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출연자 권리 지킬
최소한의 법적 보호망 부족
광고 찍느라 우유 5L 마시고
일주일 5kg 감량 요구도

보니하니 ⓒ보니하니
보니하니 ⓒ보니하니

 

만6세에 우유 광고 촬영을 했던 A씨는 4~5리터에 달하는 우유를 억지로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우는 A씨를 두고 제작진은 달래기는 커녕 촬영이 지연되는 이유를 A씨의 탓으로 돌렸다. 만16세에 아이돌 가수로 데뷔했던 B씨는 PD로부터 광고 출연을 원한다면 5kg을 일주일 동안 감량하라는 요구를 들었다. 아이돌 가수 활동을 한 3년 동안 외모 품평과 성희롱은 인사처럼 오갔다. B씨는 “무명이라 눈밖에 날까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고 어른들이 모두 웃는데 혼자 싫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B씨는 활동을 그만 두고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섭식장애로 고생하고 있다.

EBS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톡!보니하니(보니하니)’의 성인 남성 출연자들이 청소년 출연자를 성희롱하고 폭행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방송가의 아동·청소년 출연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동·청소년 출연자를 보호할 법적 보호망과 함께 방송가의 적극적인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난 13일 김명중 EBS 사장은 EBS뉴스에 출연해 보니하니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김 사장은 “어린이·청소년 출연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부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시스템 점검과 종합 대책 수립을 위한 긴급 대응단’을 구성, 운영하고 아동·청소년 출연자 인권 보호와 관련 된 제작 가이드 라인을 대폭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보니하니 사태 이후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우리집’의 9가지 촬영수칙이 화제가 됐다. ‘머리 정리 등 신체접촉을 할 때 미리 알리기’, ‘어린이 배우 앞에서 욕하지 않기’, ‘외모나 신체를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기’ 등이 그 내용이다. 윤가은 감독은 시사회에서 “어린이 배우들은 의견 밝히기를 주저하거나 감정에 집중해야 할 때 스텝의 잡담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라고 밝힌 바 있다. 

보니하니의 성인 출연자와 제작진은 미성년 출연자가 20세 이상 차이나는 성인 출연자로부터 폭언과 폭력을 당하는 상황을 ‘허물없는 친분’으로 이해했다. 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비판을 받은 개그맨 최영수(35)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용히 얌전하게 평생 EBS 보니하니 잘해온 나 같은 사람한테 세상이 왜 이러나 싶어요”라고 심경을 밝혔다. 제작진도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출연진 간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생방송을 진행하며 출연자들끼리 허물없이 지내다보니 어제는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폭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2월 EBS 시청자위원회에서도 보니하니가 지적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회의록에는 시청자위 위원들이 보니하니의 성인 보조출연자들의 도가 넘는 언행들을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 프로그램에 적절하지 않은 어투와 부적절한 태도, 행동이 모두 지적됐지만 전혀 개선되지 못한 것이다.  

성인 출연자와 제작진의 부족한 인권 감수성을 채울 규제나 법적 제재도 없었다. 지난 9월,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각 방송사별 아동 보호를 위한 제작 가이드라인을 받아 분석한 결과 KBS‧MBC‧EBS의 경우 아동 출연자의 근로시간 휴식시간, 성(性)보호 등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었다. 다만 어린이와 청소년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경우 ‘불건전하거나 부당한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모호한 규정만이 공통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 규정’ 또한 아동 출연자와 관련해서는 제45조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그 품성과 정서를 해치는 배역에 출연시켜서는 아니 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정도로 기술되어 있다. 청소년 출연자를 어떻게 폭력 행위로부터 보호하고, 폭력 행위 등에 노출 된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전혀 나타나있지 않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제21조에서 아동·청소년 연예인의 인격권 등 권리를 보장하는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만 각 권리 항목에 대한 세부적 지침도 없으며 보호자 대동 여부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시민사회단체는 아동·청소년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을 촉구하는 ‘프로텍트101’ 캠페인에 나섰다. 12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정치하는 엄마들·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노동인권개선 공동행동 팝업’을 결성하고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처벌 규정 추가 등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아동·청소년이 연기활동 등에 동원될 때 건강권과 인격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최대 노동시간과 가능 시간대, 학교 출석일수, 휴식 횟수 및 양, 아동·청소년 연예인과 고용인에 각각 금지된 행위, 아동·청소년의 재산권까지 모두를 포함한다.(박석철, 어린이·청소년 연기자 보호를 위한 해외 법제사례) 또한 아동·청소년의 방송 등 무대출연은 사전에 미리 관할 관청 등에 신고해야 하며 관할 관청은 이를 감시한다. 영국의 경우 공연 및 리허설 시간량 뿐 아니라 공연 리허설의 최대 횟수까지 규제하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노동시간 제약이 다르다. 또한 독일은 반드시 노동 현장에 보호자를 대동하게 하며 성적 하락 등의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 학교 측의 권한으로 근로 활동을 취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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