오던 날 이른 아침, 골목 입구에서 나를 배웅하던 고양이가 생각난다. 십 년 넘게 살고 있는 노란색 고양이 순임이다. 순임이라고 이름지어준 사람은 2015년 딱 이맘 때 세상을 떠났다. 달동네 초입에 있는 우리 골목과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고급 아파트에 살며 순임이에게 밥을 주러 올 때마다 그녀는, 반드시 BMW를 타고 왔다.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게 안정된 급식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더없이 유치하게 보였던 그녀의 생각은 옳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엠더블류를 타고 오는 여자”라고 부르며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사십대 캣맘은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1호 길고양이 순임이는 내가 주는 밥을 먹으며 아직도 살아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