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주거침입죄는
3년 이하 징역 500만원 벌금
‘폭행과 협박 한 때’ 충족해야
주거침입 성범죄로 처벌 가능
스토킹방지법 없어서
타인 따라와 공포 조장해도
고작 10만원 벌금형

온라인에 확산된 ‘신림동 강간범 영상공개합니다’라는 제목의 1분30초짜리 동영상 화면.
온라인에 확산된 ‘신림동 강간범 영상공개합니다’라는 제목의 1분30초짜리 동영상 캡처 장면. 30세 남성 조모씨는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쫓아 공동주택 내부까지 침입해 현관문을 열려고 수차례 시도했다. 지난 10월 1심 재판부는 조모씨에게 주거침입만 유죄로 인정하고 강간미수는 무죄로 판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현행법상 주거침입 강간(미수)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폭행과 협박 한 때’를 만족시켜야 한다.

 

지난 12일 대전 둔산경찰서는 한 차례 본 적 있는 여고생의 집에 찾아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무단으로 들어가려 한 혐의로 25세 남성 A씨를 붙잡아 검찰에 불구속 의견으로 송치했다. A씨는 10월6일 여고생이 사는 집인 4층 아파트까지 올라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수차례 누르고 들어가려 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높은 건물을 찾았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A씨가 일부러 여고생의 집을 찾아온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된 혐의는 단순 주거침입죄가 돼 논란이 일었다. 

여성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을 시도하는 남성이 늘고 있지만 이들에 ‘주거침입’ 혐의만 적용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거침입 강간죄 실행착수 기준 재검토, 스토킹 행위 금지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의 수는 300만에 육박하고 범죄 발생에 불안하다고 응답한 여성의 비율은 73.3%에 이른다. 강지현 울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발표한 ‘1인 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3세 이하 기준 1인 가구 상대 주거침입 피해 가능성은 여성이 남성의 11.26배에 달한다. 여성들의 불안은 실체 없는 공포가 아닌 현실이다. 

지난 5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뒤따라가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남성 조모씨(30)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경찰은 조씨를 체포해 주거침입과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 또한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10월 1심 재판부는 조씨의 강간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주거침입죄만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뒤늦게 지난 12일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2부(부장판사 윤종구)는 공소장 변경신청을 허가해 ‘강제추행미수’ 혐의가 예비적으로 추가했다. 검찰은 “사회 변화에 따라 주거침입 강간죄에 대한 실행착수 기준을 ‘폭행과 협박 한 때’가 아니라 ‘주거침입 때’로 해야 한다”며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해석을 재검토 해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 이유를 밝혔다. 

현행법상 타인이 주거침입을 시도하거나 단순히 주거침입을 했을 경우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형법 319조 주거침입죄밖에 없다. 주거침입이 적용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문제는 주거침입이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주거침입 관련 범죄는 총 7만1868건이었으며 가해자가 남성인 사건은 99.8%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주거침입 성범죄’는 하루 1건꼴인 1310건 발생했다.  

그러나 주거침입 혐의조차 적용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B씨는 자신의 집 안을 3개월간 들여다보는 남성 C씨가 있다며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신고했다. B씨는 C씨가 집 안을 훔쳐보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까지 확보해 제출했으나 경찰은 올해 1월 초 “형사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수사종결을 통보했다. C씨가 집안을 훔쳐본 장소가 공용주택 복도 등 주거침입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B씨는 극도의 불안감에 결국 이사했고 C씨는 자유의 몸으로 활보하고 있다. 

주거침입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스토킹 방지법의 도입이다. 현재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분류되며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의 처벌을 받는다. 공원에 반려견의 배설물을 방치하거나 노상방뇨를 하는 것과 같은 처벌 수위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타인을 쫓아가 사유지 등에서 서성이며 공포를 주는 행위 자체를 스토킹으로 간주하고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스토킹방지법이 이미 만들어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스토킹의 정의가 애매해서 ‘구애 행위까지 스토킹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이 더 큰 중범죄의 예비적 행위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비면식 관계에 있는 여성을 남성이 쫓아다니며 일종의 성범죄 목적으로 사냥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처벌할 법이 없어서 중대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놓아주는 상황”이라며 “스토킹 방지법의 통과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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