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새해의 문턱에 서서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새해의 문턱에 서서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19.12.29 15:44
  • 수정 2019-12-29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웨덴은 극명하게 여름과 겨울이 대조된다. 여름은 해가 길어 백야가 있고, 겨울은 해가 거의 없어 칠흑과 같다. 여름에는 모든 도시들이 유럽의 관광객으로 점령되지만, 겨울엔 조촐한 가족들의 시간들이다. 잠시 스웨덴을 다녀간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다.

여름의 백야와 하지축제를 체험하고 간 여행객들은 스웨덴을 지상의 천국이라 칭한다. 하지만 겨울의 어두움과 추위를 겪고 간 여행객들은 지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곳이라 주저 없이 말한다. 하지만 여름도 좋지만 겨울이 더 기다려진다고 하는 스웨덴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잠시 살고 간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같은 반응은 왜 나올까?

스웨덴에서 겨울을 더 좋아 한다는 사람들은 역시 겨울스포츠를 꼽는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호수가 있으니 강추위가 오면 유리표면처럼 빙결한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스포츠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방정부가 관리해 놓은 호수스케이트장과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여유롭다. 눈이 많은 곳이라 공원 산책로에는 노르딕 스킹 코스를 만들어 놓는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30분만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할강스키장이 있을 정도로 전국어디에도 스키장 시설이 들어서 있다. 강추위 뒤에는 노벨상 만찬장으로 유명한 시청청사 주위의 멜라렌 호수가 얼어 산책로가 된다. 북쪽지방에는 신비스러운 오로라를 보기 위해 멀리 동아시아 관광객들까지 찾아 온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이 말고도 한참 더 열거할 수 있다.

스웨덴의 여름과 겨울을 가꾸는 재원은 세금에서 나온다. 공원, 호수, 산책로, 하이킹로, 자연호수 수영장, 노르딕스킹 트랙, 아이스링크, 호수 빙판관리와 안전표지판, 광장스케이트장, 아이스하키 실내경기장 등 모두 공적인 자원이 투입되는 곳이다. 삶의 쾌적함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셈이다. 매년 국민신뢰도 조사에서 스웨덴 국민들의 국가기관 신뢰도는 국세청, 보건소, 법원, 경찰의 순서로 높게 나온다. 그만큼 세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국민의 권리보장을 위한 법집행에 높은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다.

2019년 초 스웨덴 의회 역사상 유래없는 정치적 진통을 겪었다. 총선거가 치뤄지고 난 후 129일만에 가까스로 정부가 구성되었다. 좌파와 우파 블록 어느 한 쪽도 과반수를 넘지 못해 두 번에 걸친 정부 구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불신임을 받았다. 극우정당이 18%를 차지해 어느 쪽도 정부를 구성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파연합 쪽 두 정당인 자유당과 중앙당이 결국 좌파정당들과 73개항의 합의안을 도출해 내 좌파 소수 연립정권을 허락해 주었다. 우파 두 정당은 연립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고 정책협조를 통해 합의안을 관철해 나가고자 했다. 두 정당 당수들이 좌파정권을 지지하면서 의회에서 행한 연설은 아직도 귀에 생생히 남아있다.

”정치는 책임입니다. 정당들이 모두 이데올로기의 틀에 갖혀 있으면 국가기능은 정지합니다. 선거에서 약속한 우파연합정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좌파정부를 지지하는 이유는 정부없는 국가로 인해 생기는 경제의 불확실성과 국민의 불안을 그냥 놔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당의 이익보다 국가가 먼저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연설을 한 애니 뢰프 중앙당 당수는 선거전 국민들에게 약속한 우파정권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잠시 인기가 수직 하락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정당지지도까지 폭락해 선거 이후 지지자들의 30퍼센트를 잃었다. 정부없는 국가의 위기보다 정당의 지지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천명한 정당 당수의 용기를 알아서였을까. 정당신뢰는 다시 복원되었고, 선거 때 받은 지지도까지 다시 회복했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믿고 따를 때 법과 질서는 잡힌다. 세금을 내는 이유는 정치인이 예산안을 잘 심사해 국민의 복리와 안전, 행복을 위해 쓰여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부패조사단체인 국제투명기구는 스웨덴이 세계에서 3번째로 부패가 없는 나라로 발표했다. 돈과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결과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뢰브벤수상도 스웨덴의 신뢰사회를 강조했다.

스웨덴 여름이 행복하고, 겨울을 찬양하는 매니아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결국 뒤에서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의 수고와 봉사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료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법안을 제출하고, 국회임기가 끝나면 25퍼센트가 정치가 힘들어 떠난다는 나라다.

한 해가 다하기 전 희생하고 책임을 다하는 국회, 정치인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현 정부는 역사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는 자세를 갖기를 고대한다. 모두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와 새해 2020년을 희망차게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