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7마일 마법장화’ 선물
[반하라 칼럼] ‘7마일 마법장화’ 선물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0.01.17 17:49
  • 수정 2020-01-17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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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없는 사람들은 길에서 죽어갔는데 장례식까지 치뤄주신다니 고맙지요.’ 계약서를 챙긴 공무원에게 노인이 말했다. 젊은 공무원은 노인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금일봉과 함께 필요하면 드시라고 약도 챙겨 드리고 노인의 집을 나선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일본 감독인 ‘히로카즈 고레-에다’가 유망한 신인 감독들을 모아 제작한 영화 ‘십년 후의 일본’(2019) 중 한 장면이다. 국가에 자신의 ‘생명’를 주고 (정해진 날짜에 거행되는 합동 안락사에 동의) 대신 장례식과 약간의 돈과 약 등을 받는, 국가와 개인간의 교환계약을 보여준다. ‘합리성’에 몰입된 국가정책에 의해 생명이 계약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십년 후의 일본’에는 기계적 합리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의 비명이 실려있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받아내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괴담’은 공포스럽지만 우리는 ‘심청전’을 통해 ‘괴담’을 ‘미담’으로 기려왔다. ‘십년 후의 일본’에서 노인들은 오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국가가 지불하는것은 금일봉과 약, 장례식 정도인 반면, 심청은 10대 ‘처녀’고 긴 삶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공양미 삼백석’ 같이 큰 가치가 지불된다는 이야기는 ‘생명’에 가치를 매겨 거래하는 괴담들이다. 하지만 ‘심청전’은 ‘효도’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면서 어린 딸에게 여성의 성상납을 당연시하는 용왕을 위해 생명을 내놓으면 몇 배의 보상이 온다고 설득해왔다. 특히 ‘심청전’은 사회의 부가 축적되고 빈부의 차가 심화되는 사회상이 드러나는 거래 계약을 담고 있다. 사찰과 심청간의 계약(공양미 삼백석과 아버지의 시각회복)과 더불어 심청과 뱃사람들과의 계약(공양미 삼백석과 심청의 생명), 뱃사람과 용왕의 계약(숫처녀 진상과 바닷길의 안전) 등 세 가지의 교환거래가 이뤄지면서 ‘효도’는 젊은 여성들의 생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정당화할 뿐 아니라 괴담을 미담으로 둔감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심청전의 전통 속에서 젊은 여성이 당하는 수난은 훗날 영화 ‘서편제’에서 딸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딸에게 독약을 먹여 장님으로 만드는 ‘괴담’으로 이어진다.

유럽에서는 교환계약에 관한 이야기로19세기에 전 유럽에 걸쳐 읽혔던 작가 샤미소( 1781-1838)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유명하다. 소설에서 주인공 슐레밀은 그의 그림자를 탐하는 악마에게 그림자를 주고 제한없이 돈이 나오는 ‘돈자루’를 받아 최고의 부자가 된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자 사회에 나갈 수 없고 그의 약점을 잡은 나쁜 하인은 그를 배반하고 사랑하는 여자까지 빼앗는다. ‘그림자만 있다면’이라는 간절함 속에 절망에 빠진 그에게 악마가 나타나 더 유혹적인 거래를 제안한다. 그의 그림자를 ‘당장’ 내줄 테니 ‘사후’에 그의 영혼을 넘기라는 거부하기 힘든 거래이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되찾을 수 있고 사회적 부귀영화를 다 누릴 수 있는 악마의 제안을 슈레밀은 결국 거부하고 돈도 그림자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길을 떠난다. 그가 신던 장화가 헤져서 더 걸을 수가 없자 새장화는 엄두도 못 내고 한 중고장화를 구입했는데 걷다 보니 신기하게도 한 발에 7마일을 갈 수 있는 마법장화였다. 그는 ‘7마일 장화’의 마법에 힘 입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곳곳의 식물과 자연을 관찰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자유로운 연구자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악마와의 거래에서 결국 힘든 유혹을 이긴 대가로 ‘7마일 마법장화’ 선물보상이 주어졌다는 ‘교훈적인 유혹’을 담은 이야기다.

영화와 소설처럼 극적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에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끊임없이 교환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그 행위의 당사자로 우리는 줄곧 판단해야 한다. 교환거래엔 중국의 고사성어인 ‘조삼모사’에서 보듯 가치의 눈속임도 있어서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효도’의 이데올로기에 보듯 교환거래에 영향을 주는 사회규범에 휘둘리지 말아 야한다. 또 슐레밀 같이 해서는 안 될 거래의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자성적 판단으로 모든 힘을 다해 실수의 재발은 피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사회복지를 ‘퍼주기’라며 낭비로 보는 것은 타당한가? 기본부터 다시 생각해볼 때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에 의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이윤’만을 따지는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은 노동하는 과정에서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 즉 임금으로 따질 수 없는 것, 임금 이상의 노고, 그들의 삶을 넣는다고 한다. 노동자가 일하는데 바친 노동의 가치는 임금으로 다 지불될 수 없기에 ‘미불된’ 가치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지불되어야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적 ‘자선’이 아니다. 임금으로 미처 받지 못한 것을 뒤늦게 정당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슈레밀이 악마에게 자신의 ‘사후의 영혼’만은 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모든 고통을 수용했을 때 뜻하지 않게 받게 된 선물, ‘7마일 마법장화의 알레고리’를 새해에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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