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아시아여성학은 서로에게 문제 해결의 준거가 되어주는 장”
[만남] “아시아여성학은 서로에게 문제 해결의 준거가 되어주는 장”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9.12.05 07:40
  • 수정 2019-12-05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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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김은실 아시아여성학회 회장
5회 아시아여성학 학술대회 열어
계몽·시혜 대상 아시아 여성
페미니즘 지식생산의 주체로

아시아 여성의 공감 얻은
소설 『82년생 김지영』
“근대화 거친 여성의 삶 드러낸
소설 형식의 사회학 보고서”

여성운동, 느슨한 연대 넘어
주장 관철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직화 논의 필요
아시아여성학회장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아시아여성학은 ‘서구, 백인’을 기준으로 한 관점이 중립적·보편적인 것이라는 주류 지식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혜련 객원기자
아시아여성학회장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아시아여성학은 ‘서구, 백인’을 기준으로 한 관점이 중립적·보편적인 것이라는 주류 지식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혜련 객원기자

12월 6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 인도네시아·태국·인도·중국 등 18개국 250여명의 아시아 여성학자들이 모인다. 제5회 아시아여성학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시아지역 여성학자들의 연구와 교류를 위해 2007년 창립한 아시아여성학회(Asian Association of Women’s Studies)는 그 해 서울에서 처음 학술대회가 열린 이후 말레이시아 페낭,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올해 12년 만에 다시 서울에서 열린다. 4대 아시아여성학회장인 김은실(61)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는 “아시아여성학회는 여성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문제 해결의 인용이 되고 준거가 되어주는 장”이라고 말했다. 일방적·시혜적 배움이 아닌 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호혜적 배움’이 가능한 공동체가 바로 아시아여성학회다. 아시아여성학회에 참여하는 아시아 여성들은 초국가적 여성지성공동체에서 힘과 네트워크를 얻어간다.

여성학계의 석학인 김 교수는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의료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95년부터 24년간 이화여대 강단에서 제자를 길러왔다. 특히 이화여대에 아시아여성학센터가 설립된 1995년부터 창립실행위원으로 참여하며 24년째 아시아여성학을 연구하고 있다.

“아시아여성학은 ‘서구, 백인’을 기준으로 한 관점이 중립적·보편적인 것이라는 주류 지식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어요. 서구 일원이 아시아와 한국 여성학을 지배하면서 우리의 경험, 아시아 경험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그 시작이었죠.”

실제로 아시아에서 많은 여성운동가와 여성학자들이 여성학 지식생산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에도 ‘페미니즘은 서구적’이라는 오해가 있다. 20세기 서구 페미니즘이 아시아 여성들의 역사와 삶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계몽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온 까닭이다. 아시아 여성은 페미니즘 지식생산의 주체라기보다 지식생산의 대상이나 자원이었다.

한국에서는 1995년 이화여대에 아시아여성학센터가 설립되면서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이 결합된 새로운 지식생산의 지형을 아시아 여성학자들과 함께 구축하려는 본격적인 흐름이 시작됐다.

아시아여성학회장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아시아여성학은 ‘서구, 백인’을 기준으로 한 관점이 중립적·보편적인 것이라는 주류 지식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혜련 객원기자
아시아여성학회장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아시아여성학은 ‘서구, 백인’을 기준으로 한 관점이 중립적·보편적인 것이라는 주류 지식생산 시스템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혜련 객원기자

 

이번 아시아여성학회 국제학술대회의 주제는 ‘아시아 페미니즘의 새로운 도전’이다. 6개의 기획주제 아래 성평등·평화·전쟁·인신매매·경제 보장·종교·문화·정치 등 총 44개의 세션이 열린다. 각국 연사들이 참석하는 전체 세션의 첫 번째 주제는 ‘아시아 여성운동과 #MeToo 운동’으로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10대들의 미투운동에 관한 토론이 진행됐다. 8일 열린 두 번째 전체세션의 주제는 ‘아시아 페미니즘의 미래’로 아시아여성학회 창립 후 지속적으로 아시아여성학 지식생산에 참여해온 학자들이 함께 아시아페미니즘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토론이 진행됐다.

120만부가 팔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을 넘어 일본·중국·대만 등 아시아 17개국에 수출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여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겪는 성차별 상황이 아시아 여성의 관심을 받는 까닭은 공감의 힘이다. 김 교수는 『82년생 김지영』을 “소설의 형식을 갖춘 사회학적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82년생 김지영』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여성에 관한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기의 보고서라고 생각해요. 책은 한국과 같이 근대화를 거친 아시아 국가에서 드러나는 삶의 전형을 보여줘요. 소설에서 가족과 문화, 사회가 여성에게 주는 차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아시아 여성들이 공감하는 거죠. 앞으로는 차별을 겪은 이 여성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 형식의 소설이 나오길 바라요. 그리고 그 책이 아시아 여성들고 공유되길 바라고요.”

한국은 201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여성 시민들이 온라인을 넘어 거리에서도 집회를 열고 목소리를 쏟아낸다. 하지만 지난해 미투 운동과 ‘혜화역 집회’, 올해 ‘버닝썬 게이트’와 여성 연예인의 잇다른 죽음을 거치며 분노와 함께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늘었다. 수만 명이 모이는 집회를 열고 국민청원에 20만명이 넘게 서명을 해도 사회 곳곳의 성차별은 제자리에서 머물거나 되려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담론을 만들어온 김 교수는 익명의 느슨한 연대를 넘어 여성운동의 새로운 조직논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페미니즘 대중화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등장했어요. 신자유주의 통치 체제가 분노를 개별화시키는 부분이 있고 조직화된 연계로 만들기에는 속도, 분절화, 개별화가 조금 더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운동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있지요. 이제는 느슨한 연대 넘어 이야기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조직화 논의가 필요해요. ‘안희정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 집단이 있었어요. 이슈를 끌고가는 구심점이 필요해요.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탓으로만 볼 수 없어요. 실제 문제를 일으킨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매개돼 있는 제도들을 찾아 싸워야죠.”

올해 아시아여성학회장 3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김 교수는 “아시아여성학회가 후학들에게 동료를 찾고 함께 지식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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