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가끔은 남자라는 범주가 통째로 미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아 성폭행, 권력형 성추행, 가정폭력과 여혐살인 사건 등이 일어날 때 그렇다. 여자를 무시하고 차별하고 가르치려드는 한심한 남자들을 겪어야 할 때도 그렇다. “도대체 남자들이란!” 하고 정말 넌덜머리가 난다.

그러나 이건 과잉일반화의 오류다. 나는 얼른 정신 차려 마음을 돌리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미워하는 건 시대착오적 남성중심 문화지 모든 개개인 남자는 아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 발표장에 간 적이 있다. 남성에게 우리의 에너지와 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모든 일을 우리끼리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인간관계, 사회활동, 경제활동도 우리끼리 하고, 여성은행을 만들어 금융거래도 우리끼리 하자는 거였다. 신선하고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분리주의로만 살아도 되나 싶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나는 씩씩한 여자, 부드러운 남자가 좋았다. 생각이 잘 맞고 어울려 지내면 즐겁고 같이 일하면 일도 잘 되는 사람은 대부분 그런 사람이었다. 특히 남자는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면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부드럽고 따듯하며 페미니스트인 남자들이 가끔 있었다. 친구사이라고 공식적으로 조약을 체결한 것도 아니고 자주 보지도 못하니, 막상 당사자는 내가 친구라고 주장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내 친구다. 그중 몇을 소개하면.

A는 정치학자로 모든 소수집단에 각별한 감수성을 지닌 진보적 지식인이고 당연히 페미니스트다. 정치학 강의에서 페미니즘과 환경주의를 가르치고, 지역 여성단체의 강의부탁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인식과 기발한 유머감각을 지닌 그의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생각이 깨어나게 한다. 여학생들을 많이 격려해 주고, 그들이 졸업 후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며 훌륭한 시민으로 커나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런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친구로 삼지 않으면 바보 아닌가.

B는 초등학교 교사다. 요즘엔 주로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듣는데, 그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그 반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오십대의 남자 선생님이 아침에 교실에서 빵을 구워놓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가끔은 붕어빵이다. 유기농 재료로 궁중떡볶이도 만들어준다. 여름에 계곡물이 좋을 때는 학교에서 가까운 북한산에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를 데려가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겨울엔 썰매놀이다. 집에 썰매가 30개! 학교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아이들과 김장을 담아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 그 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무슨 복일까. 그는 행복을 만들어 내는 마술사 같다. 세상에 ‘천직’을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다. 

C는 학교 동료다. 성품은 부드럽고 사회 분석은 칼 같고 박학다식에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사회학자다. 뭐든지 물어보면 즉각 답이 나온다. 비평까지 곁들여주니 인터넷 탐색보다 낫다. 여성학 과목을 처음 만들었을 때, 공동강의를 하자고 하니 강의 부담이 더해지는데도 쾌히 응해 주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변화에 대한 그의 첫 강의를 교실 맨 뒷줄에 앉아 청강했는데, 그 내용이 어찌나 탄탄한지 받아 적으면 그대로 책이 될 것 같았다. 교수회의에서 누군가 성차별적 발언을 할 때, 내가 지적하려다 반 박자만 기다리면 그가 했다. 그런 걸 늘 여성만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되면 얼마나 편안한가.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내가 스스럼없이 찾아가는 몇 손가락 안 되는 남자동료였다.

유아적이면서 권력을 남용하는 남자들은 늘 넘쳐난다. 뉴스를 보면 세상엔 그런 남자들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그럼에도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을 못내 미안해하며,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페미니스트 남자친구들이 있다. 수시로 무너지려는 남성일반에 대한 신뢰를 그들이 있어 아직 붙잡고 있다. 고마워요,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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