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 강남역부터 혜화역까지 여성연대는 이어진다
[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 강남역부터 혜화역까지 여성연대는 이어진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12.27 10:12
  • 수정 2019-12-2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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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중심 온라인 연대한 여성들
‘강남역 사건’ 계기 거리로

30만명 모은 혜화역 집회서 정점
사진 촬영 금지·남성 참여 금지 등
규칙 내세운 여성 집회 이어져

2019년 7차례 ‘익명의 여성’ 시위 열려
참여인원 줄고 문제 해결 전 와해 한계
느슨한 연대 넘어 새로운 조직화 필요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가 열려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동등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불편한 용기'가 2018년 5월부터 12월까지 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여성들의 세력을 사회에 명백히 보여준 것과 동시에 여성운동 시위 문법을 만들어냈다. ⓒ여성신문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이름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에서 여성혐오와 차별을 규탄하는 시위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참가했던 시위는 모두 ‘익명의 여성’이 주최했고 온라인을 통해 비용을 모금받았으며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었다. 지난 1년 사이 흔해진 여성운동 시위 풍경이다.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2018년 5월부터 12월까지 6차례에 걸쳐 열렸던 ‘불편한 용기’의 ‘불법촬영 편파수사·편파판결 규탄시위’가 있다. 

한국 여성운동사에 한획을 그었던 ‘불편한 용기’ 시위는 여성들의 힘을 사회에, 자신에게 보였다. 2019년에도 ‘불편한 용기’는 이어졌다. 

지난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여성들은 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추모 포스트잇과 흰 국화꽃을 놓으며 분개했다. 이어 SNS 상에서 성폭력 피해 공론화 운동이 일었다.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단 성폭력 고발이 터져나왔고 시인 고은, 박진성, 황병승, 박범신 등 이름난 남성들이 줄지어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런 흐름은 2017년까지 이어졌고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와 ‘#미투’까지 이어졌다.

여성들의 말하기는 끝이 없었지만 사회의 변화는 더뎠다. 대검찰청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강력범죄 여성피해자 비율은 89.2%로 2000년 강력 사건 전체 피해자 8765명 중 71.3%(6245명), 2011년 2만8097명 중 83.8%(2만3544명)로 늘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2018년 5월 홍익대학교 회화과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 가해자-남성 피해자 사건이 발생하자 유례 없이 언론이 집중했고 수사기관은 구속수사와 압수수색을 벌였다. 98.8%에 이르는 불법촬영 남성 가해자 사건 중 97.4%가 불구속 수사를 하고 징역·금고형을 받는 비율은 고작 9.4%(경찰청 2012~2018년 불법촬영 범죄 통계)에 불과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불편한 용기’는 1차 시위에서 1만2천명의 참가자를 모으며 6차에 이르러서는 12만명이 결집했다. 여성혐오 범죄와 편파 수사에 분노한 여성들은 거대한 세력과 요구를 가시적으로 보이며 정부와의 대화에 성공했다. 주최측은 3차례에 걸쳐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여성대상 성범죄 대응 방안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서점가의 페미니즘 도서 열풍과 온라인에서의 여론 등으로만 보이던 젊은 여성들의 의식이 오프라인 현장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여성신문
ⓒ여성신문

 

‘불편한 용기’ 시위가 바꾼 온라인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생물학적 여성’만의 탈 운동권 시위 문법은 이후 수많은 여성운동 시위에 그대로 적용됐다.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앞에서 열린 ‘약물카르텔 규탄 시위’를 시작으로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장 ‘리얼돌아웃 시위’까지 총 7차례의 유사 시위가 열렸다. 매번 시위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여성 안전, 성차별이 시위 주제가 됐다. 각 시위 주최측은 ‘불편한 용기’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신분 노출을 최대한 꺼린다. 그러나 시위 카페에서 이들은 자신이 여성임을 신분증을 통해 인증하는 것과 동시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순수성을 이전 ‘불편한 용기’와 유사 여성 시위에 참가하며 받았던 피켓 등을 입증한다. 

바뀐 것은 시위 문법만이 아니었다. 여성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불편한 용기’ 3차에서 6차까지의 시위와 5월과 7월 열린 ‘강간카르텔 유착수사 규탄시위’에 참가한 A(26)씨는 “처음 참여했을 때 강렬한 자매애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고 친구들도 그렇다고 말했다”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구호를 외치는 동안 세상이 나로 하여금 바뀔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시위가 끝날 때면 시위 카페에 A씨와 유사한 감정을 느낀 참가자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불편한 용기’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용기’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지만 한계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조해지는 참여율도 문제지만 매번 시위는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까지 끌고 나아가지 못한 채 종료되고 있다. 올해 열린 시위 중 2차 이상 열린 시위는 ‘버닝썬 게이트’의 부실수사 의혹으로 열린 ‘강간카르텔 유착수사 규탄시위’와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허용 판결로 9월, 11월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 둘뿐이다. 이들도 3차 시위는 예정에 없다. 이러한 시위의 와해에는 시위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제안 및 피해자 지원 등을 전문적으로 도울 전문가 그룹을 포함한 이슈를 끌고갈 구심점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앞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1심 무죄를 뒤집고 대법원까지 유죄 징역형을 받아낸 데에는 해당 사건의 종료시점까지 꾸준히 따라붙은 상근활동가와 교수·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 그룹의 힘이 컸다. 이들은 이슈를 끝까지 끌고가며 시위와 기자회견, 토론회 등을 주기적으로 열고 탄원서와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펼쳤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정 당시에도 형법상 낙태죄 위헌 소송 변호사 대리인단들과 2015년 발족한 성과재생산포럼을 이은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19차례에 걸쳐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를 연 비웨이브 등이 지구력을 갖고 꾸준히 운동했다. 

김은실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는 앞선 인터뷰에서 “느슨한 연대를 넘어 이슈를 끝까지 관철시킬 새로운 여성운동의 조직화 논의가 필요하다”며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탓으로만 볼 수 없다. 실제 문제를 일으킨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매개돼 있는 제도들을 찾아 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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