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목소리] ⑬ 반도 안 왔다는 말은 이제 그만!
[생존자의 목소리] ⑬ 반도 안 왔다는 말은 이제 그만!
  • 하루
  • 승인 2019.12.13 11:05
  • 수정 2019-12-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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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하루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이곳에 글을 한번 써 볼까 합니다. 저는 저의 친오빠로부터 6살을 시작으로 7년간의 강간, 14년의 폭행을 당했습니다. 저와 제 여동생은 그 가해자에게 있어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고 가족에게서의 존재감 또한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말 잘 듣는 어린 여자아이.

그에게 있던 수백 개의 피해 중 하나를 여기 써 볼까 합니다. 그때는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새벽에 반팔로 베란다로 나갔음에도 춥지 않았거든요. 그곳에서 저는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태어난 것을, 살아있는 것을 후회했고, 저는 아직도 베란다에 가면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나옵니다. 이것이 저의 수많은 트라우마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강간을 당하고 20년을 살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지 모르고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며….

그러다 화가 나서 복수하려고 집을 나왔냐고요? 안타깝게도 아니요. 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그 날은 다른 날보다 적게 맞았고 제가 생각해도 슬프지만 안 아프게 맞는 데 익숙해져 아픈 부분을 피해서 맞았거든요. 근데요, 몸은 많이 안 아픈데 심장이 너무 아파 터질 것 같고 눈물이 미친 듯이 나오더군요. 이러다 죽을 때까지 맞고 살겠다고 느꼈던 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의 결정에 대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말해요. “너의 선택이다”, “견뎌야 한다”, “반도 오지 않았다”. 저는 아직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저의 선택인가요. 저는 살려고 죽고 싶지 않아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도 저의 선택인가요. 그 집에 태어난 것이 저의 선택이었나요.

저는 그렇게 경찰서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보 같지만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소장을 쓸 마음이 없었습니다. 가해자가 비는 모습에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가 처벌만큼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그런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용서를 빌 수 있는, 14년간의 긴 세월의 마지막 기회. 그렇게 가족들에게 고소장을 썼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이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고도 용서를 구한다면 진심으로 용서할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이 무색하게도 그는 제게 “내 인생을 망친 미친년”이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저는 그대로 경찰서로 가서 고소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번의 경찰 조사, 2번의 군경찰 조사, 1번의 군검찰 조사, 법원에 증인 출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렸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해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증인 출석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긴장됐고 그 전의 진술에서 대성통곡을 하했기에 안 울 줄 알았는데 제일 많이 울었고 상대 측 변호사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거든요. “증인이 잘못 기억하는 것이 아니냐.”, “증인의 진술이다. 기억 안 나냐” 등의 따지는 말투가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은 너무 힘들면서도 후련하다는 감정이었습니다. 어디에 가도 이렇게 나의 얘기를 자세히 들어주는 곳이 있는가, 이렇게 나의 억울함을 말할 곳이 있을까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시 증인으로 서고 한다면 또 할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폭력 재판을 앞둔 피해자분들에게 증인 출석을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열림터를 떠나 자립하게 된다면 데려올 저의 남동생 ‘땡칠이’랍니다. 요 녀석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요. (사진 제공: 하루)
앞으로 열림터를 떠나 자립하게 된다면 데려올 저의 남동생 ‘땡칠이’랍니다. 요 녀석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요. (사진 제공: 하루)

 

이렇게 힘들었던 재판도 판결은 났고, 한때 가족이었던 그는 13년 형량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선고 결과만 들었을 때 저는 무죄가 안 나온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판결문을 읽고 저와 제 동생의 사건이 병합되어 나온 형량이 13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도 적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여동생 둘을 이렇게 오랜 기간 강간했는데 고작 13년이라니….

이제는 형량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유죄가 나오고 그 형량에 만족하는 피해자는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현재는 가해자가 항소해 2심을 앞둔 상태입니다. 이제는 마음을 많이 비웠습니다. 더 이상 무죄가 나올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지만 이제는 그가 가족이라는 미련마저 없어졌고, 그저 그가 내 인생의 쓰레기이자 그냥 사회적 성범죄자로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가 2심에서는 전자발찌 형을 추가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여나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면 안됨과 더불어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가 제가 집을 나와 가정 내 성범죄자를 처벌함에 있어 2심 재판 앞두기 전까지의 소감이었습니다. 처음 집을 나왔을 때는 앞이 캄캄했고 무서웠지만 열림터(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선생님들과 변호사님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 남은 길도 잘해 나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는 앞으로 피부미용 자격증을 따고 피부미용사로 취업을 할 것입니다. 집도 보증금 잘 모으고 있답니다. 저의 동생 땡칠이도 데려오고, 향후 대학은 꼭!!!!! 갈 생각입니다. 지금이 20살이니 23살쯤에요.

<여성신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매주 전제합니다. 이 코너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아픔과 치유 과정을 직접 쓴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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