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나비처럼 날다 ‘작가 김순기’
[반하라 칼럼] 나비처럼 날다 ‘작가 김순기’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19.12.13 11:07
  • 수정 2019-12-1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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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 예술정신’ 알린 여성 예술가
국립현대미술관서 회고전

 

김순기, ‘조형상황 III – 보르도의 10월’ (1973)
김순기, ‘조형상황 III – 보르도의 10월’ (1973)

“아방가르드라는 것은 당신들처럼, 깡패처럼 장악하는 것이 아방가르드가 아니다. 서로 소통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이다.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이다.” 그의 회고전 전시를 앞두고 기자간담회에서 김순기(1946~) 작가는 1975년 인터뷰에서 했던 자신의 말을 상기시켰다.

1975년 미국 문화원에서 전례없이 열렸던 도불작가 ‘김순기 미술제’를 박정희 독재시절 ‘중앙정보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해냈던 그였다. 하지만 더 큰 고통을 주며 그를 억압하던 (남성) 예술권력을 향해 ‘전위 예술정신’의 본체를 짚어주며 그들의 무지와 ‘젠더폭력’에 맞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떠났다.

내년 1월 27일까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순기 작가의 회고전에서 그의 200여 작품들과 드로잉, 메모까지 볼 수 있는 건 축복과 같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재불 작가인 그를 마치 ‘국가대표 선수’로 모시려 했다. 세계화 정책에 끼워맞추려하자 그는 예술을 스포츠같이 간주하는 국현을 개집으로 비유한 ‘개집’ 작품을 보내고 다시 제도권과 멀어졌었다. 그로부터 근 25년이 흘러 삼청동 ‘국현’의 여성 학예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실현시킨 대대적 규모의 회고전이어서 더욱 귀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외딴 농가에 정착해 창작에 정진해온 김순기의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한계와 틀 없이 바람에 이는 ‘소리’처럼 자신의 ‘이고’(ego)가 작품에서 물러나며 작가의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1978년 그는 목판으로 판 ‘나는’을 한지에 반복해서 찍어 만든 작품, ‘나는 나는’이란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젊은 여성 에술가의 성장을 방해하고 억압하던 한국의 ‘예술권력’에 이어 아마도 젊은 동양 여성 예술가의 도약에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을 프랑스 환경 등 외부적 압력과 싸우기 위해 그는 목판에 ‘나는’이라는 글자를 파고, 한지에 반복해 찍으면서 자신을 복기하고 세우는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그처럼 모든 여성들의 출사표는 바로 그의 ‘나는’이다.

‘예술을 갖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항이다’라며 예술작업 과정을 새로운 가치와 의미로 탐구하는 철학적, 구도적 과정으로 살아온 김순기의 세계를 끌어안아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나혜석’의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를 안내하리 만치 여성으로 살면서 전망하는 자유를 ‘유희’의 경지로 살아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 시대의 ‘다빈치’ 같이 여러 장르의 예술, 기술과학, 동서양 철학과 여러 언어를 망라한 연구자이자 예술작업자다. 동양 여성으로 28세 최연소 나이에 프랑스 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프랑스에서 ‘게으른 구름’이란 제목의 시집, 시화집과 철학 에세이를 출판했고 회화, 드로잉, 비디오 아트,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장르 융합적 설치조형예술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바보 서예’라 이름 부친 독특한 필체의 서예를 하고 핀홀(바늘구멍) 사진기를 창안해서 ‘바보 사진’을 찍는다.

작품에선 멋진 연들, 바다위 하늘높이 떠오르는 거대한 흰색 풍선들, 비디오가 설치된 비행기가 벽스크린에 보여주는 비행기 자신의 비행, 고양이를 간지르며 날아다니는 노랑 나비, 도약하는 개구리등이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같이 떠다닌다. 그의 예술작업, ‘유희’과정에는 빛, 소리, 돌, 금속, 나무, 천과 종이, 활과 붓, 자기, 물감, 연필, 복권, 풍선과 실, 그리고 침묵과 먼지입자까지 그의 예술상을 차리는 재료들이 된다. 2019년 10월 공연된, 그의 최근작 ’공간 시간 2019’에서는 시 읽어주는 로봇 ‘영희’를 만들어 무당 김미화와 함께 퍼포먼스에 세우기도 한다. ‘기능’ 중심의 로봇이 읽어주는 시와 시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로봇의 ‘소리’에 우리의 ‘시의적 상실’속에서 일말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제시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전시회에선 또 큼직한 백자 스크린에 비춰진 무용가 ‘이애주’의 숭고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비디오 아트 작품을 볼 수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선 상상해볼 수 없는 숭고한 비디오 미학이다. ‘다가오는 봄날의 아름다움이 나의 작품보다 아름다울까 두렵다는’ 그에게 두려움을 잊게 할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다. 김순기는 동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모두 섭렵할 수 있었던 자신의 행운을 언급했는데 그 행운은 바로 그의 탄복할 만한 탐구정신의 발현이다. 김순기는 예술재료와 수단의 상이한 성질을 모두 탐험하고 양극으로 펼쳐진 폭 넓은 실험장의 긴장을 평생 견지하며 유일무위한 ‘모험’을 결행한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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